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층간소음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귀트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알게 되었다. 얼핏 들으면 '귀가 트였다'라고 해서 깨달음을 얻은 듯한 좋은 뜻으로 생각되지만,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귀트임은 층간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생기는 질병이다. 청각과민증의 하나로 특정한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이다. '선택적 소음 과민증후군'이라 할 수 있는데, 영어로는 '미소포니아(misophonia)'라고 부른다.
설명을 읽어 보니 현재 내 상태와 너무나 비슷하다. 우선 귀트임은 소리의 물리적 특성과는 무관하다. 작고 부드러운 소리도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귀트임은 소리가 나는 상황이나 의미, 소리를 내는 주체, 환경 등과 관계가 있다. 내 집에서 들리는 소리에 유독 민감한 것은 내 사생활을 방해받는다는 적대적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음을 친구 집에서 들으면 무심하듯 넘어간다. 내 집 위층의 문 여닫는 소리, 발걸음 소리에 꽂히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짜증이 생기며 분노가 인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도 빠진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이렇듯 특정 소리에 반응하며 부정적으로 길들여진 것이 귀트임이다.
아내는 시계 초침 소리를 견디지 못한다. 당연히 집에는 소리가 나지 않는 시계만 있다. 다른 집에 가서 잘 때 째깍거리는 시계가 있으면 떼서 밖에 내놓아야 한다. 반면에 나는 아무렇지 않다. 도리어 초침 소리가 자장가로 들려 더 쉽게 잠든다. 이렇듯 미소포니아는 사람마다 다르다. 층간소음만 해도 아내는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는 의식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무척 예민하게 반응한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가족 중에서 혼자서만 유별나게 소음을 호소하면 소음 자체이기보다는 당사자 마음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읽은 글에서는 층간소음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주요 원인이 내면의 억압된 분노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외부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자신 안에 내재한 갈등 요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로 착하고 모범적이고 순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지나친 양심과 도덕률로 자신을 끊임없이 검열한 결과로 내면에는 분노나 화가 쌓인다. 이런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동시에 타인 역시 나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있다. 이런 내적 배경이 이웃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낳고 층간소음 문제를 악화시킨다.
귀트임이 귀닫음으로 나아가자면 일정 부분 내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환경과 남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나도 바꾸기 힘든데 남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다고 이사를 간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어디에 가든 같은 문제에 직면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병원 치료든 마음 수련이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자책하며 자신 탓을 해서는 안 된다. 현재 치유 과정에 있는 어느 분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절대 본인을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본인 탓이 아닙니다. 도덕, 윤리, 규범, 매너 등을 중시하는 착한 마음을 가졌을 뿐입니다. 다만, 내가 그것 때문에 고통스럽고 아프다면 조금 덜어낼 필요는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볍게 살아봅시다!"
어쨌든 층간소음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대상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사실이 억울할 수밖에 없다. 가해자는 자신이 이웃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피해자는 대부분 속으로만 삭인다. 아이러니한 게 마음이 여리고 선하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진지하면 과부하가 걸린다. 그러니 "가볍게 삽시다!". 이 우주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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