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어떤 죽음

샌. 2021. 4. 25. 10:46

지인한테서 들은 한 노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노인은 자식 집을 전전하다가 결국 요양원에 들어갔다. 한 자식한테 신세를 지기 싫어 이 집 저 집 옮겨 다녔지만, 모든 자식의 눈치를 보는 꼴이 되었다. 자식들 사이의 관계도 안 좋아졌다. 약간 다리가 불편할 뿐 정신은 말짱했으니 요양원은 감옥과 다름없었다. 처음에는 자주 찾아오던 자식들도 차츰 빈도가 뜸해졌다.

 

노인은 70대에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았다. 그럭저럭 살 만 했지만 다리를 다친 뒤부터는 거동하기가 불편해졌다. 작은 아파트를 팔아 다섯 자식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식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각자 한두 달씩 아버지를 맡기로 한 것이다. 초기에는 괜찮았으나 몇 해 지나면서부터 자식들이 귀찮아하는 게 보였다. 어서 다른 집으로 갔으면 하는 압박이 느껴졌다. 차라리 요양원이 낫겠다 싶었다.

 

요양원에서 노인은 모두에게 버림 받았다고 느꼈다. 삶의 의욕을 잃어갔고 몸도 쇠약해졌다. 그래도 몇 년을 버티었다. 어느 날 노인은 혼자 사는 막내를 불렀다. 답답해서 못 살겠다고, 너희 집에 며칠만 데려가 달라고 했다. 형편이 제일 좋지 않은 막내였지만 아버지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막내 집에 온 노인은 닭백숙을 먹고 싶다고 했다. 막내는 시장에서 닭을 사 와 정성껏 끓여 대접했다. 맛있게 한 끼를 먹은 뒤 노인은 배가 아프다며 그 뒤부터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막내는 낮에 일을 나가야 해서 집에 있지 않았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노인은 수척해갔고 노인은 병원에 가는 것도 요양원에 돌아가는 것도 마다 했다.

 

한참이 지나서 막내는 알아챘다. 노인이 곡기를 끊음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만류했지만 소용없었으며,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이기도 했다. 막내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노인은 단식 20여 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은 우리 모두가 당면해야 할 과제다. 그때 내가 어떤 상태에 떨어질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를 상실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을 두 팔 벌려 맞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는 울면서 이 세상에 왔지만, 떠날 때는 웃으면서 가야 하지 않을까. 노인의 얼굴은 무척 평화로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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