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시들하다

샌. 2021. 4. 17. 12:14

70이 코앞에 다가오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기력이 많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몸이 예전 같아 않아, 라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서너 시간은 가뿐하게 걸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두 시간만 연속으로 걸어도 지친다. 하루를 활동하면 다음날은 쉬어야 한다. 젊었을 때는 잠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싹 가셨지만, 이젠 회복하는 데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몸에 정신이 박자를 맞추는지 매사가 시들하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의욕만 앞서다가는 탈이 날 게 뻔하다. 그런 점에서는 다행인지 모른다. 늙으면서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다는 걸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같이 등산을 했던 그룹은 지금도 산을 열심히 다닌다. 나는 작년과 올해에 500m 넘는 산을 단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등산과는 멀어진 셈이다. 코로나 핑계를 대긴 하지만 여행도 마찬가지다. 높은 산에 오르면 뭣하고 좋은 풍경을 보면 뭣 해, 하는 식으로 심드렁하다. 늙었다는 징조다.

 

그렇게 몰두하던 바둑도 마찬가지다. 둘 상대가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우선 바둑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 전에는 혼자서라도 사활문제를 풀어보거나 바둑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젠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바둑은 어떤 전기가 마련되면 다시 즐기게 될 가능성은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어울려 치는 당구도 전처럼 빠져들지는 않는다. 친구 만나는 것과 점심 때 반주를 주고받는 재미가 더 크다. 한 친구가 '파이브앤하프 시스템'을 공부하라면서 당구 책을 줬는데 성의를 봐서 받아왔지 볼 것 같지는 않다. 당구 역시 시들하다.

 

반면에 더 열중하는 것도 생겼다. 올해 들어 새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새사진을 자주 찍게 되었다. 밖에 나갈 때는 늘 카메라를 갖고 나간다. 언제 새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금년처럼 많은 사진을 찍고 있는 해도 없다. 덕분에 장롱 안에서 놀던 카메라가 햇빛을 쬐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든 것이 변해간다. 새로 관심을 갖게 되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시들해지는 게 사실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 70세와 75세 사이에서 이런 기력 저하를 경험하는 것 같다. '마음은 청춘'이라고 아무리 외쳐야 소용없다. 누가 세월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많은 것이 시들어가더라도 꼭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자연세계와 생명에 대한 경탄이다. 구체적으로는 꽃과 새와 별이다. 길섶에 핀 한 송이 꽃에 가슴이 뛰고, 나무에 숨어 노래 부르는 새소리에 쫑긋 귀를 기울이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우주의 신비에 경탄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경탄이 죽을 때 나도 죽는 것이다.

 

"하늘에 무지개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나니,

나 어려서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리할지어다.

아니면 이제라도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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