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2005년의 끝 날

샌. 2005. 12. 31. 19:10

한해의 끝 날이어선지 마음이 허전하다. 지난 한해 특별히 잘못 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래도 왠지 아쉽고 쓸쓸하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지는 것을 우리말로는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보통 먹는다는 것은 허기가 채워진다는 뜻인데,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도리어 더 허기지고 갈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신문에 ‘먹는다’는 표현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말이 먹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를 묻는 환자에게 “나이만 먹지 말고 다 먹어라”고 했다는 어느 의사의 이야기는 한국인만이 웃을 수 있는 우스갯소리다.

시간을 상징하는 그리스신화의 크로노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먹어버린다. 하지만 한국인은 매년 설이 되면 자식까지 삼켜버린다는 그 무시무시한 크로노스를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음식이나 시간만이 아니다. 마음도 먹는다고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국인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돈도 떼어먹고 욕도 얻어먹고 때로는 챔피언도 먹는다. 전 세계가 한점 잃었다(로스트)고 하는 축구경기에서도 우리 '붉은 악마'는 한 골 먹었다고 한다. 모든 층위에서 먹는다는 말은 유효하다. 심리적으로는 겁을 먹고 애를 먹는다. 소통 행위에서는 "말이 먹힌다" "안 먹힌다"고 하고 경제면에서는 경비를 먹거나 먹혔다고 한다. 심지어 성애의 차원에서는 따먹었다는 말까지 등장한다.‘




잠실대교에서 시작해서 한강 북쪽의 둔치길을 따라 걸었다.

반포대교까지 내려가서 잠수교로 한강을 건넌 다음, 남쪽길로 해서 동작대교까지 간 뒤 동작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시간은 4시간 30분 정도 걸렸고, 걸은 거리는 16km 정도 되는 것 같다. 운동을 쉬어선지 요만한 거리에도 허벅지 근육이 당긴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 나에게는 그냥 길을 나서 걷는 것이 제일 효과가 있다. 그러면 마음에 엉겨있는 찌꺼기들이 어느 샌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만 서울에서는 걸을 장소로 마땅한 곳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런대로 한강변이 나아보이지만 교통 소음이 끈질기게 따라 붙는 것은 어쩔 수없이 감수해야 한다.


옛사람들은 세월을 유수(流水)에 비유했다. 그런 뜻에서 오늘 한해의 끝 날에 흐르는 한강 물을 따라 걸은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한해가 간다.

지나고 보면 늘 아쉽고 후회스러운 것이 사람의 삶이다. 나 역시 스스로 돌아보아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대과(大過) 없이 한해를 보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

이제 몇 시간 뒤면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한해가 나에게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새해에는 좀더 의미 있고 아름다운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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