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철교에 전용 보행로가 생겼다.
그동안에는 전철이 다니는 양쪽으로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좁은 1차선 길이 있었으나서쪽길을 폐쇄하고 사람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로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에 건설된 도로나 다리는 대부분 자동차 우선으로 설계되어 있다. 사람이나 자전거가 다니기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만다.
다행히도 근래에는 도로를 보행자나 자전거 통행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변경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런 인식 전환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접근이 금지되었던 잠실철교에도 드디어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다.
기쁜 마음에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와 달리 소음이 없어 좋다. 가끔씩 지나가는 전철의 순간적인 굉음은 충분히 참아줄만 하다. 자동차가 다닐 길을 없애고 사람과 자전거의 길로 만들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긴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어릴 때 철로 옆으로 난 길은 사람들의 주된 통행로였다.
학교 갈 때, 옆 마을로 놀러갈 때, 장에 갈 때, 사람들은 마을 앞으로 뻗어있는 철로길을 자주 이용했다. 텁텁한 기름 냄새가 배어있는 그 길이 무척 좋았던 기억이 난다. 철로는 어린 시절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당시 증기기관차의 속력으로는 기차길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다. 석탄이나 시멘트를가득 싣고 기차는 숨차게 허덕이며 느릿느릿 달렸다.어른들은 달리는 기차를 따라가 올라타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디젤기관차가 달리고 열차 속력이 빨라지면서 철로 옆길은 위험해졌다. 예전에는 걷다가 살짝 몸을 비키면 되었지만 이제는 열차에 휩쓸려들어갈 정도로 회오리바람이 불어 무서워졌다. 그래서 철로 통행이 금지되더니 급기야는 길을 자갈로 덮어버리고 길 자체를 없애버렸다.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 철로에 서면 그 옛날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줄이 철로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다시 그 길을 걸어보고 싶은데 이젠 한 발도 내디딜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철로를 따라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작은 길이 앞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철로는 대개 둑길 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 아래쪽으로 충분히 소로를 만들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러면 걸으면서 국토순례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조용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도로를 따라 하는 걷기는 너무나 위험하고 시끄럽다.
아내와 다리를 건넌 뒤 원래는 동작까지 강변을 따라 걸어갈 예정이었으나 맞바람이 심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암사까지 걸었다. 그리고 다시 시내로 들어가 동태찜에 막걸리로찬 몸을 녹인 후 재래시장에 가서 슬리퍼를 사고 좋아하는 엿거리도 샀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물건을 사고 나니 동전 한 푼 남지 않게 되었다. 자의반 타의반, 다시 역코스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섯 시간여를 걸었더니 그동안 별 운동을 하지 않던 몸이 여기저기 뻐근하다. 걷기만큼 몸과 마음에 좋은 보약이 없음을 재삼 확인하고 있다. 숲길만큼은 못할지라도 도시에서의 걷기 또한 나름대로의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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