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75

아차산길을 걷다

대기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사계절의 변화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이때가 가슴을 가장 설레이게 한다. 식물들이 새싹을 틔우고 만물이 다시 생동하기 시작하는 이때만큼 극적인 변화도 찾아보기 어렵다. 죽어버린 것 같은 나뭇가지에서 연초록 새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봄이 희망의 계절인 것은 그런 기적이삭막한 우리의 마음이나 삶에도일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보아온 것이지만 초봄에 자연이 연출하는 풍경은 늘 처음처럼 새롭고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내와 같이 아차산길을 걸었다. 힘든 일만 연속으로 일어나는 때에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 중의 하나는 서로에 대한 연민이 아닐까 싶다.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사랑의 관계..

사진속일상 2007.03.19

안양천을 다시 걷다

당산 전철역에서 내려 선유도 방면으로 한강에 나가려 했으나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엉뚱하게 안양천에 닿게 되었다. 예전에 자주 쓰던 말로 '삼천포로 빠졌다"는게 이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서 계획에 없던 길을 걷게 되었다. 인생길에도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 인생 행로가 바뀌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사소한 일이야 이래도 저래도 좋다지만 '어느날 갑자기' 식의 사건이 터져 180도로 인생길이 달라지기도 한다.한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변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미미해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때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나 수많은 인생길 중에서 어느 길이 좋고 나쁜지를 판별할 기준을 우리는 갖고 있지 ..

사진속일상 2007.01.15

잠실철교에 보행로가 생기다

잠실철교에 전용 보행로가 생겼다. 그동안에는 전철이 다니는 양쪽으로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좁은 1차선 길이 있었으나서쪽길을 폐쇄하고 사람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로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에 건설된 도로나 다리는 대부분 자동차 우선으로 설계되어 있다. 사람이나 자전거가 다니기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만다. 다행히도 근래에는 도로를 보행자나 자전거 통행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변경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런 인식 전환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접근이 금지되었던 잠실철교에도 드디어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다. 기쁜 마음에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와 달리 소음이 없어 좋다. 가끔씩 지나가는 전철의 ..

사진속일상 2006.12.10

기대하지 않기

요사이는 비도 사납게 내린다. 국지성 집중호우라 부르는데 짧은 시간에 엄청 퍼붓고는 씻은 듯 사라진다. 꼭 게릴라의 행동을 닮았다. 어제 밤에도 천둥 번개가 치면서 쏟아져 몇 번을 잠을 깨었다. 낮이 되니 가끔 이슬비가 내리면서 밤처럼 요란을 떨리지 않는다. 비가 내린 뒤의 흐린 날은 산책하기에 좋다. 도시의 탁한 공기도 정화되었고, 여름 햇빛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으로 나갔다가 다시 시내로 들어가 도시 길을 걸어본다. 자동차 소음만 무시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도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서민들이 사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굳이 무엇을 본다거나 어디로 가야하는 목표는 없다. 그저 발길 가는대로 몸과 마음을 맡기고 몇..

사진속일상 2006.08.27

퇴근길의 걷기

날씨가 좋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퇴근하다가 중간에서 전철을 내려 한강으로 나간다. 뚝섬역에서 내리면 바로 청담대교가 있는 뚝섬유원지 지역인데 거기서부터 집에까지 가는데 거리로는 약 4 km, 시간으로는 1 시간 정도가 걸린다. 요사이는 낮이 길어서 저녁 8 시가 되어도 주위가 훤하다. 서울에 살면서 제일 아쉬운 점은 조용히 걸을 만한 길이 적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남산길이라든가 서울숲과 같은 큰 공원이 생기긴 했지만 자동차 소음이나 매연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드물다. 그나마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이 한강이나 여러 천변들이다. 그것들마저 없다면 서울은 더 삭막한 도시가 될 것이다. 장마철이어서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덮여있다. 그래도 자주 내리는 비로 인해 부옇게 매연이 내린 칙칙한 풍경은 사라져서..

사진속일상 2006.07.06

화나고 우울할 때

살면서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세상살이가 사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부득이하게 큰소리가 나오고 마음속에 쌓여있던 불만과 미움의 마그마가 한 순간에 분출한다. 나의 경우 어떨 때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 낸 것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떠나 자신이 그렇게 흥분했다는 사실에 대해 곧 자책감의 밀물이 밀려온다. 상대방보다도 자신이 더욱 미워진다. 이렇게 되면 며칠간 우울한 감정에 시달리게 된다. 규모가 큰 폭발일수록 후유증은 오래 간다. 화나고 우울할 때 조심할 것은 자신의 잘못에만 집중하며 자책하고 자괴심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날아간 화살에 너무 아파해서는 안 된다. 화가 일어나면 그 화를 그대로 인정하고 잘 살펴보아야 한다. 미움과 분노를 감추려하거나 숨기..

길위의단상 2006.05.30

안양천을 걷다

어제는 안양천을 걸었다. 양화대교에서 시작해 한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안양천으로 접어들어 석수까지 갔다[걸은 거리; 20 km, 12:00-16:30]. 안양천은 경기도 과천에 있는 청계산에서 발원해서 안양을 지나 서울 남서부 지방을 흐르는 길이 약 35 km의 한강 지류로, 아마 서울에 있는 한강 지류로서는 제일 긴 하천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불명예스럽게도 안양천은 오염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탁한 물과 풍기는 악취가 걸어본 지천들 중에서 제일 심했다. 곁에 있으면 냄새가 너무 심해 머리가 아프고 불쾌해질 정도였다. 강에는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다. 인간들은 저렇게 화려한 도시를 건설하지만 공기와 물이 오염되건 말건 자신들의 배설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야 이렇게까지..

사진속일상 2006.01.27

양재천을 걷다

양재천(良才川)은 경기도 과천에서 발원하여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를지나서한강에들어가는 길이 약 20 km의 하천이다. 하류에서 탄천과 합류하여 한강과 만난다. 전에는 직접 한강과 연결되었는데 1970년대에 개포지구 토지 정리를 하면서 물길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예전의 하천 이름은 공수천(公需川), 학천(鶴川), 학여울 등으로 불리었다고 하니 아마 예전에는 학(鶴)이 이곳에 많이 다녀갔는가 보다. 지금도 인근에 학여울이라는 지하철역명으로 남아있다.현재 이름은 이 하천이 양재동을 통과하여 흐르기 때문에 붙여졌다는데 옛 이름이 훨씬 멋있게 들린다. 오늘은 양재천을 따라 걸었다. 한강에서부터 시작해서 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과천의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까지 걸었다[걸은 거리; 15km, 11:00-14:00]. 양재..

사진속일상 2006.01.23

중랑천을 걷다

젊었을 때는 나이 든 사람을 보면서 내가 늙으면 저런 처지가되지는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든 지금, 예전에 못마땅했던 그 선배들과 똑 같이 되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특별하고 예외적일 것이라고 자부했던 자신이 그냥 보통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이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중랑천을 걸었다. 한강에서부터 시작해 중랑천 서편 둔치길을 따라 올라가며 상계동 끝까지 걸었다[걸은 거리; 20km, 12:00-16:30]. 중랑천은 나와 인연이 깊다. 1970년대 초부터 근 15년간 중랑천 옆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중랑천 둑방길이 출퇴근로가 되기도 했다...

사진속일상 2006.01.14

탄천을 걷다

탄천은 경기도 용인에서 발원해서성남을 지나 한강에합류하는 길이 35km의 한강 지천이다. 탄천(炭川)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숯을 많이 구워서 물이 검게 되었기 때문이라는데, 지금은 오염원은 다르지만 물색이 검은 것은 마찬가지다. 하수처리장이 있다지만 아직 용량 부족인지 도시에서 쏟아지는 생활 하수는 천을 온통 시꺼멓게 물들이고 있다. 가까이 가면 썩는 냄새가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대부분의 강들이 이렇게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특히 대도시 주변을 흐르는 강들은 이미 생명력을 상실했다. 마치 인공호흡기로 살아가는 중환자실의 환자 같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위의 사진은 서울공항 인근의 탄천과 산책로이다. 공항을 닮아선지 천도 길도 활주로 마냥 직선으로 끝없이 뻗어있다. 붉은색 길은 자전거로이..

사진속일상 2006.01.11

한강을 걷다[선유-뚝섬]

오늘은 선유도에서 출발했다. 선유도에서 여의도까지 간 후, 서강대교를 건너 강 북단으로 건너가서 뚝섬까지 걸었다. 걸은 거리는 22km였다(12:00-17:00). 선유도공원은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원래 이 섬에는 선유봉이라는 절경의 봉우리가 있었다는데 60년대 개발 열풍에 사라져 버렸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서강대교에서 바라본 여의도. 쌍둥이빌딩과 63빌딩의 단순한 조형미가 아름답게 보였다. 서강대교에서 내려다 본 밤섬의 전경. 철새의 낙원이라는데 오늘은 철새 그림자 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 발길이 끊긴 밤섬은 덩굴식물의 천국이 되었다. 나무를 뒤덮은 모양이 마치 이불을 뒤짚어 쓴 듯 기묘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는 얼마나 답답할까? 한강 고수부지는 온통 시멘트로 도배를 했는데 ..

사진속일상 2006.01.02

2005년의 끝 날

한해의 끝 날이어선지 마음이 허전하다. 지난 한해 특별히 잘못 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래도 왠지 아쉽고 쓸쓸하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지는 것을 우리말로는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보통 먹는다는 것은 허기가 채워진다는 뜻인데,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도리어 더 허기지고 갈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신문에 ‘먹는다’는 표현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말이 먹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사진속일상 2005.12.31

눈 내린 한강과 청계천을 걷다

밤 사이에 첫눈이 내렸다. 올해 서울 지방의 첫눈은 기록상으로는 11월 28일이지만 그때는 가는 눈발이 잠깐 비치며 땅에 쌓이지도 않고 지나가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눈장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내렸다. 그러나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밖에는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강길을 걷기 위해 아내와 같이 다시 밖으로 나섰다. 지난 번에는 아내가 발이 부르터 고생을 한 탓에 이번에는 신발을 런닝화로 바꿔 신고, 또 추운 날씨에 대비해서 중무장을 하고 출발했다. 11:30에 집을 나서 올림픽대교에서 시작해 한강 북쪽 길을 따라 걸었다. 휴일인데도 날씨 탓인지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잠실철교, 잠실대교,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를 거치며 중랑천과 합류하는..

사진속일상 2005.12.04

한강길 30km를 걷다

어제는 오랜 시간 한강 둔치길을 걸었다. 배낭에 가벼운 간식거리를 챙긴 후 아내와 같이 10시 30분에 집을 나섰다.집이 한강에서 가까운 관계로 10여분이면 한강에 닿을 수가 있다. 걸어서 잠실대교를 건너 남쪽 잠실지구 둔치로 갔다. 사람들은 대개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려고 하지 않지만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을 견딜 마음만 있다면 다리를 건너보는 맛도 색다르다. 여기서 한강 둔치의 남쪽 길을 따라 선유도까지 걸을 예정이었다. 거리로는 약 25km, 7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제는 맑고 바람도 잠잠한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한강공원에는 늦가을의 조금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놀러나온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행렬이 가끔씩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두 시간 정..

사진속일상 2005.11.21

장마의 끝

장마가 끝났다는데 아직 하늘은 흐리다. 가끔 햇살이 보이다가도 이내 구름으로 덮이고 짧게 비가 뿌리기도 한다. 그래도 장마가 끝났음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이번 장마는 막바지에 폭우를 쏟아붓더니 여러 곳에 비 피해를 주고 물러났다. 이곳에 오는 날은 얼마나 비가 세차게 내리던지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로는 흙탕물로 흘러넘치고 숨가쁘게 움직이는 브러쉬로도 차창의 빗물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퍼붓더니 언제 그랬냐느듯 순간에 잦아들었다. 다행히 터에 피해는 없었다. 아마 작년같았으면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또 한번 고생했을 것이다. 그동안 땅이 다져지고 풀이 덮혀서 흙쓸림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간에 땅도 몸살을 몹시 한 것 같다. 중장비가 들어와 끊고 파헤치고 했으니 땅..

참살이의꿈 200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