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는 비도 사납게 내린다. 국지성 집중호우라 부르는데 짧은 시간에 엄청 퍼붓고는 씻은 듯 사라진다. 꼭 게릴라의 행동을 닮았다. 어제 밤에도 천둥 번개가 치면서 쏟아져 몇 번을 잠을 깨었다. 낮이 되니 가끔 이슬비가 내리면서 밤처럼 요란을 떨리지 않는다.
비가 내린 뒤의 흐린 날은 산책하기에 좋다. 도시의 탁한 공기도 정화되었고, 여름 햇빛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으로 나갔다가 다시 시내로 들어가 도시 길을 걸어본다. 자동차 소음만 무시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도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서민들이 사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굳이 무엇을 본다거나 어디로 가야하는 목표는 없다. 그저 발길 가는대로 몸과 마음을 맡기고 몇 시간이고 걷다보면 나른한 피곤함과 함께 마음이 차분해진다. 절로 명상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걷기 명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오늘은 걸으면서 제일 많이 생각한 것이 ‘기대하지 않기’였다. 지금 여기서의 행복을 온전히 맛보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해서나 인생에 대해서나 별 기대를 갖지 않아야 한다. 사실 기대나 희망이란 것이 내 마음의 욕망의 투영인 경우가 흔하다. 그런 것을 버릴 때 내 모습 그대로의 지금 여기서의 존재감을 한껏 누릴 수가 있다.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그런 마음속의 기대와 비교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 껍데기들을 버리고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긍정한다면 삶이 훨씬 더 맛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혼자서 발길 가는대로 걷기가 최고의 위안이면서 명상의 시간이다. 조용한 숲길이 가장 좋겠지만 도심의 길이라도 못 걸을 것은 아니다. 현란한 풍경들과 시끄러운 소음도 오래 걷다보면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걸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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