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전후한 연휴 기간 동안 30도가 넘는 기온이 이어졌다. 고향에서의 추석날은 34도까지 올라가서 여간 더운 게 아니었다. 이러다가는 '추석'이라는 명칭을 '하석(夏夕)'으로 바꿔야겠다.
올해는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추석을 보냈다. 차례는 지내지 않으므로 다른 형제들은 모이지 않은 단출한 명절이었다. 추석 전날은 어머니를 모시고 예천에 있는 외할머니 산소를 찾아보고 바람을 쐬러 무섬마을에 들렀다. 오랜만의 바깥 나들이에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어머니의 밭농사가 끝난 줄 알았다. 자식들이 극구 말리니 안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그런데 웬 걸, 산소 가는 길에 들러보니 500평 밭이 무성하게 자란 들깨로 빽빽했다. 올해도 자식들 몰래 가꾼 것이다. 아흔이 지난 지 한참이나 된 노인인데 집 부근의 텃밭으로는 모자라서 산 너머 밭까지 가꾸다니,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모르겠다. 몸이 성치 않건만 이 막무가내의 농사에 대한 집착은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은 아직 할 만하다고,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거니 걱정 말라고 하지만, 자식으로는 여간 염려되는 게 아니다. 옆에 붙어서 왕래 못하게 지키지 않는 한 막을 방법이 없다.
고향 마을을 둘러싼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쉼없이 피어올랐다. 인간사 오고 가는 것들이 저 구름이 생겼다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저녁 하늘에 한가위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휴대폰(갤럭시 S22)으로 달만 확대해서 찍어 보았다. 예상보다 잘 나오긴 하는데 렌즈보다는 자체 내장된 보정빨 덕이 아닌가 싶다.
누구는 가족과 여행중이라 하고, 누구는 찾아온 손주들 재롱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하는데, 나는 고향의 노모를 찾아뵙고 반가움과 안타까움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했다. 허전함 가운데서 충만했던 2024년의 뜨거운 추석이었다.
귀경길 정체가 겁나서 추석날 밤 11시에 출발했다. 그런데도 곳곳에서 막혔고 집에 도착하니 2시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