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넉 달만에 어머니를 찾아뵙다

샌. 2022. 5. 9. 13:14

코로나 일 확진자 수가 여러 달째 수십만 명대를 기록하며 발을 묶었다. 노모를 찾아보려고 해도 혹시 감염을 시킬까 불안해서 가지를 못했다. 다행히 파고의 정점이 지나고 이번 달부터는 야외 마스크 쓰기도 해제되었다.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 넉 달만이었다.

 

이제 고향은 어릴 때의 그 포근하고 넉넉했던 품이 아니다. 시간이 얼마나 만상을 쇠락시키는지 확인시켜주는 쓸쓸한 공간이다. 열역학 제2법칙을 고향만큼 명료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새로워지는 것도 분명 있으련만 과거를 붙잡고 있는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병들고 낡고 스러지는 안쓰러운 모습으로 가득한 곳이 고향이다.

 

동네 어귀에서 보면 소백산 옥녀봉이 여일하게 가깝다. 

 

 

올해는 좋은 소식이 있을려나. 동생 집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두 마리가 왔다갔다 하며 진흙을 물어다 벽에 붙인다. 그러나 인간을 경계하는 듯 사람이 있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어쨌든 제비는 길조(吉鳥)라고 믿고 싶다.  

 

 

어머니는 올해도 들깨 농사를 준비중이시다. 이곳은 구순 어머니의 놀이터다. 산소의 조상님께 인사를 드리고 밭 주변의 고사리를 꺾고 쑥을 캤다.

 

 

이웃 마을을 빙 돌아오는 산책을 했다. 아는 얼굴을 여럿 만났다. 냇가에는 원앙이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만큼의 견해와 입장이 존재한다. 생각하는 게 다 같다면 로봇의 세계이지 인간 세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다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나와 다르다고 비난할 수는 없으며, 내 잣대로 상대를 판단해서도 안 된다. 다만 우리가 어떤 길을 가든 지켜야 할 지침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주는 말과 행위는 삼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불화와 반목을 야기한다면 옳지 못한 행위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보다 더 나은 가치는 없다.

 

 

고향에 다녀오는 길은 늘 마음이 무겁다. 어쩌면 내 업보인지 모른다. 세상은 인과응보의 원리가 무섭게 작동하고 있다. 지금은 무사히 지나가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과보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못된 놈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산다고, 그래서 반드시 지옥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속에 울분이 차 있던 친구였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양심의 형벌은 받고 있을 거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었다.

 

어머니의 농사에 대한 고집을 말릴 수 없다. 밭에 나와야 답답한 속이 풀린다는 데 어찌 하겠는가. 속 상하기로야 누가 어머니 마음만 할까. 내 나이 일흔이 넘었지만 나는 부모이기보다 여전히 한참 모자라는 자식의 자리에서 마음 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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