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네는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산다. 구조가 특이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다락방이 있고, 옥상에는 마당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있다. 공중에 만든 단독주택에 사는 것 같다. 옥상에 서면 하늘이 360도로 펼쳐져서 가슴이 탁 트인다. 아래는 온통 아파트 숲뿐이지만.
꼭대기 층에다 옥상 마당의 존재가 이 집의 가치를 높여준다. 특히 층간소음에서 자유롭게 사는 점이 제일 부럽다. 위층 올빼미 때문에 10년 넘게 밤잠을 설치는 날이 잦은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유난히 심한 이를 알고 있다. 전투기 소리만 들어도 두려움에 떤다. 얼마 전에는 헬리콥터 여러 대가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걸 보고 전쟁이 날까 봐 방독면을 구입하고 대피처를 검색했다고 한다. 어릴 때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노이로제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소음에 관한 한 내가 그 지경이다. 미리 겁을 먹고 과잉반응을 한다. 대수롭지 않은 소리임에도 나에게 피해를 준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오랜 기간 누적된 결과가 이런 심리적 이상을 일으키는 것 같다. 외부 환경에서 사달이 일어났지만 일을 키우는 건 나에게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같은 자리의 아내는 아무렇지 않은 데 말이다.
점점 더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나이가 들 수록 바늘 하나 꼽을 자리가 없는 정도로 마음이 옹색해져서 슬프다. 불교에 관한 책을 읽다가 만난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는 단어에 오래 머물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공활한 가을 하늘이 더없이 맑고 푸르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쉰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뒷산에 오르다 (0) | 2024.10.10 |
---|---|
전주 4박5일 (0) | 2024.10.06 |
남한강변 드라이브 (0) | 2024.09.26 |
뜨거운 추석을 고향에서 보내다 (0) | 2024.09.19 |
추석 연휴 첫날의 동네 산책 (0) | 2024.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