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살아나는 꿈

샌. 2021. 8. 18. 17:40

아내는 텃밭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동안 몇 차례 텃밭을 한 적이 있었지만, 올해처럼 몰두하는 것은 처음 본다. 수확해서 먹는 것은 둘째고, 작물을 심고 기르는 즐거움이 우선인 것 같다. 텃밭과 채소 얘기를 할 때는 얼굴에 생기가 돈다. 텃밭과 사랑에 빠진 게 틀림없다.

 

이번에 얻은 텃밭은 집 옆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텃밭에 나간 것이다. 돌아올 때는 큰 비닐봉지에 뭔가가 한가득 들어 있다. 아내의 얼굴 표정도 밝고 환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얼굴이 부은 채 방에서 나왔을 터였다. 아내의 건강에도 텃밭이 일조를 하고 있다.

 

내년에도 계속 텃밭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텃밭을 포함한 주변 땅에 아파트 공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야채가 풍성한 식탁에서 아내가 말했다.

"이제 텃밭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마당과 텃밭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

텃밭이 사람을 이렇게 바꿀 수 있나, 나는 무척 놀랐다. 아파트가 편하고 좋다고, 전원주택이나 시골집은 불편한 게 많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내가 시골에 살고 싶다고 하면 이런 현실적인 논리를 펴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그래, 나도 찬성. 시간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새로운 터를 알아보자."

 

서울을 떠나 이곳에 내려올 때 길어야 5년 정도 살 것으로 예상했다. 시골로 들어가기 위한 중간 정거장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초기에는 한두 차례 기회가 찾아왔었다. 한 번은 계약 단계까지 갔다가 상대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바람에 깨진 적도 있었다. 그 뒤로 둘째가 옆으로 이사 오면서 손주를 봐줘야 해서 꿈을 접었다. 이제는 손주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지만 아내의 반대가 문제였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되는 걸 텃밭이 해결해 준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의 계획을 두고 얘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적극적인데 내가 오히려 소극적이 되었다.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반전이었다. 이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서 좀 거리를 두고 살자는 데 우리는 공감했다. 사람보다는 자연에 좀 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자면 물리적인 생활공간이 중요했다. 저잣거리 한복판에서도 평온을 지킬 수 있는 성인이 우리는 아니었다.

 

젊었을 때와 달리 노인이 되니 모든 것에 조심스러워진다. 변화보다는 현실 안주를 택하려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20년 전의 쓰라린 경험을 다시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지방에 있는 거처를 내 소유가 아닌 전세나 월세로 알아보자고 했다. 동네 분위기나 환경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주할 것인가는 그 뒤에 결정하면 된다.

 

늙으면 가졌던 꿈이 퇴색하거나 사라진다. 대신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나이의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내 꿈도 마찬가지다. 아궁이의 나무가 다 타고 마지막 불꽃이 깜박깜박하는 때에 아내의 텃밭이 불쏘시개가 되어 불길이 살아났다. 이 불길이 활활 타오를지 아니면 반짝하다가 꺼질지 나는 모른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젊었을 때와 다른 점이다. 이제는 다가오는 것을 다소곳이 기다린다. 노년의 꿈은 뜨겁지 않고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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