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서 도로의 경계석을 바꾸고 다시 포장을 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중장비의 소음과 먼지로 이 한여름에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의미있게 생각되는 작업이라면 어떤 고통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지만, 도대체 안 했으면 더 나을 것 같기에 스트레스가 더하다.
아직 멀쩡한 시멘트 경계석이고 포장 상태도 깨끗한데 무엇 때문에 화강암으로 교체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면 도시에서 시행되는공사들 중 이런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미관을 위해서 엄청난 낭비를 하는 셈이다. 아니면 이런 사업이라도 벌려야 경기가 활성화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 유지되는 경제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대규모로 에너지 소비를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이 문명은 언젠가는 파국에 직면할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오래된 것을 가만 봐주지 못하는 것 같다. 전통과 역사의 도시로서의 서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옛 것은 거의 파괴당했다. 그것은 농촌도 마찬가지다. 6, 70년대 새마을운동이 휩쓸고 간 후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문화는 사라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망령은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밖에서 벌이고 있는 저 공사 또한 그런 맥락과 다름 아니라고 본다. 하여튼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어딜 가도 중장비 소리가 들리는 공사공화국이다.
아내와 같이 뒷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서울 하늘은 전형적인 여름 구름이 뜨거운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다. 한 시간 정도 걸어올라왔는데 도시의 소음과 열풍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솔나무 그늘에 누워 시집을 꺼내 읽는다. 두리틀의 '열기'라는 시가 눈길을 끈다. 저 아래 인간 마을의 탐욕의 열풍을 잠재울 폭풍우가 한 바탕 휘몰아쳤으면 하는 상상을 한다.
O wind, rend open the heat,
cut apart the heat,
rend it to tatters.
Fruit cannot drop
through this thick air....
Cut through the heat -
plow through it
turning it on either side
of your path.
- Heat / H. Doolittle
아 바람이여, 열기를 찢어 열어라.
열기를 베어 갈라라
갈가리 찢어 발겨라.
이렇게 텁텁한 공기 사이로는
과일 하나 떨어지지 못한다.
열기를 자르며 나가라 -
열기를 갈아엎어라
네가 가는 길
양 옆으로 치워버려라.
- 열기 / 두리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