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개의치 않으련다

샌. 2021. 11. 18. 11:21

늙어가면서 신체와 정신에 변화가 생긴다. 둘을 비교한다면 정신보다는 신체의 변화가 더 빠르고 큰 것 같다.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라고 하듯이, 노년이 되면 육체가 정신을 받쳐주지 못한다. 물론 정신이 먼저 문제가 생기는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둘이 크게 엇박자를 내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나란히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년에 진입한 나를 관찰해 보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어떤 변화가 느껴진다. 전에는 상대를 의식하면서 내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 신경을 썼다. 내 언행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지,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먼저 살폈다. 그래서 늘 조심했고, 동시에 실수를 하거나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말을 아꼈다. 이것은 내 오래된 습(習)이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율배반적이다. 가족한테 대하는 태도는 밖에서와 달랐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큰소리를 친 가부장적인 가장이었다. 그로 인한 상처가 그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지금은 밖에서도 직설적이고 단호하다. 상대가 기분 나빠하든 말든 먼저 내 감정에 충실하다. 얼마 전 한 모임에 안 나간 뒤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때 왜 안 나왔어?"
"응, 나가기 싫어서."
전 같았으면 대화가 이랬을 것이다.
"그때 왜 안 나왔어?"
"갑자기 피치 못 할 일이 생겨서(거짓말), 미안했어."

요사이는 내가 봐도 과할 정도로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상대가 서운하거나 기분 나빠하는 게 느껴질 정도다. 때문에 안 그래도 부족한 인간관계가 더 삐걱거린다.

완고하고 고집불통이 되는 것도 노화의 한 현상이라고 한다. 나의 이런 태도 변화 또한 노화의 부정적인 현상인지 모른다. 하지만 다르게 해석해 볼 수도 있다.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내 자신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남 탓보다 내 탓을 우선하고 자책을 잘한다. 서운해도 표현을 안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건 타인이 아니라 내가 아니겠는가.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하고, 기분이 상했으면 상했다고 말하련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는 아닐지니, 상대의 감정에 너무 개의치 않아도 되리라. 누가 뒷담화를 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일일 뿐이다. 산다는 건 어차피 오해를 주고받고, 상처를 주고받고 하는 관계다. 얽힌 매듭이 풀리면 다행이지만 안 풀린들 어쩌겠는가. 너는 너로, 나는 나로 살아갈 뿐이다. 남은 생은 그렇게 쿨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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