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후배의 독서당

샌. 2021. 6. 22. 11:05

후배 H가 북한강변에 독서당(讀書堂)을 마련해서 조용히 책 읽고 글 쓰며 살고 있다는 얘기는 연전에 들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마침 통화가 되었고, 몇 번 약속이 어긋나다가 마침내 어제 찾아가 보게 되었다.

 

H는 교직에 있으면서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니고 박사 학위를 딴 학구적인 후배다. 퇴직을 하고 책을 원 없이 읽고 싶다며 남양주에 거처를 마련했다고 한다. 강변에 자리 잡은 전원주택의 2층에 세를 들어 지내고 있었는데, 내가 상상한 소박한 오두막과 달리 넓고 럭셔리했다.

 

"언제 이렇게 부르주아로 변신한 거야?"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내가 주는 선물인 거죠."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후배가 대견하고 부러웠다. 나도 세컨드 하우스 개념의 이런 공간 하나 빌리고 싶은 것이 항상 갖고 있는 소망이다. 주변 경치는 관계없고 다만 조용하면 된다. 방은 작을수록 좋다. 집을 훌쩍 떠나 부담 없이 며칠씩 묵고 올 수 있는 곳, 그러자면 너무 멀어도 안 된다. 몇 후보지가 있었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아직 내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우선 매물이 아닌 전세로 나온 것은 대상 자체가 적다.

 

나도 책을 많이 읽는다고 여기는 편이지만 H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무거운 주제가 아니면 거의 하루에 한 권을 읽는다고 한다. 마침 루이스의 책이 눈에 띄어서 말을 꺼냈더니 H는 루이스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인간 폐지>를 추천 받았는데 근간 읽어봐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늘 부러워하며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꿈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리라. 간절히 원하면 저질러지는 것이다. 허나 이젠 많은 게 시들하다. 행동에 앞서 먼저 주저하는 나를 본다. 후배는 나중에 메시지로 말했다.

 

"형님, 그래도 조금만 늙어 보여서 다행이예요."

 

후배의 독서당 거실에서 보이는 북한강. "아름다운 풍경도 매일 보면 심드렁하지?" "아뇨. 시시각각 변하는 물 색깔만 봐도 지루한 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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