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무처럼 / 오세영

샌. 2024. 11. 6. 10:16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

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

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

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

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듯

 

- 나무처럼 / 오세영

 

 

기온이 뚝 떨어졌다. 눈을 뜨니 냉랭한 기운이 얼굴에 닿아 이불을 끌어올렸다. 가을을 제대로 즐기기 전에 겨울이 불시에 쳐들어 온 것 같다. 따끈한 믹스커피 한 잔을 감싸 쥐고 너와 내가 나눌 수 있는 온기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의 삶이란 게 너무 소란하고 번잡하다. 벌판의 메뚜리 떼마냥 가만있질 못한다. 우리는 좀 더 근신하며 고요하게 살 수는 없을까. 드러내고 뻐기기만 자제해도 세상은 훨씬 평화로워질 것 같다. 주장은 많지만 침묵은 귀하다. 조심스러운 몸짓은 드물다. 고운 색깔로 익어가는 가을 산야 속의 조용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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