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휴대폰 멀리하기

샌. 2021. 10. 10. 11:19

고향에 내려갔을 때 길을 걷다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놓쳐서 액정이 깨졌다. 바닥이 우둘투둘한 시멘트길이였는데 마침 액정면이 직접 부딪치면서 여러 군데 거미줄이 생겼다. 다행히 휴대폰은 정상으로 작동했다.

 

당장에는 실수를 한 것에 대해 기분이 언짢았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거였다. 화면 보기가 불편하니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볼 일이 없을 터이고, 이참에 휴대폰과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액정 수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

 

집에 있으면서도 수시로 핸드폰을 켜고 무슨 연락이 오지 않았나 확인한다. 그냥 습관적으로 손이 휴대폰으로 간다. 늙은 백수에게 특별하거나 긴급한 연락이 있을 리 만무하다. 대개 본 걸 또 보고, 할 게 없으면 뉴스라도 검색하며 만지작거린다.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침침해져서 오래는 쳐다볼 수 없다. 그러나 빈도는 잦다.

 

짧은 외출에도 꼭 휴대폰은 들고 간다. 이 역시 습관이다. 비지니스 맨도 아니니 대부분의 경우 휴대폰이 없어도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면서 잠깐의 틈이 나면 휴대폰이 들어 있는 주머니로 손이 간다. 심심하면 오늘 몇 보를 걸었을까라도 확인한다. 8천 보를 걸었든 1만 보를 걸었든 그게 뭐가 중요할까. 사람을 만나서도 마찬가지다. 휴대폰으로 딴전을 피우다가 대화에서 이탈하는 실례도 한다.

 

내 또래들은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많이 보는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유튜브는 보지 않는다. 귀에 염증이 있어 이어폰을 낄 수 없으니 음악도 듣지 못한다. 사용 시간으로 보면 내가 휴대폰을 쓰는 시간은 평균 이하일 것이다. 한 번 충전하면 대개 이틀은 간다. 그럼에도 너무 휴대폰에 지배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나치다 생각하면서도 바꿀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액정이 깨지면서 '휴대폰 멀리하기'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즉시 다음과 같은 실천 사항을 정했다.

 

1. 습관적으로 손이 가는 일이 없도록 집안에서 휴대폰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둔다.

1. 문자나 카톡은 하루에 한 번 정도 확인한다.

1. 밴드나 카페 소식은 사흘에 한 번 정도 확인한다.

1.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지 않는다. 머리를 어지럽게만 할 뿐이다.

1. 짧은 외출에는 휴대폰을 들고 나가지 않는다.

 

액정이 깨지고 휴대폰 멀리하기를 결심한지 열흘 정도 지났다. 휴대폰을 전처럼 만지작거리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다. 한 번 충전하면 닷새는 넉넉히 버틴다. 지난 화요일에 충전했는데 닷새가 지난 현재 배터리 상태는 30%다. 하루에 15% 정도씩 소모되는 비율이다.

 

은둔을 택하지 않는 한 현대 생활에서 휴대폰 없이 살기는 어렵다. 이웃이나 친구와 모든 연락이 두절된다. 내가 편하겠다고 타인에게 불편을 끼칠 수는 없다. 그러나 휴대폰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생활은 내 선택이다. 운전할 때 쓰는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의지하면 할수록 왠지 거북하다. 인생의 상당 기간을 아날로그로 살아온 사람이 디지털에 적응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반면에 손주를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선천적으로 디지털화되어서 태어난 것 같다. 어쩌겠는가. 나는 내 식대로 살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액정 수리도 미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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