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차가운 계절

샌. 2006. 12. 22. 09:05


며칠 전에 중부지방에 함박눈이 내렸다. 수원은 25 년만의 대설이었다고 한다.

한 순간에 나타나서 황홀케 했던 하얀 설국도 이틀이 지나니 자취를 감추었다. 홀연히 피어난 겨울나무의 설화도 이젠 다 사라졌다.

눈 온 다음 날 친구와 같이 경복궁을 걸었다.

이 친구는 30 년 지기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직장에 놀러갔다가 처음 이 친구를 만났다. 그 뒤 2 년 정도 같이 근무했지만 가까운 관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 겨울에는 같이 도봉산으로 등산을 갔었다. 포대능선에서 눈에 미끄러졌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잡아주어서 아래 절벽으로 떨어지는 걸 막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친구는 늘 자기가 생명의 은인이라며 잘 모시라면서 부담을 준다. 그때 재미있었던 것은 몸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쓰고 있던 안경알이 빠져나갔다. 안경테는 그대로 걸쳐져 있는데 알만 떨어진 것을 보고 그 와중에서도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늘 올곧고 성실하게 살려는 친구가 산책 후 술자리에서 말했다.

"나 요사이 자존심 상하고 속 상해 죽겠다."

이때까지 친구에게서 그런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어딜 가나 동료나 상사에게 인정받고 신망 두터운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으면서도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어떤 면에서 친구는 그런 데 대한 내성이 아직 없다.

상사의 선택이 능력보다는 개인의 친분관계나 연줄에 좌우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출세를 하려면 또 다른 능력을 길러야 한다. 눈치 잘 보고 아부 잘 하는 사람이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친구야, 인간이나 세상에 대해 너무 기대를 하지 말거라.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우리는 우리 식대로 그냥 살아가면 되는 게 아니겠니."


어제는 한국인 다섯 명 중 네 명이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사 대상이나 내용을 몰라 정확한 평가는 못하지만 전 세계에서도 한국인이 받는 스트레스 강도가 무척 셀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다. 우리가 차가운 세상에 살고 있음은 확실하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경제 성장 추구에 따른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빠지지 않고 하루에 한 번씩 돈 타령, 아파트 타령이다.

나는 열을 받고 목소리는 하이톤으로 변한다.

"제발 그렇게 살지 말자니까!"

여자들은 다 그런가? 남보다 부족한 것을 왜 그렇게 못 견뎌하지? 집이 있고 없고에, 그리고 어떤 집에 사느냐에 왜 그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거지?

아내의 대답 또한 늘상 똑 같다.

"내가 정상이고, 당신이 비정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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