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겨울비 내리는 북한강에서

샌. 2006. 12. 16. 14:11


겨울비 내리는 저녁에 북한강변에 서다.

비는 간지리듯 살포시 온 대지를 적신다. 바로 앞의 강과 그 너머 병풍같이 둘러싼 산들이 저녁 빗속에 고즈녁히 잠겨있다. 강의 물이 하늘의 물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정겹고 포근하다.

이곳은 이름은 북한강이지만 강이 아니라 호수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다. 그러니 북한강이 아니라 팔당호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댐이 만들어지고부터 한강은 거대한 호수 지대로 변하고 있다. 호수와 호수를 연결하는 군데군데 옛 강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풍경은 때로 새로운 욕망을 잉태하지만, 어떤 풍경은 들끓어오르는 욕망을 잠재우기도 한다. 오늘 내가 여기서 마주한 풍경이 그러하다. 보슬비 내리는 겨울 강변은 모든 것을 벗어버린 탈속의 미를 보여준다. 온갖 생각의 번잡함이랑 부딧돌의 부딪침같이 번쩍이며 명멸하는 번뇌가 이 풍경 앞에서는 저절로 가라앉는다. 아무 생각없이 아무 생각없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기만 한다. 눈 앞 풍경이 너무나 따스하고 포근하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따스한 가슴이 아닐까? 얼음장같이 차가운 이성과 옳고 그름을 칼날같이 구별하는 분별력을 갖고 있을지라도 따스한 가슴이 없다면 멋대로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하잘 것 없음에 대한 따스한 배려야말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가치임을 지금 이 순간 재확인하게 된다.

캄캄해진 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정체도 느긋이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자꾸만 어긋나기만 하는 세상과도 이젠 무난히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이젠 좀더 느긋하게, 좀더 여유있게, 그래서 좀더 포근하고 따스하게 살기로 나 자신과 다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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