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2박3일 일정으로 거제도와 통영을 다녀왔다. 옛 기록을 찾아보니 이 지역 여행을 다녀온 게 2005년이었으니 어느새 19년이 되었다. 그때 일은 단편적으로 두세 장면이 떠오를 뿐이어서 마치 처음 가 보는 곳처럼 새로웠다. 옛 추억을 되새김하기에는 너무나 긴 세월이 되었다.
처음 찾은 곳은 거제 파노라마 케이블카였다. 학동고개에서 노자산 정상까지 1.5km 길이로,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 전경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시설이 깔끔한 걸 보니 개통한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다음은 학동흑진주몽돌해변을 찾았다. 몽돌 위에 앉으니 자갈 위를 들고나는 파도소리가 귀를 채웠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명상에 잠겼다.
도장포선착장 옆에 있는 바람의 언덕은 유일하게 옛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다. 왜 명소로 이름이 났는지 그때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람'의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풍차 같은 시설물이 들어서는 것보다 차라리 억새 평원을 조성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순교자 윤봉문 요셉 성지를 참배했다.
거제도 숙소는 홈포레스트 리조트였다. 시설이 낡았지만 방이 세 개여서 여유롭게 쉴 수 있었다.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 입은 뒤 근처 쌈밥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는 옥포 시내가 비스듬히 내려다 보였다. 준비해 간 누룽지를 끓여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통영으로 넘어가는 길에 '정글 돔'이라는 거제식물원이 보여 우연히 들렀다. 우선 외관이 눈길을 끌었는데 내부 역시 단순히 식물만 진열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를 해 놓아 흥미를 잃지 않게 한 점이 좋았다.
공기뿌리를 가진 시서스 버티실라타(Cissus verticillata)라는 식물이 신기했다.
새둥지 안에 아내가 들어갔다.
통영에서 첫번째로 들린 곳은 이순신공원이었다. 한산대첩이 벌어진 바다를 장군이 손을 뻗어 가리키고 있다.
차를 중앙전통시장공영주차장에 주차시키고 동피랑마을 골목길을 돌아보았다. 꼭대기에 동포루가 있는데 통영성의 일부분이다. 동피랑을 꾸민 감성에 동화되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먹었나 보다.
삼도수군통제영 안에 있는 세병관은 바닥 공사중이었다. 국보인 이 건물은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1604년에 6대 통제사인 이경준이 세웠다고 한다.
'세병(洗兵)'이란 말에는 병장기를 씻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평화가 담긴 염원을 담고 있어 뜻깊었다.
세병관으로 들어가는 문 현판인 '지과문'의 '지과(止戈)'도 같은 뜻이리라.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점심은 서호시장 옆 골목에 있는 자그마한 식당에서 했다. 노모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딸이 서빙을 했다. 이름난 맛집보다 이런 집에 훨씬 더 정감이 간다.
오후에는 미륵산 케이블카를 탔다. 어제 거제도 케이블카처럼 꼭대기에 올라가면 한려수도의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수월하게 미륵산 정상에도 올랐다.
통영은 박경리 작가의 고향이다. 미륵산 아래 작가의 묘가 있는 인근에 박경리기념관이 있다. 늦은 오후에 기념관 뜰을 거니는 분위기가 아늑했다.
"책은 구원이었고 숨 쉴 통로였으며 외롭지 않았다. 동굴 속과도 같이 차단된 세계 속에서 책은 유일한 벗이었다."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 행복하고 싶다."
석양 명소인 달아공원에 갔을 때 해가 저물고 있었다. 수평선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지는 못했다.
통영에서의 숙소는 방 두개의 한산콘도였다. 나이가 드니 밖에 나오면 편안한 잠자리가 제일 순위가 된다. 우리 부부는 따로 잠자리가 습관이 되어 숙소는 늘 방이 두 개 이상인 곳을 예약한다. 숙소가 통영항에 붙어 있어 하역 작업의 소음으로 시끄러운 걸 빼면 만족스러웠다.
통영관광지도를 보니 오늘 우리가 다닌 곳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하루 가지고는 통영을 제대로 만나기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시장을 다니며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한 탓에 저녁은 편의점 컵라면으로 간단히 때웠다. 항구의 소음이 자장가로 들리면서 곧 곤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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