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공화당 후보인 해리스(Kamala Harris)와 트럼프(Donald Trump)의 미국 대통령 선거 TV 토론이 어제 있었다. 우리 시간으로 아침 10시에 시작했는데 생중계를 보느라 처음부터 끝까지 TV 앞을 지키고 있었던 건 처음이었다. 남의 나라 정치 쇼에 내가 왜 이렇게 관심이 큰지 나 스스로도 의아했다. 해리스라는 새로 등장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컸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트럼프는 워낙 비호감이라 해리스를 응원하며 토론을 지켜봤다. 노회한 트럼프를 여유 있게 상대하면서 토론을 주도해 나가는 해리스가 멋있었다. 부드러우면서 강인해 보이는 이미지도 좋았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해리스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의 국내 정책에 대한 논쟁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인물의 호오에 따른 바람이다.
두 사람의 토론을 보면서 미국의 정치 수준도 별 것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정치의 복사판을 보는 것 같았다. 일방적인 자기 주장과 선동이 자주 나왔는데 이런 게 통한다는 것이 유권자의 의식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슨 말이나 잘못을 해도 무조건 표를 주는 단단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진영 대결이 미국에서도 그대로 보였다.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미국 사회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민주주의의 모범이고 정치의 선진국이란 칭찬도 옛말이 된 듯하다.
그나마 해리스는 미국의 이상을 제시하며 통합과 공존의 가치를 중요시했다. 토론에서 실소를 한 장면이 여럿 있었다. "불법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 "해리스는 마르크스주의자다" "민주당은 갓 태어난 영아도 살해하는 법을 만든다"라는 등의 트럼프 발언이었다. 미국 내부 사정을 잘 모르지만 이 정도는 터무니없는 거짓 선전이라는 것을 나도 알겠다. 이런 말이 먹힌다는 게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내가 너무 편향적으로 보는지는 모르나 트럼프는 질 나쁜 상인 같은 인상을 받는다. 자기 이익 외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토론에서 세계 평화나 기후 위기, 청정에너지 등이 소홀히 취급받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일류 선진국이라면 세계적인 중요 이슈를 선점하고 주도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위기는 이런 데서 시작하는지 모른다.
미국의 대선 후보 토론을 보면서 우리나라 상황과 많이 겹쳐졌다. 트럼프한테서는 그와 비슷하게 연상되는 인물이 떠올라 괴로웠다. 무식하고 용감하면 대책이 없는 법이다. 해리스의 건투를 빌며 미국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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