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봄에 성북동에 있는 최순우 선생의 옛집에 간 적이 있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사랑방에 걸린 편액이 제일 눈길을 끌었다. 선생이 직접 쓴 글씨가 소박한 나무판에 새겨져 있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杜門即是深山"
"문을 닫으면 곧바로 깊은 산 속이 된다"는 뜻이겠다. 글씨 옆에는 '丙辰榴夏 午睡老人'이라 적혀 있는데, 병진년은 1976년으로 선생이 회갑이 되던 해다. 오수노인(午睡老人)은 선생의 호로 '낮잠 자는 노인'이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떠나 유유자적하며 살겠다는 선생의 생각이 묻어 있는 글씨다.
요사이 이 글씨가 자꾸 떠오른다. 두문의 문(門)이 집의 현관문은 아닐 것이다. 응당 '마음의 문'으로 봐야 하겠다.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어떤 의미일까. 세상 속에 살면서도 마음의 문을 닫고 깊은 산 속의 고요에 들 수 있을까. 성인(聖人)이 아닐진대 속인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그것도 '즉(即)'이라고 했다.
<도덕경>에도 마음의 문을 닫으라는 말이 나온다. 52장에 나오는 '색기태 폐기문(塞其兌 閉其門)'이다. 욕망으로 들끓는 마음 문을 닫아야 위태롭지 않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문을 닫는다는 것은 세상과의 절연이 아니라 내 욕망의 불을 끈다는 뜻이다. 선생의 두문(杜門)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이 쉽지 않다. 본능과 욕망대로 산다면 짐승과 다를 게 없다. 사람답게 사는 길은 과연 무엇인가. 두문(杜門)의 길은 너무 멀지만 최소한의 사람 도리만은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싶다. 최소한의 사람 도리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삼가는 것이다. 타인의 아픔에 연민을 느끼는 일이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당장 내일일 수도 있다. 그때는 동전 한 푼 가져갈 수 없다. 죽을 때 후회를 덜 하기 위해서, 세상과 타인에 대한 원망을 안 하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심산(深山)까지는 못 되더라도 가까운 뒷산의 호젓함은 가끔 누리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