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23

단촌리 느티나무(2024/10)

단촌리 느티나무도 가을물이 들기 시작했다. 나무 끝 부분부터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바닥에는 떨어진 낙엽이 고운 주단처럼 깔려 있다.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나무는 다른 모습을 띤다. 어떤 때는 근엄하고 어떤 때는 다정하다. 노거수에 다가갈 때마다 이번에는 나무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귀를 기울인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 한다. 나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해도 할 말은 없다. 단지 내 마음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나무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의미는 있지 않겠는가. 어떤 말씀을 하시든 끝은 늘 "고맙습니다"이다. 그리고 이렇게 당신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천년의나무 2024.10.29

순흥면 버드나무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의 옛 순흥부 관아 터에 있는 버드나무다. 수령 200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노쇠하여 거구를 지탱하기가 힘겨워 보인다. 이곳에는 연못을 조성하고 둘레에 버드나무를 심었던 것 같다. 남아 있는 나무 중에서는 이 버드나무가 가장 크고 오래 되었다. 오랜 세월의 무게가 나무 전체에 드러나 보인다. 이 나무도 생명붙이의 숙명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천년의나무 2024.10.29

가을걷이를 돕다

고향에 내려가서 4박5일을 보내며 어머니의 가을걷이를 도왔다. 내내 밭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힘이나마 올 농사의 마무리에 보탠 셈이었다.  마구령터널이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려가는 길에 영월로 우회해서 마구령터널을 지나갔다. 아직 부분 개통인지 한 개 차로만 통행을 허용하고 있었다. 영주와 단양을 잇는 새 길이 뚫린 것이다.  겸하여 백두대간수목원에도 들렀다. 트램을 타고 꼭대기까지 이동하여 걸어서 내려왔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대충 훑어만 봤다. 넓이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라고 한다.   이번 가을걷이의 제일 큰 일은 들깨를 터는 일이었다. 지난 주말에 동생들이 내려와서 반 이상을 끝낸 터라 하루만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총량이 50되가량 나왔을 성싶다.  고춧대를 뽑고 밭을 정..

사진속일상 2024.10.29

주막 / 이기철

주막은 주막이 아니라 酒幕이라 써야 제격이다그래야 장돌뱅이 선무당 미투리장수가 다 모인다그래야 등짐장수 소금쟁이 도붓장수가 그냥은 못 지나가고방갓 패랭이 짚신감발로 노둣돌에 앉아 탁주 사발을 비우고 간다그래야 요술쟁이 곡마단 전기수들이 주모와 수작 한번 걸고 간다酒幕은 으슬으슬 해가 기울어야 제격이다번지수가 없어 읍에서 오던 하가키가대추나무 돌담에 소지처럼 끼어 있어야 제격이다잘 익은 옥수수가 수염을 바람에 휘날려야 제격이다돌무지 너머 참나무골에 여우가 캥캥 짖고누구 비손하고 남은 시루떡 조각이당산나무 아래 널부러져 있어야 제격이다시인 천상병이 해가 지는데도 집으로 안 가고나뭇덩걸에 걸터앉아 손바닥에 시를 쓰고그 발치쯤엔 키다리 시인 송상욱이 사흘 굶은 낯으로통기타를 쳐야 제격이다주막은 때로 주먹패 산도..

시읽는기쁨 2024.10.23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이런 책인 줄 몰랐다. 우선 초등학생이 나오는 소설로 어린이 도서에 속한다. 제목만 보고 죽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용의 대부분은 병원에 입원한 선생님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좌충우돌 소동이다. 소설 끝에 가서야 왜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가슴 뭉클해지는 멋진 마무리가 있다. 빅스비 선생님은 30대 중반의 여자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대하는 태도가 특별한 선생님이다. 지식을 전수하는 교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도와주는 진정한 의미의 선생님이다. 책에는 선생님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누면서 그중 '좋은 선생님'을 이렇게 묘사한다."이분들은 학교라는 고문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유형이다. 우리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단번에 알 ..

읽고본느낌 2024.10.22

감사하며 오른 백마산

아내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요 몇 년간 산행이라면 엄두를 못 냈는데 꾸준한 치료와 트레이닝으로 다시 도전하게까지 되었다. 몸 상태를 체크할 겸 같이 백마산 등산에 나섰다. 무리가 되면 되돌아오려 했으나 예상외로 가뿐했다. 도리어 내가 뒤따라가기 바빴다. 아내는 하루도 빼지 않고 뒷산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하루 운동량이 내 열 배는 될 것이다. 이러다가는 체력이 역전될지 모르겠다. 몸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나타난다는 걸 아내가 증명해 보이고 있다.  백마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백마산은 500m가 채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그럴지라도 부부가 같이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중년 부부는 가끔 만나지만 우리처럼 7학년 부부는 드물다.   내려오는 길에는 종교 문제로..

사진속일상 2024.10.21

목현천 걷기

가을비가 흠뻑 내린 다음날 목현천 길을 걸었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내일부터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한다. 찾아온 지 얼마 안 된 가을도 더욱 짙어질 것이다. 목현천은 시골의 개울 느낌이 나서 좋다. 고마리가 피어 있는 천변은 고향의 개울을 보는 것 같다. 여름을 지나면서 모래톱이 많이 자랐다. 수질도 이만하면 합격점이다. 그러나 경안천과 합류한 뒤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인간이 버린 오물과 몸을 섞으면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한가로이 놀고 있다.   고마리는 고향을 연상시키는 꽃이다. 고향 마을 앞 냇가에는 가을이 되면 고마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집의 수챗구멍 주변에도 고마리가 가득했다. 고마리가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고마..

사진속일상 2024.10.20

사기[26-2]

형가가 한단에서 돌아다닐 때 노구천이란 자가 형가와 박 놀이를 했는데, 길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노구천이 성을 내고 꾸짖자 형가는 아무 말 없이 달아나 결국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형가는 연나라로 가서, 연나라의 개 잡는 백정과 축을 잘 타는 고점리라는 이와 친하게 지냈다. 형가는 술을 좋아해 날마다 개 백정과 고점리와 함께 연나라 시장 바닥에서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고점리가 축을 타고 형가는 그 소리에 맞추어 시장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 즐겼다. 그러다가 서로 울기도 하였는데 마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자유분방했다. 형가는 비록 술꾼들 사이에서 놀았지만 그 사람됨이 신중하고 침착하며 책을 좋아했다. 그는 제후국을 떠돌면서 한결같이 그곳의 현인, 호걸, 장자들과 사귀었다. 그가..

삶의나침반 2024.10.19

귀트임과 귀닫음

인터넷으로 층간소음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귀트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알게 되었다. 얼핏 들으면 '귀가 트였다'라고 해서 깨달음을 얻은 듯한 좋은 뜻으로 생각되지만,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귀트임은 층간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생기는 질병이다. 청각과민증의 하나로 특정한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이다. '선택적 소음 과민증후군'이라 할 수 있는데, 영어로는 '미소포니아(misophonia)'라고 부른다. 설명을 읽어 보니 현재 내 상태와 너무나 비슷하다. 우선 귀트임은 소리의 물리적 특성과는 무관하다. 작고 부드러운 소리도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귀트임은 소리가 나는 상황이나 의미, 소리를 내는 주체, 환경 등과 관계가 있다. 내 집에서 들리는 소리에 ..

길위의단상 2024.10.18

유유히 뒷산

뒷산에 가을물이 들기 시작했다. 계절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지만 산에 들면 느리고 유유하게 찾아온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을 오시는 산길을 자연의 리듬 따라 나도 유유하게 걸었다. 그러고 보니 '유유하다'는 말이 참 좋다.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노년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유유하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사에 어느 정도 초연해야 할 것이다. 우주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니 변화에 거역하지 않는다. 순리로 받아들이면 시달릴 일이 줄어든다. 괴로움은 외부가 아닌 내 마음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종착점은 장자의 목계(木鷄)가 아닐까. 불교의 무아(無我)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없으면서 '내'가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삑 삑 삑삑~" 산길에서는 청딱따구리의 노래가 연신 들려..

사진속일상 2024.10.17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독서란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일상에서는 절대 접촉하지 못할 사람을 책에서는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사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내 질문에 저자는 책의 어디선가에서 꼭 답을 해 준다. 물론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를 쓴 전범선 씨는 특이한 이력과 함께 별난 삶을 산다. 학력은 상위 0.1%라고 할 정도로 화려하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을 거쳐 컬럼비아 로스쿨까지 합격했다. 엘리트 계급에 진입하고도 남을 스펙이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밴드를 만들어 기타를 잡고 노래를 한다. 그뿐이 아니다. 폐점 위기에 몰린 인문학 서점을 인수해서 살리고, 해방촌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동물 보호와 기후 위기를 막는 운동에 앞장선다. '휘뚜루마뚜루 자유롭게 산다는 것..

읽고본느낌 2024.10.16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어느늦은 저녁 나는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 문학상을 발표하며 한강 작가의 소설을 '시적(詩的) 산문'이라고 표현했다. 한강 작가가 시로 문단에 데뷔했으니 소설에 운문의 리듬을 지니고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작가는 대학생 때 정현종 시인으로부터 '시 창작론'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30년 전이지만 정 시인은 그때 한강 학생이 준 강렬한 인상을 기억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래선지 한강의 이 시는 정 시인의 시풍과 닮지 않았나 싶다. '흰' 공기, '흰' 밥, '흰' 김이 주는 이미지는 우리 존재의 본질과..

시읽는기쁨 2024.10.15

사기[26-1]

"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꾸민다고 했다. 지금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내 기필코 원수를 갚은 뒤에 죽겠다. 이렇게 하여 지백에게 은혜를 갚는다면 내 영혼이 부끄럽지 않으리라."그러고는 마침내 성과 이름을 바꾸고 죄수가 되어 조양자의 궁궐로 들어가 변소의 벽을 바르는 일을 했다. 몸에 비수를 품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 양자를 찔러 죽이려는 생각이었다.양자가 변소에 가는데 어쩐지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그래서 변소 벽을 바르는 죄수를 잡아다 조사해 보니 그가 바로 예양이었다. 그의 품속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예양은 이렇게 말했다."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했소."그러자 주위에 있던 자들이 그의 목을 베려고 하였다. 그때 양자가 ..

삶의나침반 2024.10.13

축!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그저께 저녁(2024/10/10) 컴퓨터 화면에 속보가 떴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 작가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보도였다. 이게 무슨 일?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가 금방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아,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구나! 이번 수상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한때는 노벨 문학상 발표일이 되면 유력한 수상자로 기대되던 시인의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나도 시간에 맞추어 소식을 기다렸다. 여러 해 동안 공염불이 되자 열기가 시들해졌고 이젠 아예 관심이 사라졌다. 그러던 차에 마른하늘의 벼락처럼 낭보가 터진 것이다. 한림원에서는 수상 이유로 한강 작가의 글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력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폭력성과..

길위의단상 2024.10.12

구리 토평 코스모스(2024)

구리 코스모스 축제가 구리한강시민공원에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축제 시작 전날 코스모스 꽃밭을 미리 찾아보았다. 축제 기간은 도떼기시장이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코스모스만큼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꽃이 있으랴. 코스모스 꽃길을 걸으면 아늑한 유소년 시절의 품으로 돌아가 안기게 된다. 연말에 1단계가 개통하는 세종포천고속도로에서 한강을 가로지르는 고덕토평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덕토평대교는 한강의 33번째 다리다. 이 다리 공사로 전에 비해 코스모스 꽃밭이 많이 줄어들었다. 올 겨울에는 이 다리를 이용하면 두루미를 보러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할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24.10.11

동구릉 산책

용두회 10월 트레킹은 동구릉이었다. 트레킹이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이젠 걷기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산책 수준이다. 오늘도 왕릉을 연결하는 평탄한 길을 1시간 30분 정도 산책하듯 걸었다.  경기도 구리에 있는 동구릉(東九陵)은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조선 최대의 왕릉군이다. 오늘의 왕릉 역사 답사 순서는 이랬다. ▽ 수릉(綬陵)추존 문조(文祖, 1809~1830)와 신정황후의 능이다. 문조는 순조와 순원황후의 아들로 왕세자가 되었으나 2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시호를 효명세자라 하였다. 뒤에 문조로 추존되었다.   ▽ 현릉(顯陵)문종(文宗, 1414~1452)과 현덕왕후의 능이다. 조선 5대 왕인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이다.   ▽ 건원릉(健元陵)조선을 건..

사진속일상 2024.10.11

뒷산에 오르다

여름 동안 뒷산에 들지 못했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산모기의 성화를 견디지 못해서였다. 여름 산의 모기는 2차세계대전 때 미국 군함을 향해 돌진하던 일본의 제로센 전투기들 같다. 전에는 손수건을 휘저으며 기어코 오르기도 했으나 요사이는 귀찮아서 아예 산가까이 가지를 않았다. 그러니 뒷산 들기가 거의 다섯 달만이었다. 가을이 되니 성가시게 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산길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눈에 띄지 않는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만 숲에 가득했다. 오랜만에 와서인지 숲은 한층 깊어진 느낌이었다. 경건한 예배당에 든 듯해서 살금살금 걸은 숲길이었다.  법정 스님은 어느 글에서, 여름이 지나간 가을철 산은 '머스마'인 스님들을 설레게 한다고 썼다. 일과가 끝나는 가을날 오후가 되면 선원이고 강원이고 절 안이 텅텅 빈다는..

사진속일상 2024.10.10

팔순 / 이정록

기사 양반, 잘 지내셨남?무릎 수술한 사이에버스가 많이 컸네.북망산보다 높구먼. 한참 만이유.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대유?여드름이 거뭇거뭇 잘 익은 걸 보니께서른은 넘었쥬? 운전대 놓고 점집 차려야겠네.민증은 집에 두고 왔는디골다공증이라도 보여줄까? 안 봐도 다 알유.눈감아드릴 테니께오늘은 그냥 경로석에 앉어유.성장판 수술했다면서유. 등 뒤에 바짝젊은 여자 앉히려는 수작이꾼 중에서도 웃질이구먼.오빠 후딱 달려. 인생 뭐 있슈?다 짝 찾는 일이쥬.달리다보면 금방 종점이유. 근디 내 나이 서른에그짝이 지난치게 연상 아녀?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거시기 골다공증인가 보게. - 팔순 / 이정록  할머니와 버스 기사 사이의 농담따먹기가 흥겹다.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 속에서 검버섯은 여드름이 되고 무릎 수술은 ..

시읽는기쁨 2024.10.09

다윈 영의 악의 기원

3권으로 된 박지리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무대는 1지구부터 9지구까지 철저하게 신분으로 갈라진 세계다. 각 지구간에는 제한된 왕래만 가능하고 서로를 침범할 수 없다. 1지구는 온갖 혜택을 누리는 파라다이스지만, 9지구 주민은 겨우 생존해 나가는 폐허가 된 세계다. 신분이 세습되는 가상의 세계지만 이미 계급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구조라고 누구나 느낄 것이다. 1지구에는 최고의 엘리트만 갈 수 있는 프라임 스쿨이 있다. 주인공인 다윈 영은 프라임 스쿨에 다니는 학생이고, 아버지 니스는 문교부 차관으로 권력의 중심부에 있다. 소설에는 니스, 버즈, 제이의 세 친구가 나오고 후대로 이어진 친분은 십대인 다윈, 레오, 루미의 얽힌 관계를 틀로 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30년 전에 살해된 제이..

읽고본느낌 2024.10.08

불갑사 느티나무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다. 마침 꽃무릇 계절이라 느티나무 둘레에 붉은 화단이 펼쳐졌다. 이 나무의 높이는 25m, 줄기 둘레는 4.5m이고 수령은 6백 년 정도다. 불갑사 느티나무는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완연히 다르다. 사찰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치고는 살아온 역정이 많이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 주변에서는 참식나무 안내문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절 뒤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식나무 군락지가 있다고 한다. 다음에 갈 기회가 있다면 살펴봐야겠다.

천년의나무 2024.10.07

불갑사 꽃무릇(2024)

올해는 불갑사 꽃무릇의 개화가 늦었다. 예년 같으면 9월 중순에 꽃무릇 축제를 여는데 더위가 늦게까지 지속된 탓에 때가 맞지 않았다. 열흘 넘게 미뤄진 하순에서 10월 초순이 한창이 되었다. 마침 이 시기에 전주에 있던 차라 2024년의 불갑사 꽃무릇을 구경할 수 있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속에서 빨강의 물결을 헤치듯 거닐었다. 선운사 꽃무릇과 쌍벽을 이룰 만한 광경이었다.

꽃들의향기 2024.10.07

전주 4박5일

장인 기일을 맞아 전주에 다녀왔다. 겸하여 군산과 영광에도 들렀다. 추모하러 내려갔지만 가을 여행이 된 셈이었다. 둘째 날은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 처제와 함께 군산을 둘러보았다. 군산에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건물이 다수 남아 있다. 1899년에 개항한 군산항은 일제 강점기 때 호남권의 양곡을 일본으로 실어나른 주요 항구였다. 관련한 시설이 많았고 일부는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 역시 옛 건물과 유적지를 중심으로 찾아다녔다. 순서는 이랬다. 근대역사박물관 - 군산세관 - 인문학창고 '정담' - 초원사진관 - 신흥동 일본식 가옥 - 여미랑 - 점심(영화원에서 물짜장과 짬뽕밥) - 카페 '8월의 크리스마스' - 진포해양공원 - 해망굴 - 월명공원.   셋째 날은 불갑사로 꽃무릇을 보러 갔다. 올해는 늦..

사진속일상 2024.10.06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나갈 한국 대표를 뽑는 본선이 어제 있었는데 81세의 최순화 씨가 베스트 드레스상을 받았다. 올 가을에 열리는 세계 대회에 나갈 대표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미스 유니버스에 도전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1943년생인 최순화 씨는 간병인으로 일하다가 어느 환자의 권유로 모델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 74세 때였다.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하는 나이 제한이 없어지면서 최 씨의 목표는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 32명이 겨루는 본선까지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한국 대표가 되지는 못했다. 만약 세계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면 지구촌의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특별한 ..

참살이의꿈 202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