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삼천포 / 백석

샌. 2024. 11. 26. 10:39

졸레졸레 도야지 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 같이 누우란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느 눈 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라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 삼천포-남행시초4 / 백석

 

 

백석은 20대 때 남해안을 여행했다. 통영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도 했다. 이때 쓴 시가 '남행시초(南行詩抄)'로 여러 편이 전한다. 이 시 '삼천포'도 당시의 따사로운 정경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구절인 '아 모도들 따사로이 가난하니'에 유난히 마음이 가 닿는다.

 

요사이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는 '따스한 가난'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이야 달라지지 않았을 텐데, 그때의 욕망과 지금의 욕망은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하다.

 

* 재릿재릿하니: 간지러운 느낌

* 담복: 담뿍

* 누우란: 누런

* 츠고: 치우고

* 기르매: 길마(안장)

* 조은다: 졸고 있다

* 모도들: 모두들

* 따사로이: 따뜻한 기운이 조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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