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잠에서 깨어 커튼을 열면 안개가 자욱하다. 새벽의 낮은 기온 탓으로 생기는 복사안개다. 창밖을 보고 있으면 나도 짙은 안갯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안갯속에서는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있던 동무도 자취를 감췄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헤매는 모습이 꼭 인생길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습관처럼 "곧 죽는다"를 나직히 읊조린다. 안갯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나를 본다. 안 그래도 울적하던 기분이 더 우울해진다. 안개가 사라지자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일어난다. 시계는 8시를 너머를 가리키는 게 보통이다. 하루가 시작된다.
인생은 홀로 가는 길이다. 친구가 옆에 있어서 위안이 된다고 하지만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오래 살게 되면 어차피 친구도 다 떠나간다. 늙어진다는 것은 인생은 혼자라는 자각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그 정점은 죽음이다. 외로움을 회피한다고 외로움이 없어지지 않는다. 친구들 가운데서 외로움이 더 진해질 수 있고, 홀로 있어도 존재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 고독은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버텨야 한다. 인생은 고(孤)다.
노년이 되어 맞는 가을은 스산하다. 단풍의 화려한 색깔을 그저 감탄만 할 수 없다. 마지막 스러져가는 생명의 안스런 숨결을 느낀다. 낙엽의 몸짓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감정이입이 되는 때가 노년이다.
고해(苦海)라는 말 앞에서 먹먹해진다. 강이나 호수가 아닌 고통의 바다라니, 그 넓고 깊은 영역을 어찌 계량할 수 있겠는가. 일상의 사소한 근심이나 걱정은 차라리 애교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 내면에 뿌리내린 거대한 미지의 정체가 두렵다. 선현들 말씀으로는 그걸 잘라낼 도끼가 있다고 하지만 내가 어찌 찾아낼 수 있겠는가.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던 때, 대낮처럼 환한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환상이었음을 안다. 나는 안갯속에 있다. 가야 할 길을 잃었다. 일생을 바삐 걸었지만 몇 발자국이나 앞으로 나아갔는지 확신이 없다. 제자리에서 뱅뱅 돌았을 뿐이다. 인생은 고(苦)다.
친구와 술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면서 이제는 우리 차례가 되었다며 씁쓰레하게 웃었다. 돌아보면 일장춘몽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주제 파악을 못한다. SNS에 올라오는 동기들의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되었을까, 깜짝 놀란다. 제대로 현실 인식이 되지 않으니 과거의 관성에 젖어 뱅뱅이걸음을 한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 생명(生命)이란 '살아내라는 명령'이라지 않는가. 어설프고 서툴러도 비틀거리며 걸어가야 한다. 다른 이유가 없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또한 고(孤)와 고(苦)는 내 인생의 진실된 동반자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아야겠다. 둘은 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는 창이다. 둘이 없다면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나는 아물지 않는 생채기를 호호 불며 다시 일어선다. 인생은 고(G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