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양반, 잘 지내셨남?
무릎 수술한 사이에
버스가 많이 컸네.
북망산보다 높구먼.
한참 만이유.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대유?
여드름이 거뭇거뭇 잘 익은 걸 보니께
서른은 넘었쥬?
운전대 놓고 점집 차려야겠네.
민증은 집에 두고 왔는디
골다공증이라도 보여줄까?
안 봐도 다 알유.
눈감아드릴 테니께
오늘은 그냥 경로석에 앉어유.
성장판 수술했다면서유.
등 뒤에 바짝
젊은 여자 앉히려는 수작이
꾼 중에서도 웃질이구먼.
오빠 후딱 달려.
인생 뭐 있슈?
다 짝 찾는 일이쥬.
달리다보면 금방 종점이유.
근디 내 나이 서른에
그짝이 지난치게 연상 아녀?
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
거시기 골다공증인가 보게.
- 팔순 / 이정록
할머니와 버스 기사 사이의 농담따먹기가 흥겹다.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 속에서 검버섯은 여드름이 되고 무릎 수술은 성장판 수술이 된다. 그러면서 "달리다보면 금방 종점이유" 같은 말에는 인생에 대한 애잔한 슬픔이 담겨 있다.
여든을 향해 가고 있는 나이가 된 나로서도 두 사람의 대화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왕 늙는 거라면 이 할머니를 닮고 싶다. 죽는소리 하며 툴툴대기보다 병도 유머로 녹여내며 유쾌하게 살고 싶다. 화내고 불평한들 어쩌겠는가. 노인의 해학은 체념에서 얻어지는 긍정의 에너지가 아닐까. 왁자지껄한 시골 버스 안 풍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재미있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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