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민영환 묘

샌. 2024. 9. 8. 10:47

 

용인에 간 길에 마침 민영환 선생 묘가 부근에 있어 들렀다. 충정공 민영환(閔泳煥, 1861~1905) 선생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이다. 선생의 묘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다.

 

선생은 동부승지, 이조참판, 한성부윤 등의 요직을 지냈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도 참석하는 등 일찍이 서구 문명을 접하며 나라의 개혁에 앞장섰지만 친일 세력에 의해 좌절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반대 상소를 올리며 항의했으나 실패하자 동포와 각국 공사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묘소 비문에는 선생의 유언이 새겨져 있다.

 

"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 가운데에서 모두 진멸 당하려 하는도다.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얻을 것이니, 여러분이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영환은 다만 한 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영환은 죽되 죽지 아니하고, 구천에서도 여러분을 기필코 돕기를 기약하니, 바라건대 우리 동포 형제들은 억천만 배 더 기운 내어 힘씀으로써 뜻과 기개를 굳건히 하여 학문에 힘쓰고, 마음으로 단결하고 힘을 합쳐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은 자는 마땅히 저 어둡고 어둑한 죽음의 늪에서나마 기뻐 웃으리로다.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라."

 

 

비문 앞면의 '桂庭閔忠正公泳煥之墓'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글씨만으로 보면 이승만은 명필이라고 불러도 될 듯). 이승만은 민영환이 써준 소개장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미국 상원의원을 만나며 활동한다. 계정(桂庭)'은 선생의 호이고, 충정(忠正)은 선생이 돌아가신 뒤에 받은 시호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허약한 조선은 밀려오는 외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과정에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분들이 여럿 계셨다. 반대로 어떤 자들은 시류에 편승하면서 부귀영화의 길을 택하고 대대로 가문이 번성했다. "천도(天道)는 어디 있느냐?"라고 한탄한 사마천의 탄식이 떠오르며 선생의 묘를 둘러보는 심정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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