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32

사기[29]

"한나라가 장이를 죽인다면 따르겠소."이에 한왕은 장이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 죽이고 그 머리를 진여에게 보냈다. 진여는 그제야 군대를 보내 한나라를 도왔다. 그러나 한나라가 팽성 서쪽 싸움에서 지고, 장이도 죽지 않았음을 알고는 곧 한나라에 반기를 들었다.한나라 3년에 한신은 이 위나라 땅을 평정했다. 또한 한왕은 장이와 한신을 보내 조나라를 정형에서 깨뜨리고 지수 가에서 진여를 베고 조왕 헐을 뒤쫓아 양국 땅에서 죽였다. 한나라는 장이를 조나라 왕으로 세웠다. - 사기(史記) 2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장이와 진여는 진나라 말기의 초한 쟁패시대에 활약한 인물이다. 젊은 유생 시절 두 사람은 서로 목이 달아나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만큼 깊은 교분을 쌓으며 지냈다. 핍박을 받을 때는 서로 도우며 ..

삶의나침반 11:06:56

첫눈 내리는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밤에 첫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뇌가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설레는 손길로 커튼을 젖히니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점점 기온이 내려갈 테니까. 오디오북으로 소설 한 편을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커튼을 여니 반가운 손님처럼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돋보이게 드러난 눈송이가 춤추듯 흩어져 내렸다. "어떤 소리도 없이, 아무런 기쁨도 슬픔도 없이".  열린 창문 틈으로 "꼬끼요", 멀리서 새벽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두런두런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눈치우개로 바닥을 미는 소리가 났다. 작업을 하는 경비원은 보이지 않았다. 이 새벽에 일터로 나가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자동차 바퀴자국을 눈은 선명하게 드러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사진속일상 2024.11.27

삼천포 / 백석

졸레졸레 도야지 새끼들이 간다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볏짚 같이 누우란 사람들이 둘러서서어느 눈 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라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 삼천포-남행시초4 / 백석  백석은 20대 때 남해안을 여행했다. 통영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도 했다. 이때 쓴 시가 '남행시초(南行詩抄)'로 여러 편이 전한다. 이 시 '삼천포'도 당시의 따사로운 정경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구절인 '아 모도들 따사로이 가난하니'에 유난히 마음이 가 닿는다. 요사이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는 '따스한 가난'에 가슴이 뭉클..

시읽는기쁨 2024.11.26

떠나가는 가을

서점에 주문한 책을 찾으러 갔는데 일요일이 문 닫는 날인 걸 깜빡 했다. 빈 배낭을 메고 경안천에 나가서 떠나가는 가을과 함께 했다. 영은미술관 뜰에는 가을이 남긴 흔적이 가득하다.  가을이 떠나가면 고니가 찾아올 거야.   경안천에는 백로가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길 떠날 채비를 하는가 보다. 먼 길 떠나자면 길동무가 필요하겠지.  곧 겨울이 다가온다고 수근거리는 소리들.  아파트 뜰의 수양단풍나무는 마지막 치장이 화려하다.   다음주에는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하고 첫눈 예보도 나와 있다. 가을 옷을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겨울옷을 꺼내 장농에 건다. 그렇게 한 계절이 가고 새 계절이 온다.

사진속일상 2024.11.24

붓다의 치명적 농담

지인이 빌려준 책이다. 부제가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인데 2011년에 나와서 현재 15쇄까지 찍었으니 종교 서적으로는 인기 있는 스테디 셀러라 할 수 있다. 불교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색다르게 접근하여 신선한 느낌을 준다. 내용이 알차서 맛있는 걸 먹듯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한 번만 읽고 말기에는 너무 아쉬워 나도 새 책을 한 권 샀다. 옆에 두고 다시 읽어보려 한다. 지금으로서는 이 책을 논할 처지가 못 된다. 지은이는 불교를 불성, 번뇌, 반야라는 세 축으로 설명한다. 불교가 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설명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 세계는 인간에 의해 구성된 세계다. 즉, 세계는 주관이 만든 환상이다. 그런 면에서 불교는 관념론에 가깝다. 그렇다고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지..

읽고본느낌 2024.11.24

사라진 아이들

작년 여름에 콜롬비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마존 정글 지대에 경비행기가 추락했다. 배행기에는 세 명의 성인과 네 명의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하는 데 2주가 걸렸는데 파손된 비행기에는 아이들의 어머니를 비롯해 세 명의 성인 사체가 있었다. 아이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열세 살(여), 아홉 살(남), 네 살(남), 한 살(여)짜리 남매들이었다. 콜롬비아 군과 원주민을 중심으로 수색대가 조직되어 아이들의 생존 흔적을 발견하고 추적에 나섰다. 40일간의 수색 끝에 생존해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추락 지점에서 직선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아이들은 맹수, 독사, 독충이 우글거리는 열대밀림에서 40일을 견디어 냈다. 한 살짜리 막내도 살아 있었는데, 수색대는 막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

참살이의꿈 2024.11.23

여수천의 늦가을

여수천을 걸어서 야탑에 나가다. 여수천 주변은 늦가을을 장식하는 단풍으로 곱다. 노을이 그러하고, 단풍이 그러하고, 사라지는 것들은 이리 아름답다.   11월 하순인데 물들지 않은 단풍나무 잎도 보인다. 일부만 붉게 채색되었고, 나머지는 여전히 초록색이다. 이러다가는 12월에도 단풍이 남아 있겠다. 일본 기상청 자료를 보면 일본에 단풍이 찾아오는 시기가 70년 전보다 19일 정도 늦어졌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다. 앞으로는 12월 단풍도 드문 말이 아닐 것이다.  나뭇잎은 생의 끝에서 자기의 고유한 색깔로 빛난다. 생명의 활력으로 충만하던 여름에는 서로간에 구별이 되지 않았다.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세상은 아름답다. 세상 속에서 부..

사진속일상 2024.11.22

사기[28]

사자가 말했다."나는 조칙을 받아 장군에게 형을 집행할 뿐이오. 감히 장군의 말씀을 폐하에게 전할 수 없소."몽염은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내 죄는 정녕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요동까지 장성을 만여 리나 쌓았으니, 이 공사 도중에 어찌 지맥을 끊어 놓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내 죄로구나."그러고는 약을 먹고 죽었다. - 사기(史記) 28, 몽염열전(蒙恬列傳)  몽염 장군은 진시황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진시황이 죽자 조고의 간계에 빠져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인물이다. 정변이 일어나면 위협이 되는 자는 제거될 수밖에 없다. 몽염은 만리장성을 쌓고 북방에서 30만 대군을 지휘하며 흉노를 지키..

삶의나침반 2024.11.21

광명동굴과 도덕산, 당구 직관

광명동굴과 도덕산 출렁다리를 찾아본 뒤 광명시민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PBA 팀리그 경기를 직관하다. 잔뜩 흐리다가 오후부터는 가을비가 내리는 날씨였다. 광명동굴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폐광 동굴로 2011년에 내부를 단장하여 일반에 개방하였다. 수도권에서는 드문 광산 동굴이라 지금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광산의 아픈 역사와 함께 아이들이 좋아할 여러 볼거리를 갖추어 놓았다.   여기서는 1912년에서 1972년까지 광물을 채광했다. 채광 물질은 금, 은, 동, 아연 등이었다. 갱도 길이는 7.8km였고, 총 9개 층으로 되어 있었다.    광명의 도덕산(道德山)이 유명한 건 2022년에 만들어진 이 Y자형 출렁다리 때문이다. 소문난 곳이니 한 번 와 보기는 해야겠지.  도덕산..

사진속일상 2024.11.20

허송세월

동네 서점에서 산 일곱 권의 책 중 하나다. 한 달 만에 10쇄를 찍었으니 김훈 작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겠다. 나 역시 작가의 문체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공감한다. 작가에게는 세계에 대한 깊은 응시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연민과 애틋함이 있다. 이 책에서는 불교적 세계관도 자주 느껴졌다. 특히 '흐름'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큰 흐름과 연계하게 된다. 비교하기에 뭣하지만 김형석 선생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소설가가 훨씬 더 철학적이다. 책 제목으로 쓰는 '허송세월'이란 글은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 해는 내 노년의 상대다"로 시작한다. 음미하고 사색하는 철학자의 글이다. 이런 말도 참 좋다."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

읽고본느낌 2024.11.19

구정리 느티나무

경남 합천군 야로면 구정리의 너른 들판에 있는 느티나무다. 대개 오래 된 느티나무는 마을 입구에 정자와 함께 있는데 이 느티나무는 드넓은 들판 한가운데에 홀로 우뚝하다. 그래서 별명이 '나홀로 나무'로 불린다.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과 연결되는 길이 정십자 모양으로 나 있다. 이 나무가 주민들이 왕래하는 중심지인 셈이다. 잠깐 있는 동안에도 여러 대의 자동차가 먼지를 날리며 지나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는 느티나무로 통한다고 해야 할 듯하다. 소통의 중심이며 상징이라 불러도 좋을 나무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나무는 균형잡힌 아름다운 몸매를 하고 있다. 이 느티나무의 수령은 500년이고, 높이는 25m, 줄기 둘레는 2.4m다.

천년의나무 2024.11.18

삶 / 박경리

대개소쩍새는 밤에 울고뻐꾸기는 낮에 우는 것 같다풀 뽑는 언덕에노오란 고들빼기꽃파고드는 벌 한 마리애닯게 우는 소쩍새야한가롭게 우는 뻐꾸기모두 한 목숨인 것을미친 듯 꿀 찾는 벌아간지럽다는 고들빼기꽃모두 한 목숨인 것을달 지고 해 뜨고비 오고 바람 불고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슬픔도 기쁨도왜 이리 찬란한가 - 삶 / 박경리  통영 미륵산 자락에 있는 박경리기념관 뜰에 이 시가 적힌 시비가 있었다. 작가가 생의 마지막에 쓴 시들에서는 소설에서 읽지 못하는 작가의 진솔한 마음을 만난다. 작가에게 다가가는 데는 소설보다 시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 인생이 농축되어 있는 작가의 시에는 고운 영혼의 향기가 풍긴다. 그 향기는 내 마음으로도 스며들어 따스하게 위무해 준다. 작가의 시는 쉽다. ..

시읽는기쁨 2024.11.18

성지(37) - 윤봉문 요셉 묘

성지 52. 순교복자 윤봉문 요셉 묘(경남 거제시 일운면) 순교복자인 윤봉문 요셉(尹鳳文, 1852~1888)은 1866년 병인박해로 재산을 몰수 당한 뒤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해 양산에서 거제도로 이주하였다. 거제도에서 전교하며 로베르 신부의 성사 집전을 돕는 등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고 진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그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888년에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2013년에 유해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성지로 조성하였다.  이곳은 거제도에서 유일한 천주교 성지다. 그래선지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순교자 현양탑 안에 복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현양탑은 순교자들이 옥중에서 쓰던 칼 모양을 형상화 했다.  경당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미사가 집전된다.  성지에는 편백나무와..

사진속일상 2024.11.17

차꽃

남쪽 지방에 와야 차꽃을 만난다. 북쪽에 사는 나에게는 귀한 꽃이어서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살펴본다. 꽃술이 엄청 많고 풍성하다. 끝에 달린 노란 꽃밥도 마찬가지다. 꽃이 동백과 닮았는데 차나무가 동백나무속이니 둘은 아주 가까운 관계다. 주위에는 달콤한 향기가 은은하고 연신 꿀벌이 찾아든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꽃이지만 누구에게는 특별한 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차꽃처럼.

꽃들의향기 2024.11.17

팔손이

거제도 바닷가에서 본 팔손이나무 꽃이다. 화분에서 키우는 팔손이는 봤으나 노지에서 자라는 팔손이는 처음이다. 좁은 땅이지만 남쪽에 내려오니 식물 생태가 다르다. 팔손이는 말 그대로 잎이 여덟 갈래로 갈라져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아홉 개로 갈라져 보인다. 지금은 꽃봉오리가 맺혀 있고 좀 있으면 활짝 필 것이다. 형태가 산수유와 비슷하며 흰색이다.

꽃들의향기 2024.11.17

거제도, 통영 여행(2)

이틀에 걸쳐 수박 겉핥기로 거제도와 통영 지역을 둘러보았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이 비례하지는 않겠으나 그래도 너무 짧은 일정이었다. 아쉬운 대로 거제도와 통영 여행을 마치고, 셋째 날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합천 해인사와 영동 월류봉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로서는 둘 모두 첫 발걸음을 하는 곳이다. 새벽부터 하역 작업을 준비하느라 숙소 앞 통영항은 시끄러웠다. 조금 지나니 냉동 참치가 배에서 끝없이 내려졌다. 참치가 금속 상자에 담길 때 쇳덩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덕분에 일찍 잠을 깨었고 해 뜨는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해인사로 들어가는 길에서 올 가을 제일 화려한 단풍을 만났다.   대적광전(大寂光殿) 앞 마당에는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절을 단체로 찾아온 외국인들의 몸가짐이 경..

사진속일상 2024.11.16

세병관 느티나무

통영 세병관(洗兵館)에 있는 느티나무다. 원래는 가지가 셋이여서 균형이 맞았던 듯한데 하나가 부러져서 Y자 모양을 하고 있다. 군사 시설 안이여서인지 큰 새총을 보는 것 같다. 세병관은 옛날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통제영이 들어설 때 심은 것으로 추정한다면 이 느티나무의 수령은 400여 년이 된다. 특이한 점은 세병관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느티나무를 썼다고 한다. 오래 된 느티나무는 소나무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굵다. 통제영 본부의 위용을 나타내기에 느티나무가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천년의나무 2024.11.16

명진리 느티나무

거제도 명진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마을 앞 너른 들판 가운데에 있다. 전체적으로 수형이 반듯하게 균형 잡혀 있다. 줄기에서 갈라진 가지들이 왕관 같다. 나무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울타리가 세워져 있고, 둘레에 평상 네 개가 주민들 쉼자리로 마련되어 있다. 농사일을 하다가 이 나무 아래서 참을 먹고 낮잠을 자기도 할 것이다. 이 느티나무의 수령은 600년 가량 되었고, 나무 높이는 16m, 줄기 둘레는 7.7m다. 마을로 다가서는 멀리서부터 이쁜 느티나무임을 알아볼 수 있는 명목이다.

천년의나무 2024.11.16

거제도, 통영 여행(1)

아내와 2박3일 일정으로 거제도와 통영을 다녀왔다. 옛 기록을 찾아보니 이 지역 여행을 다녀온 게 2005년이었으니 어느새 19년이 되었다. 그때 일은 단편적으로 두세 장면이 떠오를 뿐이어서 마치 처음 가 보는 곳처럼 새로웠다. 옛 추억을 되새김하기에는 너무나 긴 세월이 되었다. 처음 찾은 곳은 거제 파노라마 케이블카였다. 학동고개에서 노자산 정상까지 1.5km 길이로,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 전경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시설이 깔끔한 걸 보니 개통한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다음은 학동흑진주몽돌해변을 찾았다. 몽돌 위에 앉으니 자갈 위를 들고나는 파도소리가 귀를 채웠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명상에 잠겼다.  도장포선착장 옆에 있는 바람의 언덕은 유일하게 옛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다. 왜 명소로 이..

사진속일상 2024.11.15

임난수 은행나무

세종시 세종동에 있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다. 고려말에 탐라 정벌에 공을 세운 임난수(林蘭秀, 1342~1407) 장군이 멸망한 고려를 안타까워하며 심었다고 전해진다. 나무와 이웃하여 장군을 기리는 숭모각이 있다. 장군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내려와 은거하였는데 이성계가 벼슬을 주려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고 한다. 이때 심은 암수 한 쌍의 은행나무가 바로 이 나무로 충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600년이 흘러도 꿋꿋한 그 기상이 늠름하다.

천년의나무 2024.11.14

장모님 모시고 진안 나들이

전주에 내려간 길에 장모님에게 바깥바람을 쐬 드리기 위해 진안으로 함께 가을 나들이를 나갔다. 걸음이 불편하시니 주로 차 안에서 가을 풍광을 즐기실 수밖에 없었다. 산야는 가을로 무르익고 있었다. 먼저 찾은 곳은 부귀면 세동리에 있는 메타세콰이어길이었다. 옛 도로를 따라 모래재를 넘으면 500m 정도 메타세콰이어가 길게 늘어선 이 길을 만난다. 1980년대에 심었다니 수령이 40년이 되는 메타세콰이어들이다. 노랗게 물들어서 더욱 예쁜 길이었다.   다음에는 사양저수지에 들렀는데 마이산 두 봉우리를 배경으로 하는 경치가 좋았다.  천황사에서는 곱고 선명한 단풍을 만났다.  14년 만에 다시 만난 천황사 전나무다.  용담호 주천생태공원에서 가을 분위기에 빠졌다. 장모님은 조심스레 걸으셨다.  돌아오는 길에는..

사진속일상 2024.11.14

사기[27]

이세황제(二世皇帝) 2년 7월, 이사에게 오형(五刑)을 갖추어 그 죄를 논하고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를 자르도록 하였다. 이사는 옥에서 나와 함께 잡혀 있던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내 너와 함께 다시 한번 누런 개를 끌고 상재 동쪽 문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구나."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은 소리 내어 울고 삼족이 모두 죽음을 당했다. 망이궁에 있은 지 사흘 만에 조고가 위사(衛士)들에게 거짓 조서를 내려 흰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궁궐로 향하게 하고, 자신은 한 발 앞서 궁궐로 들어가 이세황제에게 이렇게 말했다."산동의 도적떼가 크게 쳐들어왔습니다."이세황제가 망루에 올라 이것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니, 조고는 이 틈을 타 이세황제를 위협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도..

삶의나침반 2024.11.07

나무처럼 / 오세영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우리도 그렇게살 일이다.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우리도 그렇게클 일이다.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듯우리도 그렇게살 일이다.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듯 - 나무처럼 / 오세영  기온이 뚝 떨어졌다. 눈을 뜨니 냉랭한 기운이 얼굴에 닿아 이불을 끌어올렸다. 가을을 제대로 즐기기 전에 겨울이 불시에 쳐들어 온 것 같다. 따끈한 믹스커피 한 잔을 감싸 쥐고 너와 내가 나눌 수 있는 온기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의 삶이란 게 너무 소란하고 번잡하다. 벌판..

시읽는기쁨 2024.11.06

청춘의 문장들,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이다. 김연수 작가의 은 2004년에 나온 후 49쇄까지 찍은 베스트셀러다. 2년 전에 내용을 보강한 개정판이 나왔다.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라는 책 서두에 나오는 말처럼 청춘의 고뇌를 감명받은 명문장들과 연결하여 그려냈다. 작가가 30대에 들어서서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쓴 '삼십자술(三十自述)'이라 할 수 있다. 글에는 김 작가 특유의 감성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문학을 지망하던 20대의 작가가 무엇을 고민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탐구하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그 나잇대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작가만큼 치열하지는 않았지만 방황하던 내 20대 역시 포근히 감싸안아주고 싶도록 따스하게 추억했다. 초판 서문에 나오는 ..

읽고본느낌 2024.11.05

동네 추경(秋景)

아직 완숙은 아니지만 우리 동네에도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인간의 마을에도 숲에도 가을 향기가 가득하다. 화려하기로 치면 이맘때의 가을과 필적할 계절은 없다. 가을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한낮의 추광(秋光)이 따스했다. 고운 단풍 따라 내 마음도 곱게 물드는 것 같았다.  뒷산 숲에는 가을이 먼저 와 있었다. 오솔길에는 떨어진 낙엽이 수북했다. 촌촌가인인생(村村家人人生)이던가, 우리의 삶도 나뭇잎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새 움이 돋아 여름, 가을을 지나 흙으로 돌아간다. 대자연 순환의 흐름 속 시절인연이 나를 이 순간 이 자리에 있게 한다.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다.

사진속일상 2024.11.04

가수리 느티나무

정선초등학교 가수분교 운동장에 있는 느티나무다. 동강과 이웃하고 있어 풍광이 뛰어나다. 어느 단체에서 이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을 동강 12경 하나로 정했다. 옛날 강을 건너는 다리가 없던 때에는 오가는 주민들이 이 나무 아래서 다리쉼을 했다고 한다. 자연 풍광만 아니라 가수리(佳水里)라는 마을 이름도 아름답다. 가수분교는 아이들이 없어 폐교가 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로 북적일 시간이었을 테지만 교사와 운동장은 적막했다. 느티나무를 보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만 들린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500여 년에 높이가 40m, 줄기 둘레는 7m에 이른다. 가을이 되어 황금빛으로 단장한 느티나무가 더욱 멋져 보였다.

천년의나무 2024.11.03

방절리 느티나무

영월읍 방절리 수변공원에 있는 느티나무다. 공원 내에서 우뚝 솟은 언덕 위에 있는데 저류지 공사를 하면서 주변을 파내어 이런 언덕이 생겼다고 한다. 느티나무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이 공원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고 할 수 있다. 나무 둘레에 붉은색의 식물을 심어 나무에 더욱 시선이 가게 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꽃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작은 나무였다. 검색한 결과 매자나무인 듯하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500년 정도 되고 높이는 18m, 줄기 둘레는 6.3m다. 차를 몰고 가다가 눈에 띄어서 잠시 정차하고 찾아가 봤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렇듯 우연히 큰 나무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천년의나무 2024.11.03

동강 코스모스

동강시스타 앞 강변에 코스모스가 활짝 폈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 주변을 산책하다가 만난 코스모스 꽃밭이다. 전날 정선의 단풍이 아쉬웠는데 뜻하지 않게 이곳 코스모스에서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여기처럼 키 작은 코스모스를 '왜성코스모스'라 부르는가 보다. 키가 작으니 훨씬 더 귀여워 보인다. 어릴 적 추억 속 코스모스는 몸이 파묻힐 정도로 컸다. 이 코스모스는 높이가 40c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코스모스 산책로를 걸으며 소년 시절 신작로를 따라 피어 있던 코스모스를 떠올렸다. 코스모스 꽃잎을 따서 이런저런 장난을 치다 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짧았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얄미운 꽃, 코스모스다.

꽃들의향기 2024.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