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가는 길에 가창오리의 군무를 보기 위해 저녁 시간에 맞추어 금강에 들렀다.
그동안 여러 차례 금강과 서산 방조제를 찾았지만 한 번도 가창오리떼를 만나지 못했었다. 찾아간 장소가 잘못되었는지 때가 잘못되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선 것이 여러 번이었다. 이번에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나포들에 있는 철새관측소가 관찰의 적지라는 정보만 가지고 찾아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관측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창오리떼가 모여 있었다.
호수같이 넓은 강 하구에 검은 띠를 이루며 엄청난 숫자의 무리가 쉬고 있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이 정도면 도대체 몇 마리 쯤 되는 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일부는 무리 위를 저공 비행하며 집단 비상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오후 5시 30분 쯤 되었을까, 한쪽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더니 일순간 전체 무리가 하늘로 비상해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 입에서 "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순간은 머리 속이 텅 빈 듯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불과 수 초 사이의 짧은 시간 동안에 수만의 가창오리들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
눈 앞에는 거대한 새들의 장막이 생겨났다.
이제 저 새들이 어디로 날아갈까 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과연 어떤 멋진 군무를 과연 보여줄 것인가?
아쉽게도 새들은 점점 어두워지는 강의 상류 쪽으로 향하면서 점점 멀어진다. 그리고는 영영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맨 마지막까지 남아 기다려 보았지만 그들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기대했던 하늘의 군무를 보지는 못했지만 가창오리떼를 만난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한 셈이다.
나에게는 이 광경도 대단한데 옆의 사람은 이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온 하늘이 새떼로 뒤덮이는 걸 만나면 숨이 막힐 거라고 했다. 그래, 충분히 상상할 만하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 번에는 더 멋진 군무를 기대하며 자리를 떴다. 그들과의 재회를 기대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2006/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