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두 번은 없다 / 쉼보르스카

샌. 2024. 9. 29. 10:34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 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더라?

꽃인가, 아님 돌인가?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유일무이한 오늘 하루를 생각한다. 매 순간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삶이란 같지만 같지 않고, 덧없지만 덧없지 않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바둑을 두던 친구가 있었다. 혼자 살고 있던 친구 방에 찾아가면 책상 위에 이런 글귀가 오래 붙어 있었다. "당신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입니다." 제주도로 낙향한 그 친구는 지금 어찌 살고 있을까.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생명붙이들의 가련함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게 아닐까. 연잎에 맺혀 반짝이는 물방울처럼, 물방울은 한낮의 햇빛에 금방 말라 사라질 것이지만, 사라지는 게 사라지는 게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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