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 인구는 80억 명이다.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이래로 지구상에 생존했던 사람들의 총 숫자는 약 1천억 명이라고 한다. 이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 중에서 어쩌다 당신과 만나게 되었을까. 바늘 끝 같은 한 점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 끌리게 되었을까.
호텔 커피숍을 들어서는 당신을 멀리서 보면서 나는 직감했다. 내 사람이구나. 밤색 투피스를 입고 고개를 약간 치켜든 채 당신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던 것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무슨 신호를 접수한 것일까, 내 몸 안에서는 호르몬이 홍수처럼 분출했고 심장은 방망이질하듯 뛰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당신일까. 짧은 일별일 뿐인데도 치명적인 끌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반면에 수십 년을 알고 지내도 그저 덤덤한 사람이 있다. 아무리 만나도 마음에 흔적을 남기지는 못한다. 같은 만남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인연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우연이 된다.
당신보다 더 능력이 있고 더 예쁜 여자도 있었다. 그러나 가슴이 뛰지는 않았다. 비단 남녀 관계만이겠는가. 어떤 사람은 몇 초가 안 되어 호감이 생기고, 어떤 사람은 긴 시간을 얼굴 맞대도 그저 먼 타인으로 남는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인연(因緣)'이 아닐까. 더 나아가 운명, 필연, 숙명 같은 말도 필요해졌는지 모른다.
인연은 주어지지만 가꾸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선연(善緣)이 되거나, 악연(惡緣)이 되거나 한다. 인연 자체에 선과 악은 없다. 모든 것을 인연 탓으로 돌린다면 숙명론자가 된다. 숙명론자에게 인간은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정해진 연기만 하다가 퇴장할 뿐이다. 기독교의 예정설도 숙명론의 하나다. 인간을 자유의지가 없는 그런 피동적 존재로 보고 싶지는 않다.
인생은 인연과 선택이 서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무늬와 같다. 내 의지에 따른 선택에 책임을 지기 싫으니까 인연 탓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잘되면 내 탓이요, 잘못되면 조상 탓이다. 인연은 수동적인 인간이 도망치는 도피구가 아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얽혀서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다. 그 관계망을 인간이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단지 인연이라는 말로 이해할 뿐이다.
세상을 인연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좀 더 겸손해지지 않을까.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들꽃조차 어떤 인연이 되어 나와 만나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타자에 대해 따스한 시선을 보낼 수 있다. 이 세상에 하찮거나 아무렇지 않은 존재는 없다. 우리는 기체 분자처럼 탄성충돌을 하며 임의로 허공을 돌아다니는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다.
A가 있었다. 그와 무척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으나 종내 가슴에 있는 얘기를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A는 떠나갔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한참 뒤에서야 나는 혼자 중얼거리게 되었다. "그와는 인연이 아니었을 뿐인 걸!"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인연이 아닐 뿐'은 체념이 아니라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긍정적 수용이다. 소모적인 애착에 대한 명쾌한 치료약이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그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할 수 있다.
"인연", 하고 나직이 되뇌어보면 봄기운 같은 포근한 느낌이 밀려온다. 앞으로 내 인생에 또 어떤 인연이 찾아올까. 어디선가 동당동당하는 맑은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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