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전야,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배론 성지에 들러 신부님을 만나 뵙다. 오래 뵙지 못해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건만 도리어 많은 것을 받기만 했다. 그리고 조용한 산 속에 있는 도미니꼬 수녀원에서 성탄 밤 미사를 드렸다.
봉쇄 수도원이라 작은 성당을 두 부분으로 나눠 수녀님들과 신자들이 울타리로 서로 격리된 채 마주보며 앉고 사제는 가운데서 미사를 집전하는 형식이 특이했다.
수녀님들, 마을 주민과 함께한 미사는 조용하고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결코 대도시의 큰 성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은혜로운 밤이었다.
자정이 넘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감사와 고마움으로 마음이 환했다.
2천년 전,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 스스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날.
스스로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주위를 따스하게 하는 저 작은 촛불 하나에도 부끄러워진다.
머리로 그분을 헤아리고, 상대방 티끌에 분노하고,둘을 가지고도 열 가지를 욕심내는 내 모습이 자꾸만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