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웃으면서 비관

샌. 2022. 1. 17. 13:02

언젠가 밤에 차를 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선 고층 아파트의 창마다 켜 놓은 불빛이 환했다. 나는 저 집들마다 어떤 기구하고 아픈 사연들이 있을까, 라며 착잡한 마음으로 흘러가는 불빛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지인이 말했다. "와, 불빛이 꽃처럼 예쁘다. 창 너머 가족의 단란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똑같은 불빛을 보는 마음의 눈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면서 나는 지인의 옆얼굴을 부러워서 쳐다보았다. 반이 남아 있는 술잔을 보며 어떤 사람은 "반이나 남아 있다"라고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반밖에 없다"라고 슬퍼한다고 한다.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에 따라 현상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달라진다.

 

인간에게는 행복 유전자가 있고 개인에 따라 타고난 양이 다르다고 한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은 외적 요소보다 자신이 소유한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뜻이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 신경이 예민한 사람과 대범한 사람 중 누가 더 행복을 느낄지는 분명하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행복을 잘 맞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BC 400년 경에 활동했던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을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의 네 유형으로 분류했다. 사람을 똑 부러지게 넷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많이 가지고 있는 기질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혈질은 낙관적이며 즐겁게 사는 사람이다. 관계를 중요시하고 인기가 많다. 담즙질은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목표지향형이다. 승부욕이 강하며 자신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우울질은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깊이 생각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며 내성적이다. 점액질은 온화한 평화주의자로 갈등을 피하고 좋은 게 좋다고 믿는다.

 

나는 이 기준에 따르면 단연코 우울질이다. 내성적이고 소심하며 같은 사안이더라도 다른 사람에 비해 예민하고 근심이 많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보다 더 나빠질 미래를 상상하며 걱정한다. 그런 점에서는 비관주의자에 가깝다. 기질상 행복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실제로 내 삶이 행복하다고 자부하지 못한다.

 

행복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한계가 분명히 있다. 행복을 누리는 능력은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히포크라테스의 네 유형 중에서는 다혈질과 점액질이 단연 유리하다. 지인 중에서도 해당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 너무 단순하고 낙천적이라고 한 수 아래로 보지만 행복 면에서는 나보다 월등하게 앞서고 있음을 인정한다. "인생은 즐기는 것이야"라고 그들은 말한다. "인생은 의미를 찾는 데 있는 거야"라고 나는 말하지만 왠지 공허하고 쓸쓸하다.

 

성격은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내 우울질인들 어쩌겠는가. 안고 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사실 네 유형을 비교하며 어느 것이 낫고 못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개인의 특질이며 다양성의 표현일 뿐이다. 우울질은 예술과 철학 분야에서 뛰어난 소질을 보여준다. 세상을 보는 견해에서 나는 비관주의가 낙관주의보다 더 진실에 접근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우울질인 나를 긍정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비관을 비관할 게 아니라 웃으면서 비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웃으면서 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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