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75

밍밍한 걷기

하루의 감정 상태는 일기(日氣)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이가 들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요 며칠 동안 잔뜩 흐린 채 간간이 비가 뿌리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왕 내리는 비라면 시원하게 뿌렸으면 좋으련만 전립선 걸린 중년 남자의 오줌발처럼 찔끔거린다. 경안천으로 걷기에 나서보지만 우중충한 하늘 아래서 마음만 개이길 바랄 수 있겠는가. 밍밍하면서 기계적인 걷기다. 이런 마음이라면 발 옆에 핀 꽃에도 눈길을 주지 못한다. 맹물에 식은 밥을 말아먹는 맛이다. 된장에 매콤한 고추라도 마련되어 있다면 좋으련만. 안팎이 다 시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면서 우울하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공원의 약 올리듯 선명한 초록 잔디를 보며 중얼거린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밍밍한 맛도 때론 별미가 될 수 있..

사진속일상 2023.08.25

태풍 지난 뒤 경안천

태풍 카눈이 얌전하게 지나갔다. 한반도에 들어온 뒤에는 세력이 약해져서 우리 고장을 관통했건만 태풍이라는 실감을 하지 못했다.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시동이 꺼져버린 자동차 같은 모양새였다. 대신 태풍이 남긴 구름이 이틀째까지 사라지지 않으면서 가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산을 들고 오랜만에 경안천에 나갔다. 그래도 천변의 낮은 길은 물에 잠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안천의 지류인 직리천에서는 궂은 날씨지만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부부가 보였다. 어머니 손에는 곤충 채집망이 들려 있다.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여름방학이면 곤충/식물 채집 숙제가 있었다. 방학책 표지에는 으레껏 채집망을 어깨에 걸친 아이들 그림이 나왔다. 지금 돌아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려는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

사진속일상 2023.08.13

탄천의 여름 저녁

분당에서 셋이 만나 네댓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니 저녁 무렵이었다. 그냥 들어가기가 아쉬워 탄천에 나가서 산책로를 걸었다. 야탑에서 정자까지 약 6km 되는 거리였다. 장마철이라 공기는 꿉꿉했고, 구름이 드리운 하늘은 매직아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걷다가 우연히 너구리를 만났다. 도심 하천에서 너구리를 만날 줄이야. 숲에서 살아야 할 녀석이 어찌 인간의 마을 속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저들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쫓겨나듯 피난 온 것일까, 아니면 먹이를 찾아 여기까지 내려온 것일까. 지난 코로나의 경험으로 보건대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환경 파괴가 가속화되면 더욱 불가피한 일이 될지 모른다. 너구리 하면 1980년대에 삼미에서 활약했던 장명부 선수가 떠오른다..

사진속일상 2023.07.09

장마 시작된 전주천

장모님 생신을 맞아 처가쪽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마가 시작된 날과 겹쳐서 사흘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비가 소강상태일 때 전주천변 길을 걸었다. 둔치에는 6월의 코스모스 꽃밭이 있었다. 이미 한창이 지난 듯 꽃씨를 받는 사람도 보였다. 전에는 코스모스가 가을의 전령사라 했는데 이젠 옛말이 되었다. 전주천의 여름은 기생초와 개망초꽃으로 환했다. 군데군데 루드베키아가 화려한 치장술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말로는 원추천인국이다. 이 꽃을 보면 여름이 깊어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꽃이 피면 시들듯 인간이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라면 인간은 다가올 죽음을 예견하며 온갖 근심 걱정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발버둥친들 피고짐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하물며 어떤 꽃은 개구쟁이의 손에 꺾여서 버려지기도 한..

사진속일상 2023.06.27

일자, 고덕산 둘레길을 걷다

일자산, 고덕산 둘레길은 서울 둘레길 3코스의 일부다. 용두회 여섯 명이 이 길을 걸었다. 7년 전에 같은 모임에서 서울 둘레길 전 코스를 걸었었는데 그때와는 역방향이지만 완전히 처음 걷는 길처럼 새로웠다. 길이야 얼마나 달라졌겠느냐만 인간의 기억이란 게 대부분 아침 안개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스러지기 때문이리라. 이번 길에서는 일자산공원에 있는 미루나무/포플러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미루나무만 보면 곧장 고향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때는 신작로 가로수가 미루나무였다. 길 양쪽에 두 줄로 도열하듯 늘어선 키다리 미루나무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미루나무는 동네 앞을 흐르는 냇가를 따라서 자랐고, 저수지 둑방에도 있었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 고향이 서운한 것은 미루나무의 부재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진속일상 2023.06.08

맑고 바람 좋은 날

노동절 연휴의 끝, 맑고 바람 좋은 5월의 첫날이었다. 오랜만에 뒷산에 오르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금은 신록(新綠)을 지나 성록(盛綠)의 계절을 앞두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여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런 날은 내 마음도 하늘 높이 올라가는 풍선이 된다. 하늘 높은 데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지구별이 아닐까.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며 끝없이 끝없이 올라가보고 싶다. 꽃들은 서로 화내지 않겠지 향기로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싸우지 않겠지 예쁘게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겠지 사랑만 하니까 비가 오면 함께 젖고 바람 불면 함께 흔들리며 어울려 피는 기쁨으로 웃기만 하네 다불어 사는 행복으로 즐겁기만 하네 꽃을 보고도 못 보는 사람이여 한철 피었다 지는 꽃들도 그렇..

사진속일상 2023.05.02

평창 생태마을에 다녀오다

평창에 있는 생태마을에 아내와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정식 명칭은 '성필립보 생태마을'이다.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운영하는 환경 생태 농원으로 황창연 신부님이 담당하고 계신다.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신자들을 위한 피정 시설도 있다. 아내가 생태마을 회원이어서 신청한 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생태마을은 예상했던 대로 규모가 상당했다. 생태마을의 주 생산품은 우리 콩으로 만드는 간장, 된장, 청국장 가루다. 참나무 장작으로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황토방에서 발효시킨다. 생태마을에는 300개의 장독이 있다. 생태마을 옆으로 평창강이 흐른다. 생태마을을 조성하기까지 애쓴 여러 분들의 노고를 생각한다. 휴식과 힐링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방은 두 명씩 사용한다. 이번에는 여덟 명이 참가했..

사진속일상 2023.04.27

추억의 서달산

15년 전 서울 생활 마지막에 살았던 동네는 동작동이었다. 아파트가 서달산 옆에 붙어 있어서 시간이 나면 오르곤 했다. 뒷산이었던 셈이다. 여기 살 때 교직에서도 은퇴한 터여서 기억에 많이 남는 장소다. 경떠모에서 서달산 트레킹이 있었다. 서달산은 국립현충원을 둘러싸고 있어서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길은 그때와 여전하고, 이렇게저렇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발걸음을 자꾸 느리게 만들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훌쩍 이동한 것처럼 어리둥절했다. 산길에서 당시 살았던 아파트가 보였다. 울면서 들어가서 요란했던 4년을 보내고 떠난 곳이었다. 아내가 뇌수술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회복 기간에 아내와 함께 현충원 산책을 자주 나왔다. 유난히 이곳에서 살았던 때에 애틋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

사진속일상 2023.04.15

괭이눈 핀 뒷산

뒷산에서 가장 일찍 피는 풀꽃은 괭이눈(흰털괭이눈)이다. 올해는 개화 시기가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는 빠른 것 같다. 3월 중순인데 벌써 앙증맞은 노란 꽃이 피었다. 낮 기온은 15도까지 올라서 완연한 봄날씨다. 오전에 뒷산을 올라갔다 왔다. 봄기운이 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파트 화단에는 이미 제비꽃, 꽃다지, 냉이꽃, 개불알풀꽃 등이 피어났다. 조금 더 있으면 봄맞이꽃도 보일 것이다. 내 곁에 성큼 다가온 봄에 어리둥절하다. 뒷산에는 생강나무가 많다. 진달래는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은 어치를 자주 만났다. 지저귀는 소리가 특이해서 귀여겨들었다. 건너편 산자락을 따라 서울-세종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자꾸 연기되더니 내년 중반이 되어야 개통할 수 있다고 한다. 길이 열리면 북쪽으로는 포..

사진속일상 2023.03.18

작은 영장산을 걷다

성남에는 영장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둘 있다. 하나는 복정동에 있는 높이 193m의 작은 영장산이고, 다른 하나는 이매동에 있는 413m의 큰 영장산이다. 오늘은 용두회에서 작은 영장산을 걸었다. 성남 누비길 1코스가 작은 영장산을 지나간다. 우리는 복정역에서 출발하여 영장산을 지나 산성역까지만 걸었다. 길이로는 약 4km가 되고, 쉬엄쉬엄 걷다 보니 두 시간이 약간 더 걸렸다. 봄이 오는 산길은 폭신하고 좋았다. 산기슭에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예년보다 봄꽃 개화 시기가 빠른 것 같다. 산 중턱의 생강나무도 꽃을 피웠고, 매화도 만개 직전이다. 기습 공격하듯 봄이 쳐들어온 느낌이다. 이제 직박구리도 바빠지는 철이 되었다. 쉼터에는 누군가가 나무뿌리로 바람막을 만들어 놓았다. 걷는 중에 이슬비가 살..

사진속일상 2023.03.09

봄의 초입에 뒷산 한 바퀴

어느덧 3월이 시작되었다. 남쪽에서 꽃소식이 들려오니 여기도 봄이 멀지 않았다. 뻣뻣해진 몸을 풀 겸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구름이 잔뜩 낀 꾸무룩한 날씨였다. 올라갈 때는 작은 경사에도 숨이 차서 헉헉거렸다. 이제 산과 가까워지기 위해 기지개를 켤 때가 된 것 같다. 눈으로 보이는 산 풍경은 봄이 아직 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낙엽 사이로 괭이눈 초록잎이 벌써 이만큼 자라 있다. 대지는 이미 생명의 약동으로 꿈틀대고 있다. 나무를 쪼고 있는 오색딱따구리도 만났다. 톡 톡, 하는 경쾌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 역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봄의 신호다. 지금은 황량하지만 뒷산의 진달래길은 곧 연분홍 꽃으로 장식되리라. 뒷산을 한 바퀴 도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오늘만큼 몸이 무거웠던 적이 없었..

사진속일상 2023.03.02

뒷산 자작나무

동네 걷기를 하다가 산 능선을 넘어 이웃 동네로 가는 길을 택했다. 처음 가 보는 길이었는데 내려가는 산길에서 자작나무 군락지를 발견했다. 약 300평 정도 되는 면적에 자작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줄기가 굵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만큼 자라자면 10년은 족히 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자작나무를 좋아해서 밤골 집 뒤에 울타리 겸 해서 10여 그루를 심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면 벌써 20년도 더 되었으니 상당한 크기로 자랐을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심었던 그 나무만은 다시 만나보고 싶다. 어쨌든 뒷산에서 뜻밖에 만난 자작나무가 무척 반가웠다. 처음 걷는 길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녔을 길 위에 나도 발을 포개며 동참한다. 길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다져지는 것이다..

사진속일상 2023.02.14

성남 희망대공원

성남 단대동에 살고 있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인근에 있는 희망대공원을 찾았다. 희망대(希望臺)공원은 1970년대에 성남시에서 만든 최초의 공원이라고 한다. 지하철 단대오거리역에서 가깝다. 희망대공원은 성남 제1공단근린공원과 붙어 있다. 이름으로 봐서 옛날에 이곳에는 공단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살지 않았으니 옛 모습과 비교는 어렵지만 면모가 일신된 것은 확실하다. 두 공원이 맞붙은 곳에 이 원형 육교가 있다. '공단'과 '희망'을 연결해 주는 다리다. 원형 육교에서 바라본 공원 아래쪽 모습이다. 배롱나무는 하얀 겨울 외투를 입고 있다. 희망대공원은 얕은 야산에 조성되어 있다. 산을 끼고 도는 산책로다. 산 꼭대기에는 공원 표지석과 팔각정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성남에 산 적이 있었다. 그때의..

사진속일상 2023.01.10

술이 고픈 날

답답하고 짜증이 이는 날이 있다. 이런 때는 밖에 나가 걸음을 하는 것이 특효약이다. 걷는다는 단조로운 몸의 움직임이 얽힌 마음을 풀어준다. 어제도 그랬다. 방에 가만있다가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미세먼지가 빨간색으로 경고를 했지만 밖으로 나섰다. 걸으면서 서로 다른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나는 말한다. 뭐 그런 칠칠치 못한 놈들이 있냐구. 넌 참 운도 없구나. 네가 화낼만하다니까. 다른 하나는 말한다. 잘 봐, 그런 게 아니잖아. 화가 어디에서 온 거니.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답이 없다고. 둘이서 실컷 싸우게 놔둔다. 얼마 지나면 자연스레 한 목소리가 사그라든다. 또한 내 안의 어린아이도 보인다. 내 의식의 심층부에는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가 있어 내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길위의단상 2023.01.09

뒷산에서 겨울바람을 맞다

날이 풀어졌지만 새벽 기온은 -10도를 오르내린다. 낮기온 역시 영상으로 치고오르기는 벅차 보인다. 춥지는 않지만 싸늘하다. 겨울 냉기를 맞기 위해 뒷산에 올랐다. 응달진 산길에는 눈이 녹지 못하고 사람들 발에 밟혀 얼어 있다. 뒷산은 경사가 급한 곳 없이 온순해 걷기에는 지장이 없다. 일흔 줄에 들어서니 새해를 맞는 심사가 심드렁하다. 또한 세월의 무상함에 대한 슬픔이 짙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말했다. "How sad it makes one feel to sit down quietly and think of the flight of the old year, and the unceremonious obtrusion oh the new year upon our notice! How many thing..

사진속일상 2023.01.04

새해 첫날 경안천을 걷다

2023년이 열렸다. 새해 첫날 창밖에서 우짖는 까치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왠지 좋은 일이 여럿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2023년이다.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경안천에 나갔다. 자글거리는 겨울 햇살이 따스했다. 산책로의 눈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졌고, 경안천의 얼음도 풀리기 시작했다. 요 며칠 낮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효과다. 천변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경안천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즐겼다. 햇빛으로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이것만 보면 벌써 봄이 온 것 같다. 산 능선과 높이를 맞추며 가지런히 자라는 나무를 보라. 나 혼자 튀어나가지 않고 옆 나무와 보조를 맞추며 사이좋게 나란히 자란다.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우리 지역을 통과하는 이 길은 일본과 미주로 오가는 비행기 노선이..

사진속일상 2023.01.01

아차산숲속도서관

서울 광진구 아차산 자락에 새로 생긴 도서관이다. 주택가와 떨어진 곳에 산을 옆에 끼고 있어 이름이 '아차산숲속도서관'이다.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쉼터와 힐링에 중점을 둔 도서관이다. 도서관 내부도 장서보다는 책과 함께 하는 쉼터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뒀다.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이제는 도서관이 책을 보고 빌리는 장소만이 아니다. 다양한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복합 문화 시설로 변하고 있다. 이런 인프라가 문화 강국을 만드는 바탕이 될 것이다. 우리 동네에도 중앙공원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박물관, 체육관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도서관 소식은 없다. 나중에라도 추가될 희망을 품어본다. 도서관을 구경하고 아차산길을 걸었다. 광진숲나루에서 바라본 천호대로가 ..

사진속일상 2022.12.10

겨울 맞는 경안천에 나가다

오랜만에 망원렌즈를 챙겨서 경안천에 나갔다. 혹시 황새나 고니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겨울철새들을 만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 여기서는 대체로 1월은 되어야 한다. 초겨울 추위가 물러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날이었다. 천변길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늘었다. 파크골프장에서는 동호인들의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파크골프는 공을 굴려서 홀에 넣는다는 점이 골프와 다르다. 공을 치는 사람들이 화기애애하면서 상당히 재미있어한다. 은근히 관심이 가는 운동이다. 새들이 겨울 햇살을 쬐며 옹기종기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늘 눈에 띄는 놈은 청둥이와 흰뺨검둥이다. 배가 하얗고 머리는 까만 오리가 몇 마리 섞여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돌아오면서 고향순대집에 들러 뜨끈한 순댓국으로 배를 채웠다. 전 같으..

사진속일상 2022.12.08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걷다

용두회 여덟 명이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걸었다. 이 길은 한탄강을 따라 만든 3.6km의 잔도로 한탄가의 주상절리 협곡을 감상할 수 있다. 단풍철이 지난 평일인데도 주차장은 차로 가득했다. 그나마 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드르니에서 순담 가는 방향으로 걸었다. 입장료는 1만 원인데 5천 원은 철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수십 만 년 전 어느때 한탄강 상류 지역에서 화산이 폭발했고, 한탄강을 따라 흘러내린 용암이 굳으면서 각진 기둥형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졌다. 그 위로 강물이 흐르면서 침식되어 현재의 현무암 협곡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더 침식작용이 일어나면 현무암 밑에 있는 퇴적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가 있는 명품길임을 ..

사진속일상 2022.11.11

2022년 남한산성의 가을

가을 속에서 가을을 만나러 남한산성에 갔다. 이번에는 장경사를 기점으로 해서 성곽을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가을이 잘 익은 맑은 날이었다. 남한산성에는 단풍나무가 드물어 산 색깔이 화려하지는 않다. 동문 주변도 갈색 톤으로 물들었다. 사람이 많을 남문과 북문 구간을 피하기 위해 개원사로 내려와서 산성리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향했다. 주 성곽에서 벗어나 남한산 정상까지 다녀왔는데 새롭게 정상 표지석이 만들어져 있었다. 정상부는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 표지석은 실제 위치에서 100m 정도 벗어난 곳에 있다. 산하를 물들인 가을 색깔이 은은하며 고왔다. 남한산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1624년(인조 2)부터 쌓기 시작해서 2년 뒤에 완성한 성이다. 축성 작업에는 주로 군인과 승려들이 동원되었..

사진속일상 2022.10.28

10월 하순의 뒷산

10월 하순의 뒷산은 선방처럼 고요하다. 여름 지나 초가을까지 요란하던 풀벌레 소리도 희한하게 딱 그쳤다. 바람이 스치면 바싹 마른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길에 깔린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멀리 나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보는 올해 단풍은 칙칙하다. 뒷산에 있는 단풍나무는 붉은 색깔이 드는 듯하다가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강수량이 적어서 많이 건조한 탓일까. 지난 두 주일은 바쁘게 지냈다. 둘째 주는 고향에 나흘간 가 있었고, 셋째 주는 바둑, 당구, 이웃 모임이 있었다. 평소에 비하면 나들이가 잦은 셈이었다. 그래선지 안정이 되지 못하고 뭔가 붕 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혼자의 산길이 고마웠다. 이때에야 비로소 위안을 받으면서 충만해진다.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무엇인지, 사람..

사진속일상 2022.10.24

시청까지 걸어서 왕복하다

시청에 볼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한 번 걸어서 가보고 싶었다. 집에서 시청까지는 직선거리로 3km지만 시끄러운 차도를 따라 걸을 수는 없고 우회를 해야 하므로 실제 걷는 거리는 4km가량 되었다. 오가는 길에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이미 한참 전에 공식적인 노인이 되었지만 '노인 복지관' 시설을 이용해 보지는 않았다. 취미 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다.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은 지원해도 자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들어가 보았더니 내부는 깔끔했고 방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바둑 대국실도 환경이 괜찮았다. 심심할 때 여기 와서 바둑 한 판 두어볼까? 송정동은 도시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었다. 10만 평에 이르는 넓은 구역이다. 한쪽에서는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고, 이곳 빈 터에는 단..

사진속일상 2022.10.05

가을을 기다리는 뒷산

여름이 떠나가기 싫은가 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가 싶더니 낮에는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높다. 일교차가 커서 감기를 조심해야 할 날씨다. 한 달만에 뒷산에 올랐다. 8월 이후로 코로나에 걸리고, 허리를 삐끗해서 몸이 많이 부실해졌다. 일흔이 넘으니 노화 현상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느낌이다. 이젠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도 쓰지 못하겠다. 산 입구의 햇빛을 잘 받는 나무에는 단풍물이 들기 시작했다. 산속은 여전히 여름이다. 가끔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산길의 사색을 끊는다. 가느다란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숲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는 천둥만큼 크다. 한 친구가 단톡방에 새무엘 얼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올렸다. 이 시를 애송했다는 맥아더는 일흔 살에 한국전에 참전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다고 ..

사진속일상 2022.10.02

목현천에 나가다

몸 상태가 80% 정도 올라왔다. 아직 허리를 굽히거나 돌릴 때 통증이 있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세월은 빨리 흐르지만, 늙은 몸의 회복은 더디다. 목현천에 나갔다. 목현천은 지난달 큰물이 났을 때 범람하면서 많은 피해가 났던 곳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이 갑자기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지금은 쌓인 토사를 제거하는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이배재를 지나 성남으로 가는 새 도로가 건설중이다. 넓은 무궁화 꽃밭도 새로 만들어져 있다. 어쩌면 묘목을 기르는 곳인지 모른다. 오랜만에 이쪽으로 나오니 여러가지가 달라졌다. 집에서 목현천을 오가자면 산자락에 난 길을 지나야 한다. 가을이 짙어지면 단풍이 아름다운, 짧지만 운치 있는 길이다..

사진속일상 2022.09.20

뒷산으로 쫓겨나다

이웃집 공사 소음이 심해서 뒷산으로 피난을 가다. 덕분에 오붓하게 초가을의 산길을 걷다. 계절이 변하니 산길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숲에는 늦은 매미들의 세레나데와 풀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나지막이 울려퍼진다. 한여름의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은 부드러워지면서 전체적으로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누군가가 산길을 따라 연이어 배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다가올 태풍에 대비한 조치로 보인다. 강력한 태풍으로 예고된 태풍 '힘남노'가 6일 오전에 남해안에 상륙한다고 한다. 3일 오후 1시 현재 힘남노의 위성사진이다. 대만 동쪽 해상에 있다. 중심기압 940hPa, 최대풍속 48m/s인 매우 강한 태풍이다. 내일은 더 발달하여 중심기압이 920hPa까지 내려간다. 초강력 태풍으로 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상륙하는 6일에..

사진속일상 2022.09.03

탄천에 나가다

당구 모임에 가는 길에 탄천에 나갔다. 오후 모임이었지만 아파트 이웃이 공사를 하는 탓에 소음이 커서 일찍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분당 매화마을에서 버스를 내려 여수천을 따라 내려가 탄천과 합류했다. 여수천 곳곳에는 지난 수해의 상흔이 남아 있다. 걷는 도중에 조깅을 하는 레펜스 선수를 봤다. 분당에 집을 얻어 아내와 함께 생활하며 당구선수 활동을 하는 벨기에 선수다. 매너와 인상이 좋아서 시합에 나오면 응원을 한다. 다시 한번 우승하길 바란다. 청명한 초가을 날씨로 한낮 햇볕은 따가웠다. 한 시간 반 정도 천변을 걷다가 이매역에서 전철을 타고 모임 장소로 갔다. 알코올은 입에 대지 않으면서 술자리에 오래 동석했다. 술 취한 친구들 넋두리를 듣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허나 과거 내 모습이 그러하지 않..

사진속일상 2022.09.02

가을이 성큼 다가오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기온이 떨어져서 아침저녁에는 쌀쌀하기까지 하다. 밤에 잘 때는 창문을 모두 닫아야 한다. 여름 이불은 거두어 세탁기에 넣었다. 계절의 변화가 거인의 발걸음처럼 한순간에 닥치니 깜짝 놀란다. 가을 하늘이 좋아서 집을 나섰다. 경안천을 걸으면서 온통 하늘에 마음을 뺏겼다. 뒤돌아 본 남쪽 하늘에는 비취색 구름이 떴다. 파란 하늘에 비단 조각처럼 걸린 비취운(翡翠雲)이었다. 경안천 건너편으로 건너갈 돌다리가 지난 폭우로 유실되었다. 할 수 없이 온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왜가리, 백로, 오리가 사이좋게 이웃하며 쉬고 있다. 이런 날의 햇살은 보약과 같다. 얼굴을 간지리는 햇살을 담뿍 받아들였다. 무거운 몸이지만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면서 가을을 맞으러 나간 길이었다.

사진속일상 2022.08.28

습지생태공원에서 서하보를 왕복하다

경안천에 나갈 생각이 든 건 가마우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서하보 부근에 수백 마리의 가마우지 떼가 몰려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하늘을 까맣게 덮을 정도로 많은 가마우지들이 날고 있었다. 이왕 경안천에 나간 길에 걷기를 겸해서 습지생태공원에 주차를 하고 서하보까지 걸어서 갔다. 약 3km 정도 되는 거리다. 서하보는 이름 그대로 광주시 서하리에 있는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보다. 보 옆에 사람이 건너는 다리는 높지 않아서 물에 쉽게 잠긴다. 서하보에는 지난 홍수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서하리(西霞里)는 '서쪽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익희 선생 생가가 있다. 가마우지 떼를 보려던 꿈은 꽝이 되었다. 다른 곳으로 가 버린 모양이다. 대신 천 가운데서 쉬고 있는 왜가리와 백로를..

사진속일상 2022.08.23

녹음 속을 걷다

사람의 감정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의 상태는 완연히 다르다. 특히 비라도 오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멜랑콜리해진다. 당기는 음식이 달라지면서 소화 기능도 연동되어 있는 것 같다. 지난 며칠간은 날씨에 따라 희비의 진동폭이 컸다. 흐렸다 개였다를 반복하는 날, 뒷산에 올라 짙은 녹음 속을 걸었다. 습도가 높아 땀을 상당히 흘렸다. 그래도 바람이 시원했고 고개를 들면 환한 녹색의 나뭇잎이 살랑이며 반겼다. 뒷산의 털중나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피어났다. 청딱다구리 암수 한 쌍이 열심히 모이를 찾고 있다. 청딱다구리는 개미를 잘 잡아먹는다는데 소문대로 땅을 열심히 쪼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나를 별로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이번에는 영상 위주로 뒷산을 기록해 봤다. 재미는 ..

사진속일상 2022.06.18

바람 좋은 날에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하늘도 맑고 파랗다. 이런 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날씨의 유혹에 저항할 수가 없다. 작은 배낭을 메고 가벼운 걷기에 나선다.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는 기초 공사가 끝나고 1층이 올라가고 있다. 산길로 들어선다. 이쁜 산길이어서 뒤돌아 다시 갔다가 온다. 쉼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해가 다르게 변한다. 모두가 근래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이다. 내가 이사왔을 때 전부 공터였던 곳이다. 집을 저렇게 지어대는데도 집이 모자란다고 난리다. 세상 일은 참 불가사의하다. 산에서 내려와 경안천으로 향한다. 천 건너편의 아파트 역시 신축된 단지다. 이젠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아파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 일생은 우리 국토가 아파트로 뒤덮이는 걸 ..

사진속일상 202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