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A는 씩씩하고 담대해서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 적어도 교실 안에서는 그랬다. 담임 선생님한테 야단이나 매를 맞을 때면 다들 무서워하고 벌벌 떨었지만 A는 달랐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그러냐면서 씩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A는 술고래인 아버지한테 욕먹고 얻어터지는 게 일상이었다. 지게 작대기에 단련된 A의 몸이 선생님의 회초리는 애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와는 별개로 A의 몸은 살아남기 위해 맷집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맷집은 시련을 통해 생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리라.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가 야생의 풀과 경쟁할 수는 없다. 백신을 맞는 것도 같은 원리다. 병원균에 미리 노출시켜서 적응력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 '호르메시스(Hormesis)'라는 말이 있다. 유해하거나 독성이 있는 물질도 소량인 경우에는 생체를 자극하여 유익한 작용을 한다는 말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나 상처는 내 맷집을 키우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멘털이 강한 사람은 시련과 고난을 견뎌내고 돌파해 온 사람이다. 마음의 예방주사를 맞은 것과 같다. 그런 사람에게 상처는 도리어 꽃이 된다. 반면에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현재의 불행을 오로지 과거의 상처 탓으로 돌리는 자기 암시에 빠진다.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유약한 심리의 회피 전략이다. 화살을 남에게 돌림으로써 자기 위안에 안주한다.
스트레스가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 과하고 지나치면 해로울 뿐이지 나쁜 것은 없다. 똑같은 환경에 처해도 사람마다 받는 스트레스의 양은 다르다. 마음의 맷집이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는다. 동시에 스트레스는 마음의 맷집을 키우는 선한 작용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생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삶이 힘들고 일이 내 마음대로 안 풀린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은 어린아이의 행동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성인이라면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세상 일이 내 의지대로 안 되니까 기대하지 못한 의외의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거기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다. 비슷한 스트레스에 어떤 사람은 삶이 파괴되고, 어떤 사람은 상처를 승화시켜 꽃을 피운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마음의 맷집을 키우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나의 행복을 위해서다. 마음의 맷집이란 어쩌면 외부의 자극에 무덤덤하거나 무심한 태도일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은 상대의 의도와 관계 없이 자기가 스스로 불행을 만들어 낸다. 상처를 자꾸 만지작거리면 덧나기만 할 뿐이다. 중요한 건 스트레스 자체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대하는 내 마음이 아닐까. 환경이나 과거가 주는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성장의 디딤돌로 삼는 사람이 성숙한 어른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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