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 추위가 찾아왔다. 낮 기온도 영하 5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쌀쌀하다. 하지만 바람 없고 햇빛 쨍한 날이라 중무장을 하고 밖에 나섰다. 올해 들어 첫 외출이면서 첫 뒷산이다.
부지런히 걷다 보면 땀이 배다가 잠깐 머뭇거리면 싸늘해져 다시 모자를 푹 눌러 쓴다. 겨울 산길 위로 나무 그림자가 열을 맞춰 가지런하다. 정상 아래 나의 쉼터는 남향으로 양지바른 곳이다. 오래 앉아 있어도 추위를 잊을 정도로 따스하다. 심리적으로 느끼는 포근함이 더해진다. 한 번 앉으면 일어서기가 싫다.
코로나 탓인지 산길 옆에 있는 골프장은 적막강산이다. 처음으로 필드에 들어가 본다. 골프 선수나 되는 듯 가상의 공을 향해 빈 팔을 휘두른다. 와- 하는 갤러리의 환성이 들리는 것 같다.
현직에 있을 때 수능 검토위원으로 한 달간 갇혀 지낸 적이 있었다. 숙소는 골프장에 딸린 리조트였는데 밀폐된 방에서 바로 골프장이 내려다보였다. 수능 검토위원은 며칠만 반짝 바쁘면 나머지 기간은 시간이 남아돌았다. 리조트 안에서 할 일도 별로 없었으니 창가에 앉아 골프 치는 구경을 많이 했다. 그때 특별히 눈에 들어온 대상이 캐디였다. 캐디가 엄청 바쁜 직업인 걸 확인하고, 그녀들의 몸짓을 안쓰럽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공을 치면 잔디가 패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패인 자리를 흙으로 메우는 것도 그녀들의 일이었다. 캐디 허리춤에 달린 하얀 흙주머니가 종종걸음칠 때마다 달랑거렸다.
군대 있을 때 테니스 치는 장교들의 볼 보이를 한 적이 있었다. 볼 보이는 유명 테니스 대회에서나 봤지 장교들이 친선 시합할 때도 필요한지는 상상을 못 했다. 입대하기 전에 테니스를 즐겼는데 군대에서는 볼 보이를 해야 하는 신세가 겹쳐 기분이 묘하고 화도 났다. 제가 친 공은 제가 주워서 노는 게 정상이지, 공 치는 사람 따로 있고 공 주워주는 사람 따로 있을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골프장 캐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으리라고 짐작은 하지만.
골프는 배울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운동에는 관심이 많지만 이상하게 골프는 거부감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돈이 많이 든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어쨌든 이번 뒷산길에서는 난생처음으로 골프장 필드에 서 봤다. 그것도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간 도둑처럼 조심스럽게. 누군가 날 쳐다보는 것 같고 갑자기 불호령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금방 도망치듯 나오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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