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첫날에 우리 동네와 뒷산길을 산책하다. 고향에는 내일 내려갈 예정이라 오늘은 태풍 전야처럼 고요하다. 내일은 교통 상황을 살펴 정체 없는 시간을 택해 출발해야겠다.
명절이 다가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아내도 나도 마찬가지다. 도로 정체는 차치하고 우선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피곤하다. 억지로 의무방어전을 치러야 하는 기분이다. 젊을 때도 그랬고 늙어서도 다르지 않다. 지금은 고향 상황이 서먹하게 변했고 찾아가는 설렘이나 활기가 사라졌다. 사람의 도리이니 안 할 수가 없는 그런 의무 비슷한 것이다.
숲길에 있는 벤치에 누워 나무 사이로 떠가는 구름을 바라본다. 나날살이가 부운(浮雲)과 같지 않으랴. 바람 부는 대로 정처 없이 흘러갈 뿐이다. 구름을 이루는 입자들은 제 잘 난 줄 알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닐 것이지만 넓은 눈으로 보면 꼭두각시의 춤에 불과하지 않은가. 자꾸 쓸쓸하고 서글픈 상념이 몰려와서 고개를 돌린다.
추석 연휴이어선지 숲길은 조용했다. 오래 기다려서 한 여인이 지나갔다.
우리 동네에 새 아파트가 들어섰고 곧 입주를 앞두고 있다. 전에는 이곳이 논과 밭이었는데 이렇듯 주거단지로 변했다. 논두렁 밭두렁을 따라 걷던 정겨웠던 길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같은 자리에 있건만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내팽개쳐진 것 같았다.
이곳으로 이사 오는 많은 사람들은 부푼 꿈을 안고 새 집에 들어올 것이다. 내 아쉬움보다는 그들의 꿈과 희망이 결실을 맺어야 마땅하다. 지근거리에서 살아갈 이웃이지만 실제는 멀리 제주도에 사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도시나 아파트 생활이라는 게 그렇다. 문명은 인간을 원자 알갱이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어쨌든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새 식구를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