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78

여름 오는 길

6월이면 여름이 시작되는 달이다. 그 첫날에 뒷산길을 걷다. 이맘 때 숲은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진다. 동네 뒷산인데 깊은 산 속에 온 듯하다. 숲에는 온갖 움직이는 생명들이 모여들고, 그들의 수선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제일 선명하게 들리는 것은 역시 검은등뻐꾸기의 지저귐이다. '홀딱벗고' 새라고 해야 더 알아듣기 쉽겠지. 새 소리를 들으며 재미있는 시 한 편을 꺼내 읽어본다. 복효근 시인의 '검은등뻐꾸기의 전언'이라는 시다. 5월 봄밤에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그 놈은 어쩌자고 울음소리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그렇습니다 다투고는 며칠 말도 않고 지내다가 반쯤은 미안하기도 하고 반쯤은 의무감에서 남편의 위상이나 찾겠다고 처지기 시작하는 아내의 가슴께는 건드려보지도 않고 윗도리는 벗지도 않은 채 마악 아내에게..

사진속일상 2019.06.01

곰배령과 불바라기약수

점봉산 일대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점봉산은 2026년까지 출입 통제이고, 곰배령도 하루 입장 인원을 450명으로 제한한다. 미리 예약하는 것이 필수다. 곰배령의 별칭이 '천상의 화원'이다. 여름 꽃밭이 유명하지만 사계절 어느 때나 야생화를 한껏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이번에 트레커 팀과 1박2일에 걸쳐 곰배령, 불바라기약수를 둘러보았다. 5월 중순이라 들꽃에는 어중간한 시기지만 역시 곰배령은 이름값을 했다. 얼레지를 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곰배령은 수도권 산보다 한 달 이상 계절이 늦다. 쥐오줌풀 참꽃마리 병꽃나무 졸방제비꽃 벌깨덩굴 미나리아재비 개별꽃 미나리냉이 피나물 현호색 줄딸기 홀아비바람꽃. 정상부에는 홀아비바람꽃 군락이 대단했다. 회리바람꽃 양지꽃 동의나물..

사진속일상 2019.05.19

봄 물드는 뒷산

산벚꽃 사이로 봄 산은 연초록 새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매년 맞이하지만 봄은 늘 새롭고 경이롭다. 올해의 봄은 작년의 봄과 다르다. 같은 색깔,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우리가 봄을 보는 눈은 같지 않다. 봄과 봄 사이의 인간사 사연들이 투영된 마음의 프리즘으로 우리는 봄을 맞이한다. '절망의 의지'를 너무 들여다보지 말고, 지상이 표상하는 생명의 약동에 한눈팔아도 괜찮은 봄이다. 잘려나간 나무줄기에서도 생명은 돋아난다. 멀리 산골 동네서 개 짖는 소리도 포근하다. 연초록 새잎이 꽃보다 더 예쁘다. 봄 물드는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사진속일상 2019.04.21

바다부채길을 걷다

강릉에 다시 간 목적은 꽃 핀 율곡매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때를 못 맞췄다. 율곡매 매화는 이미 졌다. 강릉은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데도 꽃이 피는 시기는 빠르다. 목련은 지고, 벚꽃은 개화를 시작했다. 아쉬움을 접고 정동진으로 가서 아내와 바다부채길을 걸었다. 이 길의 공식 명칭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다. 정동진과 심곡항을 연결하는 탐방로인데, 그동안 해안 경비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다. 이곳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 '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이 선정되었다. 바다부채길 길이는 2.9km다.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남쪽 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안단구 지형을 볼 수 있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신생대 3기 말인 23..

사진속일상 2019.03.26

봄 맞는 뒷산

어제는 한 시간 정도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지붕과 산이 하얀 옷을 입었다가 금방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오늘 산길은 촉촉하게 젖어 걷기에 좋았다. 남쪽 지방은 벚꽃이 한창이지만 여기는 이제 봄기운이 도착했다. 진달래가 꽃봉오리를 맺은 채 따스한 햇볕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며칠 뒤면 활짝 필 것이다. 뒷산에는 생강나무꽃이 한창이다. 지금부터 폭죽 터지듯 봄꽃의 향연이 펼쳐지리라. 올해는 개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빠르다. 각 지방의 꽃 축제도 예년보다 앞당겨지는가 보다. 뒷산 꼭대기에 이를 때쯤 조그만 쉼터가 나온다. 대여섯 사람이 앉을 만한 평지다. 남향이어서 햇살 따스하고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어 포근하다. 나무를 가로로 걸쳐놓은 의자가 있고, 작은 탁자도 있다. 항상 쉬어가는 곳인데 워낙 사..

사진속일상 2019.03.24

누비길: 복정역~옛골

성남 누비길 마지막 7구간을 걸었다. 이로써 내 임무는 끝났다. 그동안 근교 산길과 서울 둘레길, 한양 도성길, 성남 누비길을 안내하며 10년 가까이 용두회의 대장 노릇을 했다. 후임에게 넘겨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누비길 7구간은 복정역과 청계산 옛골을 연결하는 약 10km 길이다. 중간에 인릉산(326m)을 지난다. 겨울을 보내고 오랜만에 걷는 걸음이라 이만한 높이에도 숨이 찼다. 더구나 이런저런 사유는 여럿이 빠지고 둘만 함께 했다. 아침에는 돌풍이 불며 눈까지 휘날렸다. 대신 바람이 미세먼지를 쫓아내서 공기는 깨끗해졌다. 전날 나경원 의원이 국회에서 대표 연설을 하며 문 대통령을 '김정은의 대변인'이라고 발언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아침 단톡방에는 그게 화제였다. 다들 칠십에 가까운 노털이니 ..

사진속일상 2019.03.14

경안천 작은 한 바퀴

기해년 설을 지내고 경안천에 걸으러 나가다. 몸속 위장을 운동시켜 주기 위해서다. 뱃속 전쟁이 멈출 기미가 없다. 보급을 끊기 위해 술은 물론이고 커피도 금하고 있다. 두 주째다. 마음대로 먹지를 못하니 몸무게도 61kg대로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된 셈이다. 싸늘하나 공기가 깨끗해 기분 좋은 날이다. 미세먼지 '좋음' 상태가 반갑다. 찬 바람이 불어줘야 미세먼지가 걷힌다. 그래서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니 통탄할 세상이다. 경안천 주차장에서 돌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데 두 시간이 약간 더 걸린다. 작은 한 바퀴다. 더 멀리 나가는 코스는 세 시간이 넘게 걸린다. 전에는 긴 코스를 주로 다녔는데 요사이는 주로 작은 한 바퀴를 돈다. 이것도 세월이 쌓여가..

사진속일상 2019.02.08

트레커와 남한산성 만남

서울 마천역에서 등산을 시작한 트레커 팀과 남한산성 북문에서 만났다. 함께 성곽길을 일주할 생각이었는데 팀이 중간에서 접는 바람에 짧은 걸음이 되었다. 예상보다 날이 차가워 오들오들 떤 탓인가, 산길 걸은 뒤 몸살이 찾아왔다. 기침이 나고 몸이 새큼거려서 오늘은 하루 내내 누워 지냈다. 주제 파악 못 하고 까불면 탈이 생긴다. 2년간 트레커 팀과는 소원하게 지냈다. 올해부터는 여건이 되면 가능한 참석하려 한다. 트레커는 같이 만났을 때 그나마 마음이 편한 멤버들이다. 올해 첫 산행에 열두 명이 참석했다. 한 명의 신입회원도 있었다. '오복두부집'에서 점심을 하고, 다시 짧은 산책 후 '반월'에서 단팥죽을 맛보았다.

사진속일상 2019.01.06

새해 첫 뒷산

2019년 첫걸음으로 뒷산에 오르다. 뒷산은 항상 그 자리에서 어느 때나 나를 포근히 품어준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사박사박 걸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이 상쾌해진다. 몸이 개운해지는 건 물론이다. 우주의 기운을 담뿍 받는 것 같다. 한없이 주기만 하는 고마운 뒷산이다. 겨울 산길은 말한다. 붙잡아두지 말고 훌훌 털어내어라. 애착이 없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알지만 안 되는 걸요. 인생이 산길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놈아, 알면서 행하지 않으니 어리석다 하는 거야. 씩씩거리며 앞으로 나가지만 말고 나무를 오르내리는 저 다람쥐를 잘 보려무나. 2011년에 이곳으로 왔으니 어느덧 8년째에 접어든다. 5년 정도 살아보고 더 시골로 들어갈 요량이었는데, 이젠 거의 붙박이가 되어간다..

사진속일상 2019.01.03

경안천 새길

초겨울이 되면 계절병을 앓는다. 소화기관이 차가워진 기온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몸에서는 위와 장이 제일 약하다. 여름에 에어컨 바람을 쐬어도 배가 바로 반응한다. 그러니 겨울의 찬 공기는 상극이다. 거기에다 활동량이 줄어드니 위와 장 기능이 더 떨어진다.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하니 속은 늘 부글부글 끓는다. 마치 사보타지를 하는 것 같다. 두 주일째 죽이나 누룽지로 속을 달래고 있다. 이제 한고비는 지나갔다. 어제부터는 조심스레 정상적인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있다. 위장도 환경에 맞추어야지 별수 있겠는가. 내가 도와줄 것은 걷기밖에 없다. 게을러진 몸을 일으켜 세운다. 가까운 경안천에 나간다. 몇 달 전에 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놓여서 쉬이 건너편으로 갈 수 있다. 이젠 통상적인 산책로의..

사진속일상 2018.12.18

소금산의 가을

출렁다리로 뜨고 있는 소금산을 찾았다. 간현관광지에 주차를 하고 들어갔는데 깔끔하게 단장된 주변 시설이 인상적이었다. 평일 아침 10시경인데도 주차장은 거의 차들로 찼고, 구경 온 사람들 행렬은 연이었다. 출렁다리 하나로 면모가 일신되었다. 처제 부부가 동행했다. 우리는 등산을 겸했음으로 출렁다리 입구를 지나 삼산천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삼산다리를 지나면 가파른 절벽을 철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마지막 부분은 경사가 거의 90도에 가깝다. 내려갈 때는 아찔할 것 같다. 이래서 소금산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게 좋다. 소금산(小金山)은 해발 343m로 나즈막하다. 가파른 철계단만 견뎌내면 능선길은 부드럽고 쉽다. 정상에서 20분 정도 걸어내려가면 출렁다리를 만난다. 출렁다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간현관..

사진속일상 2018.10.22

수렴동계곡 단풍

11월 15일 현재 내설악 단풍은 수렴동대피소와 영시암까지 내려왔다. 백담사 부근은 이번 주말이 되어야 만산홍엽이 될 것 같다. 단풍 구경하러 아내와 수렴동계곡에 다녀왔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주로 걸어 왕복했는데 지금은 시멘트로 포장한 길에다 버스마저 자주 다녀 걷기에는 불편하다. 수월하게 오가는 대신 아까운 계곡 하나를 잃은 느낌이다. 백담사 앞 계곡의 돌탑은 자연에 펼쳐진 만다라 그림 같다. 본격적인 산길 걷기다. 설악산 산길 중에서 이곳 수렴동계곡 길이 걷기에 제일 평탄하지 않나 싶다. 수렴동대피소까지 두 시간여 동안 거의 이런 길이 계속된다. 또한 북적대지 않아서 좋다. 수렴동계곡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작년에 간 천불동계곡과 비교하면 빼어난..

사진속일상 2018.10.16

누비길: 태재~오리역

용두회 누비길 걷기 여섯 번째로 태재에서 오리역까지 걸었다. 누비길 4구간에 해당하는 코스다. 태재고개에서 형제봉, 불곡산, 부천당고개, 위남에고개, 구미동을 경유하는 길이다. 거리는 8km이고, 네 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길이 평탄해서 세 시간이 걸렸다. 누비길 전 구간 중 가장 걷기 편한 길인 것 같다. 용두회원 다섯 명이 함께 했다. 불곡산 아래 사는 친구가 있어 안내를 맡았다. 산불 감시 초소 전망대에서는 분당이 내려다보였는데, 깔끔한 전원도시라는 느낌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스갯소리로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한다. 잘 다듬어진 환경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때깔부터 다르다. 잘난 동네에 들어가면 왠지 주눅이 들고 루저가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일종의 자격지심인지 모른다. 하산해서는 오리역 주변에서 통상..

사진속일상 2018.10.09

누비길: 영장산~태재고개

두 달을 쉰 뒤 누비길 걷기를 재개했다. 영장산에서 태재고개까지 3구간 후반부 코스였다. 서현역에서 여섯 명이 만나 버스로 새마을연수원까지 이동한 후 산길로 들어섰다. 영장산 능선을 따라 걷다가 어느 지점부턴가 잘못 되었다.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것이다. 외길이라 생각하고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던 불찰이었다.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 덕분에 새로 택지를 조성하는 신현리 동네를 구경할 수 있었다. 요사이 날씨는 참 좋다. 이런 공기와 하늘이라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하다. 하늘에는 여름 뭉게구름 대신 전형적인 가을 구름이 펼쳐졌다. 하늘 호수로 풍덩 빨려들 것만 같은 날이었다. 엉뚱한 길일망정 세 시간 정도 걸었다. 8km 가량 될 듯하다. 아무 길이면 어떻겠는가. 함께 이 길을 걸었다는 ..

사진속일상 2018.09.11

작은 걸음

지난 7, 8월 두 달은 거의 걷기를 하지 못했다. 날씨 핑계를 댔지만 실은 게으르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걷지 않으니 몸은 무거워지고,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기는 더욱 힘들었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됐다. 8월 중순부터는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9월 들어서는 일부러 바깥 걸음을 하고 있다. 집 주위일지라도 하루에 한 번은 나가려 한다. 뒷산이나 경안천변, 또는 학교 운동장이 주로 찾는 장소다. 한두 시간으로 족한 작은 걸음이다. 아직 햇볕은 따갑지만 바람은 선선해졌다. 걷기는 보약이다. 이제 살겠다고, 몸이 고마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냐, 내가 미안했어. 그동안 몸이 약해졌는지 짧은 걸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른해진다.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진속일상 2018.09.10

제부도 제비꼬리길

'제부도'를 발음으로만 유추하면 '제비섬'과 닮았다. 그래선지 섬 북서쪽에 마련된 산책로 이름이 '제비꼬리길'이다. 제부도 전체를 제비 모양으로 본다면 제비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길의 반은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데크길이고, 나머지 반은 탑제산 능선을 따라 걷는다. 탑제산은 해발 66m이니 산이라고 하기에는 면목이 없다. 제비꼬리길은 총 1.9km다. 아내와 바닷바람을 쐬러 나가서 제비꼬리길을 걸었다. 제부항에서 해안길을 따라 탑제산에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 나왔으니 거의 두 바퀴를 돈 셈이다. 한 바퀴만으로는 걸음이 심심해서였다. 제부항에 있는 빨간 등대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다. 던져주는 세우깡을 먹으러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드는 곳이다. 해안을 따라 데크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걷기가 아주 편하..

사진속일상 2018.09.07

태풍은 지나가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맞았던 태풍인데 의외로 얌전히 지나갔다. '솔릭'은 8년 만에 한반도를 통과한 태풍이었다. 태풍의 기세가 뜨거운 기단을 밀어내줬으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것 같다. 오랜만에 배낭을 메고 뒷산에 올랐다. 걷기 목적으로는 두 달 만의 바깥 걸음이다. 습도 높은 숲은 눅눅했으나 바람은 서늘했다. 벤치에 누워 쳐다보는 초록 나무들이 시원했다.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데 세 시간쯤 걸렸다.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간다.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간다. 가을바람이 불면 의욕이 살아날려나....

사진속일상 2018.08.25

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

최근에 지인이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고 왔다.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km를 40일 동안 걸은 대장정이었다. 산티아고 길은 10년 전만 해도 내 버킷 리스트 순위 3번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지인이 다녀온 얘기를 들으니 불씨가 다시 살아난다. 는 내 바람과 같은 제목의 책으로, 일본 여성 오노 미유키가 산티아고를 걸은 이야기다. 그녀는 공황장애를 앓을 정도로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산티아고 길을 찾았다. 부제가 '먹고 마시며 걷는 36일간의 자유'다. 평범한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카미노 데 산티아고만의 매력을 그녀는 일곱 가지로 정리한다. - 숙박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 밥이 맛있고 저렴하다. - 전 세계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관을 접할 수 있다. ..

읽고본느낌 2018.06.26

누비길: 이배재~영장산

용두회의 누비길 걷기 네 번째로 이배재에서 영장산까지 걸었다. 누비길 3구간은 이배재에서 영장산을 거쳐 태재까지 12km 거리인데, 우리는 반으로 나누어 걸었다. 나도 발에 생긴 티눈 때문에 오래 걷지를 못한다. 영장산에서 새마을연수원으로 내려오는 7km 길이였다. 싱가포르에서 북미회담이 열리는 날이었는데 산길에서도 그쪽 소식이 궁금했다. 어찌 됐든 회담이 잘 돼서 전쟁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나라가 되기를 비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통일 전까지는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1국가 2체제가 정착되면 좋겠다. 직접 차를 몰고 북쪽 땅에도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길에 있는 연리지 소나무다. 나이가 어리지만 이 정도로 완벽한 H 형상의 연리지는 드물다. 한 친구는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수도..

사진속일상 2018.06.14

티눈

발에 통증이 감지된 건 서너 해 전이었다. 새끼발가락 부근의 바깥쪽으로 신발과 제일 많이 접촉되는 부위였다. 만지면 딱딱한 게 잡히면서 누르면 아팠다. 많이 걸으니 굳은살이 생기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올해 들어서는 걸을 때 절뚝거릴 정도가 되었다. 견디다 못해 병원에 갔더니 티눈이 세게 생겼다고 한다. 석 달째 냉동치료를 받고 있다. 초기에 손을 봤으면 쉽게 고쳤을 텐데 뿌리가 깊어선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저께는 의사한테 야단을 맞았다. 걷는 걸 조심하지 않으면 치료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쉽게 재발한단다. 사실 티눈을 가볍게 보고 치료 중임에도 전혀 조심하지 않았다. 통증이 가라앉았다고 이산 저산을 쏘다녔다. 쉽게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내 일상의 행복..

길위의단상 2018.05.19

누비길: 남문~이배재

세 번째 누비길 걷기로 남한산성 남문에서 이배재까지 걸었다. 용두회원 다섯 명이 함께 했다. 누비길 2구간은 남문에서 갈마재까지지만 갈마재에서의 교통편이 원활치 못하여 이배재에서 마감했다. 약 6km 길이에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이 구간은 타박타박 걷기 좋은 길이다. 때는 신록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가벼운 걸음인데도 얼굴에는 땀이 밴다. 노동절 휴일이라 산길에서는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 새로 돋아난 주목 잎이 앙증맞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기 피부처럼 보들보들하다. 나무는 올해 저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10시에 남문을 출발해서 12시 30분에 이배재에 도착했다. 이 길은 누비길 중 가장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이배재를 건너는 육교는 작년에 세워졌다. 우리는 여기서 버스를 타고 모란..

사진속일상 2018.05.01

뒷산을 돌다

화창한 일요일에 아내와 함께 뒷산을 걸었다. 대개 꼭대기까지 갔다가 같은 길로 내려오지만 오늘은 한 바퀴 도는 길을 택했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더 걸려서 네 시간 가까이 걸었다. 날씨 탓이 컸다. 그저께 남과 북의 판문점 선언이 있었는데 이틀 밤이 지나도 뉴스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우리 민족의 앞길도 지금의 날씨만큼이나 밝게 열리기를 희망한다. 뒷산 등산로는 지금 공사중이다. 정자가 새로 세워지고 길은 다니기 좋게 정비되고 있다. 울퉁불퉁한 길이 반듯해지니 걷기에는 편해졌다. 앞으로는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평일에 올라가면 산에 있는 두세 시간 동안 한두 사람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자연에 지나치게 손을 대는 것은 반대지만 어느 정도의 편의 시설은 필요할 것 같다. 작년에 불이 ..

사진속일상 2018.04.29

누비길: 산성역~남문

용두회에서 올해는 성남을 한 바퀴 도는 누비길을 걷기로 했다. 누비길은 전체 길이 62km에 일곱 구간으로 되어 있다. 지난달에 복정역에서 소(小) 영장산 줄기를 지나는 1구간 A코스를 걸었고, 이번에 산성역에서 남문까지 이르는 B코스를 걸었다. 원래는 1구간을 한번에 걸어야 했으나, 걷는 도중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두 코스로 나누어졌다. 산성역에서 남문까지는 약 4km 길이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길은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차도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나란히 나 있다. 우리는 남문에서 산성마을로 내려가 두부전골로 점심을 한 뒤에 오후에는 모란역으로 나가 관례대로 당구를 즐겼다. 산길은 벚꽃으로 환했다. 평지의 벚나무는 잎이 나오며 꽃이 진 곳이 많을 텐데 산은 지금이 눈부신 절정이다. 꽃 풍경에..

사진속일상 2018.04.11

경안천변 봄꽃

맑고 미세먼지 걱정 없는 봄날이다. 오늘은 햇볕을 쬐기 위해 밖에 나선다. 겨울잠 자듯 주로 집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응달의 삶이 되었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모자는 벗는다. 피부 세포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마음도 환해진다. 경안천을 따라 세 시간 반 걷다. 오랜만에 타박타박 걷는 재미가 새롭다. 틈틈이 천변에 핀 봄꽃을 구경하다. 버들강아지, 개불알풀, 냉이, 꽃다지, 개나리, 산수유.....

꽃들의향기 2018.03.30

두 달만의 뒷산

올겨울은 바깥나들이가 뜸했다. 추웠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은 게을러진 탓이었다. 날씨 불문하고 바지런하게 쏘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이 계절은 겨울잠 자듯 웅크리고 있는 것도 괜찮다. 군불 뜨듯하게 지피고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책 보며 빈둥거리던 지난 겨울이 그리워진다. 이젠 그럴 고향집도 없어졌다. 뒷산에 올랐다. 지난 걸음 이래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도 뒷산은 부담이 없는 산길이다. 오르막에서도 호흡이 성마르지 않다. 뒷산은 늘 푸근하다. 뒷산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이번 명절은 동생이 귀향하고 나서 맞는 첫 번째 설날이었다. 막내와 조카네가 못 내려와서 두 형제만 단출하게 차례를 올렸다. 정말로 뭣이 중헌디, 다른 무엇보다 형제끼리 우애 있게 지내는 게 먼저일 것이었다. ..

사진속일상 2018.02.18

환한 햇살

축복의 덕담이 넘쳐나는 새해 첫날이다. 이 세상 사람 모두의 기원을 한데 모으면 희망 풍선은 지구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바람이 빠지면 추락은 순식간이라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바람을 하늘로 높이 높이 띄워 보낸다. 경안천에 나갔다. 버렸던 희망도 다시 주워 담고 싶을 만큼 햇살 밝고 환한 날이다. 오늘은 나 같은 시간 불감증 환자도 뭔가 하나의 결심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품는 꿈에 비해 실제 삶은 얼마나 누추하고 어설픈지, 그 괴리를 없애고자 새해의 다짐을 버린 지 오래되었다. 허공에 떠다니는 임자 없는 복을 빌기보다는 지상에 단단히 서는 일이 중요하다. 뻥튀기하지 않고 나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경안천을 따라 두 시간 반을 걸었다. 맑고 흐림에 일희..

사진속일상 2018.01.01

초겨울 뒷산

아침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졌다. 바람이 불지 않고 낮인데도 볼에 닿는 냉기가 시리다. 햇볕을 쬘 겸 뒷산에 올랐다. 잎을 버린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 잘 스며드는 겨울 산길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많은 것 같아도 사실은 가진 게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계절이 겨울이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허전한지 모른다. 때때로 진실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아픔과 쓸쓸함에서 생명에 대한 연대 의식이 생겨나는가 보다. 가만히 겨울나무를 껴안아 준다. 겨울을 지나면서 나무는 단단해진다. 생존과 번식에 충실한 여름 한때였지만, 고독을 견뎌내는 겨울에야 나무는 내적인 성장을 한다. 사람의 생애도 마찬가지다. 시련의 시절을 살아내는 것이 공부다. 공부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따스해진다. 나무도 그렇다는 듯 가지를 살랑살랑..

사진속일상 2017.12.07

초겨울 경안천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섰는데 낮 기온이 올라 느린 걸음에도 땀이 뱄다. 겨울이 되니 산에 갈 마음은 들지 않고, 집 주변의 평탄한 길 걷기가 좋다. 경안천을 따라 두 시간 정도 산보를 했다. 카메라를 바꿔볼까 하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다.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작품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굳이 화질 좋은 카메라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가 나에게 해주는 선물로 어쩌다 이런 사치를 부려도 괜찮으리라. 경안천 억새는 흰 깃털을 날려 보내고 더 가벼워졌다. 천변에 있는 겨울 나목도 눈에 들어왔다. 혼자 걷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 계절에는 좀 더 쓸쓸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진속일상 2017.11.28

아차산길을 걷다

아차산은 동네 뒷산처럼 포근하다. 걸어가도 될 만큼 아차산과 가까운 거리에 산 적이 있었다. 그때의 친근함이 아직 남아있는 탓이기도 하겠다. 아차산에 난 길의 대부분을 걸어 보았다. 그런데 떠나고 나서는 아차산에 올 기회가 적었다. 헤아려보니 4년 만이다. 오전에는 맑았는데 한낮이 되면서 하늘은 구름으로 덮였다. 산 정상 가까이 갔을 때는 눈송이도 보였다. 잠시 날리다 말았지만 올해의 첫눈을 맞았다. 신현팀과 두 번째로 함께 했다. 거의 다 아는 사이라 합류해도 자연스러웠다. 용마산을 넘어 중곡동으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날씨가 궂어져서 긴고랑계곡으로 내려왔다. 시장통 허름한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점심을 했다. 소박한 밥상이라 마음이 풍성했고, 막걸리 석 잔에 배가 불러 세상이 다 내 것이 되었다. 산과 식..

사진속일상 2017.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