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술을 마신 뒤에는 잠을 설친다. 비몽사몽 상태에서 온갖 꿈이 난무한다. 꿈은 대체로 어둡고 무겁다. 가위눌릴 정도는 아니어도 영 기분이 씁쓸하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어제는 직장과 군대 꿈에 시달렸다. 둘 모두에서 나는 불성실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나온다. 직장은 학교 교무실과 교실이 주무대다. 늘 나는 수업에 들어가는 게 늦거나 교실을 찾지 못해 허둥댄다. 시간표를 착각해서 아예 수업을 빼먹기도 한다. 교실에 들어가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서툴다. 수업 준비를 안 해서 무엇을 가르칠지 몰라 진땀을 흘린다. 나는 교무실 동료나 교실의 아이들한테서나 왕따 신세다.
35년 동안 한 선생 노릇이다. 어떤 강박관념이 있길래 퇴직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이따위 꿈에 계속 시달리는지 모르겠다. 교직이 적성에 안 맞아 아이들과 부딪치며 사는 게 힘들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런 꿈의 반복적인 등장이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뜻일까. 꿈으로 드러나는 무의식 세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군대 꿈도 나타났다. 그나마 군대에 다시 붙잡혀 가는 꿈은 아니었다. 나는 단체 훈련을 받는 교육생이다. 소대 단위 쯤 되는 그룹으로 나누어 실내에서 수업을 받는다. 휴식 시간이 끝나가도 나는 화장실을 찾지 못하고 허둥댄다. 제일 늦게 들어가려는데 이번에는 교육장을 못 찾는다. 문을 열어 보면 낯 모르는 군인들이 있는 엉뚱한 장소다. 어떤 교실은 서양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참을 헤매고서야 겨우 찾아 들어간다. 나는 투명인간과 같다.
꿈에서는 공통적으로 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허둥댄다. 해야 할 본분을 지키지도 못한다. 꿈에서 나는 너무 모자라는 인간으로 나온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학교나 군대나 다수가 모인 집단이다. 또한 규율울 중시해서 내 개인주의적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 다른 꿈은 왜 꾸지 않는 걸까? 하필 학교나 군대 속에서 갈등을 겪는 모습으로 나를 괴롭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 꿈을 꾸고나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다시 잠들면 비슷한 꿈이 연속으로 나타난다. 참으로 달갑잖은 연속극이다. 그렇게 꿈과 싸우다가 깬 아침은 회색빛이다. 꿈이 심리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진대, 현실의 내 삶이 이토록 엉망이란 말인가.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 나가야 할까? 저기 안갯속에서 한 나그네가 길을 잃고 가련하게 헤매고 있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대폰 멀리하기 (0) | 2021.10.10 |
---|---|
디오게네스의 자신감 (0) | 2021.09.21 |
살아나는 꿈 (0) | 2021.08.18 |
마음의 맷집 (1) | 2021.08.09 |
어느 청소노동자의 죽음 (0) | 2021.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