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톨릭 미사에 참예하였을 때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죄를 회개하면서 "내 탓이오"라고 오른손으로 왼편 가슴을 세 번 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미사 끝 부분에서 "평화를 빕니다"라고 신자들끼리 나누는 인사였다. 요사이는 성당 미사에 가뭄에 콩 나듯 나가면서 마지못해 앉아 있지만, 이 두 장면에서만은 여전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종교의 알짬이 이 둘 속에 스며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심(宗敎心)이란 내면적으로는 '내 탓'이라는 자기 반성이 핵심이다. 자기 성찰 없는 믿음은 위선이며 기만일 뿐이다. 바리사이인들이 예수한테서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비난을 받은 것은 그들의 믿음에 자기 성찰이 빠지고 오만과 독단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선을 안으로 수렴하고 겸손해지도록 가르치는 것이 종교의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한편 종교심은 밖으로는 이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평화'의 기원으로 나타난다. "평화를 빕니다"는 성당 안의 신자들 사이에만 국한된 인사는 아닐 것이다.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도 함께 평화롭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를 나눌 때 내 안에서 밖으로 퍼져나가는 따스한 파문을 나는 느낀다. 동시에 수많은 존재가 발하는 파문이 나를 부드럽게 감싼다. 그때에는 순간적이나마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혼자 조용한 산길을 걸을 때 나를 감싸는 것이 바로 이런 '평화'의 느낌이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온 숲이 나에게 "평화를 빕니다"라고 기원해주는 것 같다. 그저께는 산길을 걸으며 이런 평화는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왜 산길에서 제일 편안함을 느낄까. 그리고 문득 평화는 '조화'와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조화의 세계다. 생물과 무생물, 강자와 약자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간다. 강자는 강자 몫의 삶이 있고, 약자는 약자 몫의 삶이 있다. 거기에 우열은 없다. 반면에 인간 세상은 반대다. 강자의 욕망은 무한대로 뻗어 나가고 약자의 몫을 앗아간다. 골짜기를 파내서 봉우리를 더욱 높이려 한다. 자연의 원리에 반하는 짓이다. 자연이 코스모스라면 인간 세상은 카오스다.
평화는 조화로운 분위기 속에 잠길 때 온다. 그것이 인간사에서 격리된 자연 속 숲길에서 평화의 느낌을 가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주변의 모든 존재가 평화를 빌어주는데 내 마음 또한 말랑말랑해지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이때 신의 숨결을 느낀다. 인간이 지은 건물이 아니라 조화로운 자연이 바로 성전이다. 내가 자연을 닮으면 내 마음이 곧 성전이 된다.
산길을 걸으며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에게 감사한다. 하늘과 나무와 풀과 바위에게 내가 그들로부터 받는 만 분의 일이나마 보답의 인사를 건넨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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