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에 첫눈이 내렸다. 올해 서울 지방의 첫눈은 기록상으로는 11월 28일이지만 그때는 가는 눈발이 잠깐 비치며 땅에 쌓이지도 않고 지나가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눈장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내렸다. 그러나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밖에는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강길을 걷기 위해 아내와 같이 다시 밖으로 나섰다. 지난 번에는 아내가 발이 부르터 고생을 한 탓에 이번에는 신발을 런닝화로 바꿔 신고, 또 추운 날씨에 대비해서 중무장을 하고 출발했다.
11:30에 집을 나서 올림픽대교에서 시작해 한강 북쪽 길을 따라 걸었다. 휴일인데도 날씨 탓인지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잠실철교, 잠실대교,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를 거치며 중랑천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강변의 개나리들이 철없이 꽃을 피웠다가 눈을 뒤집어쓰고 추위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강 본류에서 벗어나 중랑천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청계천으로 접어들었다. 한낮이 되었는데도 바람은 세차고 추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잠시 서있으면 추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천변에는 잠시 들어가 쉴 수 있는 휴식처가 전혀 없었다. 준비한 샌드위치를 덜덜 떨며 겨우 먹었다.
청계천길을 따라 아래서부터 제일 상류인 청계천1가까지 걸어갔다. 아내는 얼떨결에 새로 단장한 청계천 구경을 한 셈이다. 그것도 전구간을 온전히 걸었으니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한 시간이 16:30, 거리로는 약 25km를 5시간 동안걸은 셈이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아내가 잘 걸어주었다. 전혀 물집이 생기지 않고 발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지난 번에 약 30km, 이번에 약 25km를 걸었으니 이젠 어떤 길이라도 걸어낼 자신이 생긴다. 이제 걷는 재미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걷는다는 단순한 동작을 통해서 정신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같다. 발은 무겁고 몸은 피곤해지지만 도리어 몽롱한 가운데 느껴지는 황홀함이 있다.
다음번 걸을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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