사진속일상

보신탕 한 그릇

샌. 2021. 7. 30. 19:17

염제(炎帝)의 위력이 대단하다. 매일 에어컨 신세를 지는 게 어느덧 두 주째다. 무더위 속에서 무리할 일은 없지만 활동량이 적으니 몸의 기력이 떨어지는 게 확연하다. 에너지 보충을 위해 아내와 보신탕 집을 찾았다.

 

근년에는 보신탕 먹을 기회가 한 해에 한두 번밖에 안 된다. 전에 비해 확 줄었다. 대신 추어탕을 주로 한다. 그래도 한여름이 되면 가끔 보신탕에 구미가 당긴다. 아내가 뇌 수술을 받은 뒤에 조리를 하면서 보신탕을 참 많이 먹었다. 의사도 기력 회복과 상처가 빨리 아무는 데 도움이 된다고 권했다. 거의 한 달은 상식을 했을 것이다. 나는 퇴근하면서 보신탕을 사 가지고 가는 게 일과였다. 아내가 회복하는 데 보신탕의 도움이 컸다고 확신한다.

 

어느 신부님이 하는 말을 들었다. 오래전 신학교에 다닐 때 학교 식당의 음식이 단출하고 고기가 안 나와서 허기가 졌다고 한다. 여름이 되면 학교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 국을 끓여 먹었는데 비록 고기가 몇 점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맛이 있었단다. 천주교 신부들이 대체로 보신탕을 즐기는 것은 그런 연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가 아는 신부님들은 모두 개고기를 엄청 좋아했다.

 

어릴 때의 고향도 마찬가지였다. 일 년에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은 손 꼽을 정도였다. 여름철 기력 보양으로 제일 만만한 게 집에서 기르던 개였다. 소는 도축이 금지되어 있었고, 돼지는 큰 행사가 아니면 쉽게 잡을 수 없었다. 닭 역시 귀한 손님이라도 찾아와야 맛볼 수 있었다. 서민이 쉽게 먹을 수 있는 고기로는 개가 거의 유일했다. 개고기가 보신 음식으로 발달한 이유가 있다.

 

보신탕을 대하는 데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즐기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기회가 주어지면 거절하지는 않는데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는 보신탕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우선 음식점이 줄어드는 추세다. 그나마 있는 것도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뒷골목으로 밀려났다. 이러다가 보신탕은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까지 고향 마을 옆에 개고기용으로 키우는 개 사육장이 있었다. 철창 안에 우람한 몸집의 사나운 개들이 갇혀 있었는데 사육 환경이 너무 불결했다. 항생제가 들어가는 사료도 마찬가지였다. 저걸 먹고 과연 보신이 될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사육장 앞에서는 개고기 먹을 마음이 싹 사라졌다. 개고기도 사육부터 음식점에 공급되기까지 위생적으로 관리된다면 식용으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개여서가 아니라 위생 문제 때문이다.

 

 

보신용으로 길러지는 개는 비참하게 살지만, 있는 집의 반려견은 사람 팔자보다 더 나은 경우도 허다하다. 요사이는 개를 보고 "내 새끼"라거나 "아빠, 엄마"라고 칭하니 세상이 온통 개판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러니 사람 사는 세상이 오죽하랴 싶다. 어쨌든 이런저런 상념과 함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돌아오는 길에 퇴촌에 들러 토마토를 사고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올해는 과일 중에서 토마토를 많이 먹고 있다. 퇴촌 토마토는 완숙 상태로 수확하기에 맛이 있다.

 

염제(炎帝)가 기승을 부리는 날, 도쿄 올림픽에서 여제(女帝)가 탄생했다. 양궁 3관왕을 달성한 안산 선수다. 준결승과 결승 모두 슛오프까지 가서 이겼다. TV 화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조마조마한데 현장의 본인은 어떠했을까. 어린 나이에 압박감을 이겨내고 정상에 서는 모습이 대견하다.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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