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축!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샌. 2024. 10. 12. 10:19

그저께 저녁(2024/10/10) 컴퓨터 화면에 속보가 떴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 작가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보도였다. 이게 무슨 일?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가 금방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아,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구나!

 

이번 수상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한때는 노벨 문학상 발표일이 되면 유력한 수상자로 기대되던 시인의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나도 시간에 맞추어 소식을 기다렸다. 여러 해 동안 공염불이 되자 열기가 시들해졌고 이젠 아예 관심이 사라졌다. 그러던 차에 마른하늘의 벼락처럼 낭보가 터진 것이다.

 

한림원에서는 수상 이유로 한강 작가의 글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력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의 폭력성과 피해자가 입은 내면의 상처를 집요한 탐구로 주시한 것이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2016년에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서 읽어보았지만 나로서는 책장을 넘기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독특했지만 더 이상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지는 않았다. 지금 돌아보니 내 안목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점도 대단한 일이다. 123년이나 되는 노벨 문학상 역사에서 아시아 수상자는 타고르(1913, 인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 일본), 모옌(2012, 중국)에 불과했는데 이번에 한강 작가가 다섯 번째로 수상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 문인들을 제치고 50대 여성인 한강 작가의 수상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2016년에는 대중가수인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강은 이런 시대의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로 보여진다.

 

수상한지 이틀이 지났지만 작가는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있다. 아버지인 한승원 소설가의 전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의 전쟁으로 날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축하를 받아야 하는가"라며 거부한다는 것이다. 역시 평소의 한강 작가다운 태도가 아닌가 싶다. 작가는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매일 울면서 썼다고 한다.

 

작가는 몇 달 전의 인터뷰에서 집필하는 순간에 내면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정신의 풍경은 어떤 것인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심장 속, 아주 작은 불꽃이 타고 있는 곳. 전류와 비슷한 생명의 감각이 솟아나는 곳."

 

서점에서는 작가의 작품이 하루에 십만 부가 넘게 팔려 나가면서 품절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새 책을 찍어내느라 인쇄소는 24시간 돌아간다. 당분간 한강 열풍은 계속될 것이다.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는 특별 에디션이 출판된다면 나는 그때를 기다려서 전체 작품집을 사 볼 계획이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개인의 영광일 뿐 아니라 나라의 경사이기도 하다. 고맙습니다, 한강 작가님!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트임과 귀닫음  (0) 2024.10.18
해리스 vs 트럼프  (1) 2024.09.12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0) 2024.09.06
뜨거운 여름  (0) 2024.08.14
안경 다섯 개  (0) 202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