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코로나와 마스크

샌. 2021. 12. 4. 11:34

며칠 전에 친구와 동네 당구장에 갔다가 과반이 마스크를 안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빈 테이블 하나가 있어서 자리를 잡았지만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쓰여 제대로 게임을 할 수 없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예의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울철 실내 당구장은 코로나가 전파하기 쉬우므로 조심하는 게 당연하고, 상호간 유일한 방벽은 마스크 착용이 아닌가 말이다.

 

부리나케 한 게임만 마치고 나오면서 주인에게 왜 이렇게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많으냐고, 쓰라고 강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아예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 가는가 보다. 위드 코로나가 경각심을 누그러뜨린 것 같지만 밖에 나가보면 그렇지 않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너무 잘 써서 다시 놀란다. 혼자 걸으면서도 마스크는 꼭 쓰고 있다. 사람이 드문 실외는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무관하다.

 

나는 밖에서 걸을 때는 마스크를 벗고, 어쩌다 사람을 지나치게 되면 예의상 마스크를 써 준다. 코로나가 겁나서라기보다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행동이다. 대신 실내에서는 꼭 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끝나면 바로 마스크를 걸친다. 그게 최소한 나를 지키면서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반대로 행동한다.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기막히게 잘 쓰면서 실내에서는 용감하게 벗는다. 카페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밖에 나설 때면 마스크를 걸치는 모습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런 모순이 없다.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비합리적일 때가 부지기수다.

 

2년 넘게 얼굴의 반을 가리며 지내는 비정상적인 삶이 이어지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이 코로나를 통해 어떤 성찰을 하고 삶의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과연 자연이나 생명의 가치에 대해 깨닫게 되었을까.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나 소비 행태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을까. '보복 소비'라든가 '보복 관광'이라는 말을 들으면 암담해진다. 코로나가 인류의 삶에 대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으리라는 초기의 기대는 물 건너갔다.

 

일론 머스크는 아예 우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머스크(Musk)과 마스크(Mask)는 이름이 닮았다. 훗날 이 둘은 21세기 초반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일지 모른다. 하긴 커즈와일이 말하는 '특이점'도 이제 20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인류 문명의 대 전환기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전 문명의 교체와는 비교 불가일 정도의 엄청난 격변이 몰아칠 것이다. 이미 화살은 당겨졌다. 지금 우리가 겪는 코로나는 애교스러운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고민은 이제 의미가 없어진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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