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66

천근만근 무거운 몸

연속적인 재채기와 함께 콧물이 줄줄 흘렀다. 닷새 전 아침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계속 집에 있었는데도 감기를 맞은 것이다. 이런 환절기 연례행사는 건너뛰면 좋으련만 매년 어김없이 찾아온다. 사실 올해는 감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찬 바람을 쐬거나 무리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가 잘못됐는지 불청객이 노크도 없이 침입했다. 굳이 원인을 찾자면 낮에 방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활짝 열어둔 것밖에 없었다. 싸늘한 기운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감기에 걸리는 이 유리 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다행히 열을 동반하지 않은 콧물감기였다. 약국에서 콘택을 사 먹으니 콧물은 하루 만에 그쳤다. 그러나 미지근한 두통은 계속되었다. 하필 누워 있는 와중에 고모님의 부음을 들었다. 2년..

사진속일상 2020.12.02

시드는 풀꽃을 바라보자

늦가을의 산길을 걷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해도 한낮이 되면 걷기 적당할 정도로 기온이 올라간다. 따스한 햇살이 점점 반갑고 고마워지는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오늘은 코로나 하루 확진자 수가 500명대로 올라갔다. 당분간은 사람 만나는 걸 더욱 조심해야겠다. 백수 신세로서 칩거하는 것 외에 세상에 도움이 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집 가까이 있는 산길을 혼자 걷는 떳떳한 명분이 다시 생겼다. 이 시기의 산은 졸음에 겨운 듯 나른하다. 땅에 떨어져 쌓인 나뭇잎이나, 잎을 떠나보낸 나무나 모두 편안한 자세로 서거나 누워 있다. 초봄의 산은 수런거리며 뭔가 음모를 꾸미는 듯하지만, 늦가을의 산은 버린 자의 여유와 한가함이 있다. 늦가을의 산길에서는 자꾸 걸음이 멈추어진다. 늦가을은 내 인생의 계절과 비슷하다. ..

사진속일상 2020.11.26

남한산성 성곽길 걷기

용두회에서 남한산성 성곽길을 걸었다. 네 명이 나왔다. 원래는 남문에서 수어장대를 거쳐 북문까지 가는 코스를 걸으려 했으나 내년 2월까지 공사로 이 길이 폐쇄되었다. 그래서 부득이 동문으로 향했다. 삼사 년 전만 해도 성곽길 한 바퀴를 돌자고 하면 다들 기꺼이 응했다. 약 9km에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니 걸을 만하다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손사래를 친다. 나이에 맞게 걷자며 반 바퀴가 적당하단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남한산성 남문은 유일하게 '지화문(至和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정조 3년에 성곽을 개보수할 때 붙인 명칭이다. 4대문 중 그나마 규모을 갖춘 문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이 문을 통해 피신했을 것이다. 문에는 철판을 입혔는데 그 모양이 성곽의 돌을 쌓아 놓은 ..

사진속일상 2020.11.13

늦가을 뒷산

늦가을이 되면 산은 순해진다. 자신을 비우고 가벼워진 존재가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사람이 덜 다니는 길은 낙엽으로 덮여 있다. 흐릿해진 경계 위를 따라 낙엽 밟는 소리가 좋다.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긴 낙엽은 바스락 소리를 내며 발아래서 부서진다. 하늘 열린 공터에 앉아 햇빛 사냥을 한다. 총도 없고 화약 냄새도 나지 않는다. 은폐, 엄폐 대신 최대한 노출을 많이 시켜야 수확물이 많은 이상한 사냥이다. 옆에는 골프장이 있다.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내며 공이 날아가고, 이어서 "나이스 샷" 하는 외침이 후렴처럼 따른다. 10년째 지켜보지만 아직 무슨 골프장인지 이름도 모른다. 단지 안 단풍나무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코로나로 멀리 나가는 단풍 구경을 못 했지만, 바로 옆에서 이런 화려한 향연을 즐길 ..

사진속일상 2020.11.11

청계산길을 걷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 탁구 모임에서 청계산을 걸었다. 아직 탁구장에 들어가기는 무리이고,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월 1회 모임이 당분간은 야외 걷기로 계속해야 할 것 같다. 다섯 명이 청계산입구역에서 10시에 모여 원터골로 올라갔다. 평일이지만 서울에 붙어 있는 산이라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다. 대부분 산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떠들며 올라가다 다른 사람한테 주의를 듣기도 했다. 그 뒤부터는 얘기도 소곤소곤 나누었다. 참나무가 많은 청계산 단풍의 주색은 노랑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맛이 있다. 옥녀봉능선을 걷는 산길은 포근하고 편안했다. 양재화물터미널로 내려오는데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산길 걷기를 마치고 양재역사거리로 나와 뒷시간을 가졌다. 여러 차례 선전했던 양재닭집의 치킨..

사진속일상 2020.10.23

가을물 드는 뒷산

아침 기온이 7도까지 떨어졌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뒷산의 나뭇잎도 가을물이 들어간다. 아직은 초록이 우세하지만, 지금 초록은 여름의 초록이 아니다. 깊어지고 잘 익은, 그윽한 초록이다. 체중이 한 달 전보다 2.5kg가 늘었다. 몸이 둔하고 무겁다. 뒷산길을 걷는 것도 전 같지 않다. 여름이라면 무척 헉헉댔을 것이다. 쉬엄쉬엄 가을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8년 동안 쓰던 휴대폰을 바꾸었다. 수명이 다한 듯 최근 들어 자꾸 고장이 나며 말썽을 부려서다. 선생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자기들은 뭘 먹고 사느냐고 매장 직원이 투덜거렸다. 새로 산 기종은 갤럭시 A31이다. 집 앞 가게에서 37만 원에 샀다. 고급 기종은 아니지만, 렌즈 성능이 전 기계보다 향상된 게 마음에 든다. 카메라가 없을 때 대용으로..

사진속일상 2020.10.14

코로나 추석

코로나로 이번 추석은 고향에서 모이지 않고 각자 지내기로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추석 차례를 주관하며 지낸 게 40년이 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누구도 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걸 보니 코로나가 대단하기는 하다. 할 일이 없어진 추석날은 길 걷기에 나섰다. 문득 난설헌이 생각났고, 그곳을 목표 지점으로 정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난설헌 묘가 있다. 전날은 감정 낭비가 심했는데 황폐해진 속도 달랠 겸 느릿느릿 산천경개를 구경하며 걸어갔다. 난설헌과 두 자식의 묘를 내려다보며 오래 앉아 있었다. 난설헌의 가련한 생애가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 자동차들의 굉음이 이어지던 중부고속도로는 얼마 되지 않아 상행선부터 정체가 시작됐다. 묘 옆에 있는 시비(詩碑)에는 난설헌 시..

사진속일상 2020.10.02

폭신한 뒷산

열흘 사이에 태풍 세 개(8호 바비, 9호 마이삭, 10호 하이선)가 지나갔다. 세 태풍은 한반도를 북진해서 통과했다. 기상청 설명으로는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강해서 일본쪽으로 휘지 못했다고 한다. 오래 비를 맞아서 뒷산길은 폭신했다. 드디어 산길 걷기 좋은 때가 찾아왔다. 여름보다 습도가 낮아 상쾌하고, 산모기와 날벌레가 없어 깨끗하다. 오늘 산길에서는 두 시간 정도 걷는 동안 예닐곱 명과 마주쳤다. 코로나로 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코로나 전이었다면 한두 명 마주치는 게 고작이었다. 평균 20분에 한 명씩 만나는 꼴이니 마스크를 안 써도 괜찮다. 그래도 좁은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조심하며 멀리 떨어져 지나친다. 태풍에 부러진 나무도 보였다. 이 나무는 줄기에 비해 키가 너무 웃자랐다. 나..

사진속일상 2020.09.11

태풍 지난 하늘

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하늘 좋고 바람 서늘해 경안천에 나갔다. 해는 숨바꼭질하듯 구름 뒤로 들락날락하는 걷기 좋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하늘 구경만으로도 본전을 뽑는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중이어선지 밖에 나온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구름만 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올여름은 8월 중순까지도 장마 속에 갇혀 있었으니 더위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갔다. 유별난 2020년인데 올가을은 어떤 걸 선물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요즘 같으면 나라나 개인이나 그저 별 탈 없기를 바랄 뿐이다. 경안천에서는 아내, 손주와 차례로 합류했다. 손주가 유치원에 못 가게 되니 다시 야외에서 손주 얼굴을 보게 된다. 봄보다 마음의 키가 훌쩍 큰 것 같다. 아이들..

사진속일상 2020.09.04

풀어주는 뒷산

나름대로 유유자적을 즐긴다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답답함이 없겠는가. 그럴 때 특효약은 뒷산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어지간한 체증은 뻥 뚫린다. 이만한 소화제가 없다. 코로나가 다시 창궐하면서 일부 종교인들의 행태가 못마땅한데, 부잣집 도련님들의 투정까지 더해졌다. 너무 내 것만 챙기려는 심보가 얄밉다. 20년 전 의약분업을 둘러싼 사태가 재현되는 것 같다. 그때도 명분은 국민 건강이었지만, 투쟁의 실제는 오로지 자기들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었음을 잘 안다. 못된 정치인처럼 제발 국민 좀 팔아먹지 말기 바란다. 산에서 비를 만났다. 우산을 쓰고 산길을 걷는 것도 재미있다. 며칠 전 지나간 태풍으로 길에는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닭의장풀, 꽃며느리밥풀 등 여름꽃이 눈에 띄지만 오늘은 풀잎에 맺힌 빗방울..

사진속일상 2020.08.29

설봉산 걷기

이천에 있는 설봉산(雪峯山, 394m)을 걸었다. 야트막한 산이라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 둘레길처럼 편하다. 그래도 지치는 것은 뜨거운 여름 날씨 탓이 크다. 능선에만 올라서면 길은 아주 순하다. 더구나 길은 나무가 감싸고 있어 주로 그늘 속을 걷는다. 8년 전에 왔을 때는 반 바퀴만 돌았는데 오늘은 완전히 한 바퀴를 돌기로 한다. 설봉공원 주차장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걷는다면 제일 먼저 호암약수를 만난다. 그런데 약수를 받는 용기가 집 화장실에서 보는 것이다. 이런 것도 발상의 전환인가? 실용면에서는 최고이긴 하지만... 설봉산에는 삼국시대 때 만든 설봉산성이 있다. 산성의 둘레는 약 1km이고 화강암으로 바른층 쌓기를 하였다. 여기는 높은 산이 없어서 이곳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군사 요충지였을 법하..

사진속일상 2020.08.24

장마 지난 뒤

길었던 장마가 끝난지 닷새가 지났다. 장마 막바지에 많은 비가 와서 경안천에도 홍수주의보가 내렸다. 경안천에 나가봤더니 홍수가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천변 공원은 발을 딛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 정상 상태로 회복하자면 많은 공이 들어야 할 것 같다. 큰물에 떠내려간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가서 모이는 걸까? 나일강이 범람하면 비옥한 땅을 선물한다지만 여기는 악취만 진동한다. 옛 자리에 잘못 들어섰다가 훌쩍 미끄러질 뻔 했다. 그래도 멀리 눈을 돌리면 초록의 숲이 반짝이고, 홀로 개울가를 찾은 백로는 세상 태평한 듯 서성거린다. 다리 위에 앉아 빵부스러기를 던져주는 한 청년 밑에는 팔뚝 만한 잉어들이 서로 먹이를 다투느라 요란하다. 돌아갈 때 봐도 이 청년은 같은 자리에 하염없이 앉아 잉어와 놀고..

사진속일상 2020.08.22

반짝 뒷산

장마 꼬리가 길다. 다음 주까지 비 예보가 나와 있으니, 잘 하면 장마 종료일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장마가 가장 늦게 끝난 때는 1987년의 8월 10일이었다. 오후에 반짝, 하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부리나케 배낭을 메고 뒷산에 올랐다. 많이 게을러졌지만 이만한 의욕이라도 남아 있으니 다행이 아니겠는가. 한밤중에 요란하게 비가 지나갔는가 보다. 산길에도 빗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 있다. 목현천은 흙탕물이다. 하천 옆 길은 아직 통제할 정도는 아니다. 앞에 걸어가는 80대 노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입성으로 봐서 교양 있고 세련된 분들 같다. 씩씩한 할머니는 여행용 가방을 밀면서 앞서고, 할아버지가 뒤따른다. 두 분 간격이 자꾸 벌어진다. 젊었을 때 모습과 반대로 되었다..

사진속일상 2020.08.06

장마 사이 뒷산 한 바퀴

장마 사이에 푸른 하늘이 열렸다. 망설임 없이 배낭을 꺼내서 뒷산으로 나갔다. 요사이는 바깥 걸음이 많이 부족하다. 자꾸 게을러지는 걸 코로나 탓으로 돌리지만, 내심에는 좀 게으르게 산들 어떠랴 싶은 마음도 있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보라고, 코로나가 강요하는 이때가 아니면 언제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 그저께 비바람이 심하게 친 탓인지 산길에는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산 정상에 정자가 새로 생겼다. 전에는 돌무더기가 있던 자리다. 뒷산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바위 중 하나다. 뒷산과 접해 있는 마을은 텃밭에 둘러싸여 있다. 집도 4층으로 된 연립주택 형태다. 그리고 집 밖을 나오면 흙을 밟을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의 중간 지대쯤 된다. 시멘트로 덮인 동네와는 공기의 내음부터 ..

사진속일상 2020.07.26

동네 한 바퀴(7/7)

구름이 낄 때를 기다려 동네 한 바퀴에 나섰다. 산이라면 몰라도 햇볕이 쨍한 날의 동네길 걷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고등학교 동기들은 요사이 하루 만 보 걷기가 유행이다. 결과를 모아 가을에 시상을 한다고 한다. 방에 들어가 보면 각자가 올린 하루에 걸은 통계가 가득하다. 많이 움직이는 사람은 하루에 3만 보 이상씩 걷고 있다. 과유불급이 아닐까, 내가 괜히 걱정된다. 나는 사흘에 한 번 정도 바깥출입을 할 뿐이니 감히 도전을 못하고 있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이웃 마을로 넘어간다. 걷는 길 주변은 텃밭과 주택이 혼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조각만한 땅이라도 알뜰살뜰 뭔가를 심는다. 어느 집 마당에서는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오수를 즐기고 있다. 장마철이지만 큰비가 아직 오시지 않아 목현천은 개울물 정도로 졸..

사진속일상 2020.07.08

7월 뒷산

여름에는 뒷산을 거의 가지 않는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모기를 비롯한 날벌레 때문이다. 이놈들은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덤벼든다. 산길을 걷는 건지, 이놈들과 싸움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너무 성가셔서 아예 여름산은 가지 않는다.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을 할 때 사용했던 얼굴 방충망을 꺼냈다. 밀포드의 샌드플라이 공격은 악명이 높다. 좀 불편하더라도 이걸 덮어쓰고 뒷산에 올랐다. 성가신 날벌레는 물리칠 수 있는데 대신 시야가 흐리고 답답하다. 그래도 쓰는 편이 훨씬 낫다. 살아가면서 귀찮게 하거나 성가시게 하는 근심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름 날벌레쯤이야 산에 가지 않으면 된다. 얼굴 방충망이나 해충 기피제도 있다. 그러나 인생사에서는 내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

사진속일상 2020.07.03

경안천에 나가다

석 달 만에 경안천에 나갔다. 코로나 이후로 몸을 움직이는 활동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걷기를 목적으로 하는 바깥출입은 코로나 이전의 1/3쯤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몸무게는 별 변화가 없는 게 신기하다. 덜 걷는 대신 식사량도 그만큼 감소한 탓이 아닐까. 인간은 어쨌든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기 마련이다. 밖에 나오면 열심히 걷기보다 카메라를 들고 이것저것 찍어보는 게 취미다. 사라져가는 존재의 애틋함에 멍하니 바라볼 때가 가끔 있다. 풀, 달팽이, 구름이기도 하고, 넓은 풍경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이들과의 작은 눈맞춤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스쳐지나갈 것을 한 번 더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사진 찍기가 아닐까. 천변 산책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산하다. 사람이 들어간 풍경을 찍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사진속일상 2020.06.26

서울숲-남산길을 걷다

나갈까 말까 망설였다. 수도권에서는 코로나가 확산 중이라 모임을 자제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이 모임은 지난번에 취소되어서 넉 달 만에 만나는 거였다. 야외 걷기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경떠회 여섯 명이 모였다. 가볍게 생각하고 작은 숄더백만 하나 걸쳤다. 이 여름에 물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남과 물통을 공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갈증을 오래 참아야 했다. 구름이 껴 햇빛을 막아주었지만 습도가 높아 쉬이 지치는 날이었다. 서울숲-남산길은 성수동 서울숲과 남산을 연결하는 길이다. 서울숲, 응봉산, 대현산, 금호산, 매봉산을 넘어 남산까지 연결된다. 우리는 옥수역에서 만나 응봉산에 올랐다. 응봉산은 봄 개나리로 유명하다. 꼭대기..

사진속일상 2020.06.13

칠사산 트레킹

요 며칠 기상이 사나웠다. 어제 수도권에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늦은 눈이 내렸다. 113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바람 불고 황사도 몰려왔다. 봄 날씨가 원래 이렇게 어수선하다. 닷새만에 집을 나섰다. 아직 바람이 잦아지지는 않았지만 황사는 지나갔다. 칠사산 트레킹은 천변과 산을 함께 걷는 길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내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칠사산 입구까지는 경안천을 따라 가는 약 6km의 천변 길이다. 그동안에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다섯 개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 첫 번째 징검다리 ▽ 두 번째 징검다리 메타세콰이어 숲 길을 지난다. 날씨 탓인지 오늘 천변에는 사람이 적다. ▽ 세 번째 징검다리 ▽ 네 번째 징검다리 네 번째 징검다리를 지나면 폭신한 흙길이 나온다. ▽ 다섯 번째 징검다리 천변..

사진속일상 2020.04.23

봄비 내린 뒷산

요란하긴 했으나 반가운 봄비가 내렸다. 공기가 맑아지고 산길의 먼지도 잠잠해졌다. 아내와 함께 봄물 든 뒷산을 찾았다. 진달래 진 자리에 철쭉이 피었다. 뒷산 철쭉은 색깔이 은은해서 좋다. 산이 보여주는 춘색(春色). 지난번에 이어 뒷산을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두 시간 반에 1만 3천 걸음수가 찍혔다. 이 정도면 노인네 하루 운동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다만 게을러서 쉬이 나서지 못할 뿐....

사진속일상 2020.04.18

봄내길 2코스를 걷다

코로나19로 멀리 나가는 걸 자제하다가 두 달만에 동네 밖으로 나갔다. 강촌에 있는 봄내길 2코스를 걷기 위해서였다. '봄내길'이라는 이름이 왠지 이 봄과 어울릴 것 같아 선택한 길이었다. 아내와 함께 손주가 동행했다. 봄내길은 춘천 지역의 트레킹 길이다. 전부 일곱 개 코스가 있다. 이번에 걸은 2코스는 별칭이 '물깨말구구리길'이다. 안내판 설명에 나온 대로 '물깨말'은 '물가 마을'이란 뜻이고, '구구리'는 '골 깊은 아홉 굽이를 돌아드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물깨말과 구구리를 거치는 길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구곡폭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반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임도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을 길게 올라야 한다. 봄내길 2코스는 전체 길이가 7.2km이고, 소요 시간이 두 시간 반으로 나와..

사진속일상 2020.04.14

손주와 남한산성에서 놀다

손주를 데리고 남한산성에 갔다. 산성마을에 주차하고 현절사를 지나는 산길에 들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처음에는 무척 차가운 날씨였다. 아이들은 시력이 엄청 좋다. 어른 눈에는 띄지 않는 것을 무척 잘 잡아낸다. 또한, 움직이는 것에도 매우 예민하다. 슈퍼 레이더이다. 아이 눈에는 길을 걸으며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한가 보다. 나는 사소한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아이를 신기해 한다. 손주는 다른 아이에 비해 자연물에 호기심이 많다. 동네 놀이터에서도 화단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이든 움직이는 걸 찾아내고 놀려고 한다. 아이들이 '개미 박사'라고 불러줄 정도다. 식물에 대한 관심도 많다. 이번 산길에서도 새로운 꽃 이름을 여러 개 알려 주었다. 할머니와 손 잡고 성곽길을 걷는다. 이만큼 컸으니 이젠 어디든 ..

사진속일상 2020.04.09

만만한 뒷산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니 만만한 게 뒷산이다. 뒷산을 찾는 빈도가 두 배는 늘었다. 그 또한 좋은 일이다. 만화방창한 봄이 집 주변이라고 비껴갈 리 없다. 코로나19로 지구가 조용해지고 깨끗해졌다는 보도가 연신 나온다. 인간 활동이 주춤해진 결과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산스럽게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여행' 대신에 '소풍'이라는 말이 되살아날까. 탐욕을 좀 덜어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코로나19 전과 후로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말하는데, 과연 어떻게 변한다는 의미일까. 국가간 연대나 차별을 넘어선 인류의 통합이라는 가치가 살아날 것인가. 위기는 기회가 된다지만 IMF나 금융 위기를 겪고 나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방향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코로나로 잠깐 멈칫하겠지..

사진속일상 2020.04.07

뒷산 진달래(2020)

뒷산에 진달래가 만개했다. 진달래를 보니 산과 들판으로 천방지축 뛰놀던 유년 시절이 생각난다. 집에서 보면 뒷산은 봄이면 진달래로 발갛게 물들었다. 소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진달래가 많은 민둥산이었다. 뛰놀다가 출출해지면 꽃잎을 따먹었다. 소나무에 물기가 돌면 가지를 꺾어 속살을 씹어먹기도 했다. 그런 것이 군것질거리가 된 어린 시절이었다. 그때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했다. 철쭉이 진달래였다. 훗날 서울에 와서야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고치는 데 한참 걸렸다. 뇌리에 새겨진 각인이 깊은지 진달래보다는 참꽃이라고 해야 유년의 봄이 쉽게 다가온다. 참꽃 뒤에서 옛 동무가 까꿍, 하면서 뛰쳐나올 것만 같은 산길이었다.

꽃들의향기 2020.03.27

초봄의 경안천 걷기

겨울옷은 두껍고 봄옷은 얇다. 햇살이 비치면 따스하다가 바람이 찬 기운을 몰고 휙 지나가면 몸이 움츠러든다. 겨울이 지나갔지만 아직 봄이 완전히 오지는 않은, 지금이 그런 때다. 경안천을 따라 난설헌 묘까지 가려고 길을 나섰다. 묘는 걸어서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천변을 따라 걷는 길이 좋은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도로에 올라서 보니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보도가 없어 위험해 포기했다. 다른 접근로를 알아봐야겠다. 천변에 긴 띠 모양의 생태연못이 있다. 수초를 이용해 동네에서 나오는 물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은 좋은데, 처리 용량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경안천은 도시 하천에 비하면 인공의 느낌이 덜 하다. 자연스런 모습이..

사진속일상 2020.03.19

물빛공원 세 바퀴

코로나19가 준 선물이 있다. 아내와 함께 걷기를 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실내에서 만나는 강좌나 모임이 취소되니 어쨌거나 둘이 놀 수밖에 없다. 집 가까이 있는 물빛공원을 세 바퀴 돌다. 물빛공원은 홍중저수지 주변에 산책로를 만들고 간단한 시설을 들인 공원이다. 한 바퀴 돌면 2km다. 세 바퀴 돌면 6km를 걸은 셈이고, 시간으로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그 정도가 딱 알맞다. 어느새 산수유 꽃봉오리도 피어났다. 이쯤 되면 남도에는 꽃잔치가 벌어졌을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보도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와중에 꽃구경은 엄두를 낼 수 없다. 가능하면 집안에서 지내는 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다. 공원 길은 평시보다 사람이 많다. 활동 부족을 집 가까운 데서 걷기로 만회하려는 것 같다. 그..

사진속일상 2020.03.03

연이틀 걷다

코로나19로 떠들썩하지만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바깥출입이 드문 방콕형이라 평소대로 지내는 게 격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는 생활 패턴이 확 바뀌었다. 배우러 다니는 강좌들이 닫히고, 집안에서만 버텨야 한다. 요사이는 답답해하는 아내 들러리로 같이 바깥나들이를 한다. 덕분에 연이틀 걷기를 했다. 공기가 깨끗하고 날씨가 좋은 탓도 있었다. 어제는 물안개공원을 걸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으나 공원이 워낙 넓어서 안에 들어가니 인적이 드물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사람들은 되도록 타인과 접촉을 피하려 한다. 북적이는 곳보다는 이런 한적한 장소가 인기다. 공원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단체는 없고 전부가 두셋 정도의 가족끼리다. 우리도 그동안은 따로따로 노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진속일상 2020.02.27

손주와 오르는 뒷산

뒷산에 가고 싶다고 손주한테서 연락이 왔다. 손주와 함께 뒷산에 오를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먼저 요청을 하니 잘된 일이었다. 아내도 따라나섰다. 뒷산조차 겁내던 아내는 손주의 에너지를 빌려 얼떨결에 정상까지 다녀왔다. 할머니에게 손주는 힘이 세다. 아이는 산길에서도 분주하다. 이것저것 만지고, 낙엽을 발로 긁고, 무슨 나무냐고 묻고,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딸이었던 내 자식을 키울 때와는 딴판이다. 딸은 너무 수동적이고 얌전해서 걱정했었는데, 이 녀석은 천방지축이다. 생명의 활기를 보며 감탄하다가도 뭔가 숙연해지며 먼 하늘을 쳐다 보게 된다. 보통 때 평일이면 두세 시간 산길에서 겨우 한두 사람 만나는 정도다. 그런데 이날은 10여 명을 만났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붐비는 바깥 대신 인적 드문 뒷산..

사진속일상 2020.02.25

입춘 지난 뒷산

입춘 즈음에 반짝추위가 찾아오더니 다시 포근해졌다. 이제부터는 양(陽)의 기운이 흥하면서 뭇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며 겨울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햇볕 좋은 날, 뒷산에 올랐다. 주로 집에 있다 보니 햇볕 쬐는 시간이 부족하다. 양지 바른 쉼터에서 태양을 향해 앉아 햇빛바라기를 하다. 얼굴에 닿은 햇살과 그 햇살을 그리워한 피부가 서로 희롱하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걸을 때도 파란 겨울 하늘이 좋아 자꾸 고개를 들다. 산등성이 낙엽 가운데 어딘가에 샛노란 복수초가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만 같다. 한 달 전부터 잎눈을 낸 진달래는 그다지 진도가 안 나갔다. 너무 성급했던 걸까, 봄을 기다리는 대기시간이 길다. 우리 동네 양지 바른 비탈에도 개불알풀꽃이 피었다. 사람들 얘기로는 꽃을 본 지 한참 되었다 한다. 확..

사진속일상 2020.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