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길에 무지개를 보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한강에 나갔을 때였다.
무지개를 본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 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만큼 하늘을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도시 속의삶이란철저히 자연과 차단되어 있다. 빌딩 숲에 가려 하늘 조차 손바닥만하게 작아져 있다. '도시가 더 자연적입니다' - 이런 광고 카피를 보고 실소한 적이 있지만 그렇게라고 자위해야 이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서울은 한강이 있어 그나마 살아있다. 오늘 저녁은 멀리서 다가오는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서늘한 바람에 더위도 가시고 가을 하늘처럼 맑고 넓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많은 시민들이 강변에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잠실지구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의 표정이나 말소리가 오늘은 하늘을 닮아있다.
산책은 느릿느릿 걸으며 주변 풍광과 함께 하는 걸음이다. 정신적으로는 긴장이 풀어지고 여유로워진다. 아무 생각이나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그대로 둔다. 온갖 생각이 명멸하듯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무엇에도 분별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렇게 주변 풍경도 다가왔다가는 멀어진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끔씩 카메라를 꺼내들고 셔터를 누른다. 찍히는 것은 그 순간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그때의 내사념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세상과 교류한다.
동쪽에서부터 검은 구름으로 덮이더니 금방 비가 쏟아질 듯 했다. 부득이 중간에서 발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 잠실철교를 지나는 전철의 좁은 창문으로온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을 아쉽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