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75

하늘 좋은 날에

하늘 좋은 날이었다. 원래는 등산을 계획했지만 맘껏 하늘을 보고 싶어 시야가 넓게 트이는 물안개공원에 갔다. 청화한 초여름이 눈부셨다. 누가 말해줬지~ "비 좀 맞으면 어때. 햇볕에 옷 말리면 되지. 살아가는 게 슬프면 어때. 눈물 좀 흘리면 되지." 살다 보면 활짝 개이기도 하는 것을, 저 하늘처럼. 그때는 다 잊은 듯 껄껄 웃어주면 되는 것을. 넓은 물안개공원은 기이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Que Sera Sera! 공원을 한 바퀴 돌고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든해졌다. 건너편은 두물머리다. 당겨보니 두물머리 느티나무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저쪽은 볼거리 놀거리가 많겠지만 난 심심한 이쪽이 좋다. 근심 걱정은 어디서 오는가? 세상살이가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아무리 선한 바람..

사진속일상 2022.06.07

5월 끝날에 뒷산 한 바퀴

5월 끝날에 뒷산 한 바퀴를 돌았다. 맑고 바람 선선한 날이었다. "좋다!" 산길을 걸을 때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다. 어제저녁에는 남파랑 걷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중학 동기 S,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고 온 지인 G와 통화를 했다. 둘 다 대단한 체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존경스러운 마음에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친구들이다. 지금의 뒷산길에서는 S도 G도 부럽지 않다. 성취감이 없는 자족이 오히려 더 풍요롭다.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가는 숲의 향기를 전해주고, 옆에 찾아온 새가 노래를 불러준다. 내 마음도 봄의 숲만큼 부풀어 오른다. 머리 위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새를 겨우 찾았다. 나무와 같은 보호색이어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찾지 못했을 것이다. 확실하진 않으나..

사진속일상 2022.06.01

경안천 으악새

경안천에 나가면 백로와 왜가리는 꼭 만난다. 왜가리보다는 백로가 두세 배는 더 자주 눈에 띈다. 백로 중에서는 쇠백로가 제일 많다. 백로나 왜가리는 몸집이 큰 데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아 사진 찍기에 좋다. 어제 만난 왜가리는 한참 사진 모델이 되어 주더니 내가 조금씩 접근하자 귀찮다는 듯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라는 유행가가 있다. 여기서 '으악새'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새가 아니라 억새라는 해석이 유력했는데 작사자가 남긴 말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왜가리로 보는 게 통설이다. 작사자인 박영호 씨가 어느 날 뒷산에 올라갔는데 멀리서 "으악 으악" 하는 새 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으악새라고 부르면서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런 소리를 내며 우는 새는 왜가리..

사진속일상 2022.05.31

꽃 향기에 취해도 보고

이맘때 숲에 들면 꽃향기가 가득하다. 벚꽃이나 진달래 꽃잎은 떨어졌지만 향기의 여운은 아직 숲에 배어 있다. 아니면 새싹이 뿜어내는 향기인지 모른다. 나는 궁금해서 새로 돋아난 잎에 코를 바투 대 본다. 순한 뒷산길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이런 길을 걸으면 내 마음도 따라서 순해진다. 세상의 각박한 다툼이 사라지는 길이다. 길가에 있는 돌탑에는 지나갔던 사람의 소박한 염원이 담겨 있다. 사는 게 뭐 별 것 있겠는가. 돋아나는 초록잎, 그 사이로 살랑거리며 스치는 바람,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 자연은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지 않는가. 고개를 들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을 본다. 나무들은 무슨 신호를 보내면서 타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걸까. 숲은 조화의 세계다. 깔개가 있다면 나무 아래 오래 누워..

사진속일상 2022.04.22

뒷산과 시내 야경

며칠간 바람 불고 비 흩뿌리며 봄날이 궂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개였다. 아침을 먹고 상쾌하게 뒷산에 오르다. 식사를 하고 바로 나와선지 오르막 산길에서 몸이 무겁다. 한창 초록색 옷으로 단장 중인 뒷산은 봄 향기로 가득하다. 여기저기에 아직 산벚꽃이 남아 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네요."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코로나 시절이 되면서 산길 인사가 줄어들었는데 오늘은 아니다. 이런 날의 산길 걷기는 마냥 설레고 행복하다. 저녁에는 시내에 나간 길에 S22의 야경 테스트를 해 보았다. S22 카메라의 특장 중 하나가 야경 사진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장면에 따라 노이즈가 눈에 거슬리는 사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ISO가 굉장히 올라가고 셔터 타임이 느려질 텐데 이 정도..

사진속일상 2022.04.16

남한산성 성곽 한 바퀴

남한산성 성곽을 한 바퀴 돌았다. 걷는 겸해서 새로 산 갤럭시 S22U 카메라의 성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다른 카메라 없이 휴대폰만 달랑 들고 걸으니 단출해서 좋았다. 출발은 남한산성 동문이었다. 언제나 쉼터가 되어 준 동장대터였는데 벤치는 모두 철거했다. 집에서 기른 고양이로 보이는데 누군가 버리고 간 걸까,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애절하게 쳐다보며 운다. 산길에서 10배 망원으로 서울과 북한산을 당겨 보았다. 셀카도 찍어 보았다. 이발 안 한지 석 달이 지났고, 수염 안 깎은지도 보름이 넘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남한산성 성곽은 전체 길이가 12km에 이른다. 뱀이 기어가듯 산허리를 따라 꿈틀대며 나아간다. 산 아래 마을은 하남시 춘궁동이다. 북문을 지나면서 대로가 나오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서문 ..

사진속일상 2022.03.28

겨울옷 벗은 강물을 바라보다

요 며칠 동안 감정 소비가 컸다. 지난주에 실시한 대통령 선거 후유증이다. 동기 단톡방에서 논쟁이 일었고, 결국 방에서 나와 버렸다. 더 이상 조롱과 비아냥을 보고 있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문재인 머저리는 노무현처럼 뛰어내리지도 못할 거야." "윤석열 대통령이 좌파 연놈들을 조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통쾌하다." 몇 차례 자제를 부탁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 나라를 공산주의로 몰고가려 한 죄과는 받아야 한단다. 무릎 꿇고 반성부터 하란다. 다른 동기들은 침묵하고 나만 반대 목소리를 내다가 그만 뛰쳐나와 버렸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였다. 원래는 수리산 변산아씨를 만나려 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수난을 겪는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 대신 넓고 유장한 강물이 보고 싶었다. 날..

사진속일상 2022.03.17

봄 맞는 뒷산

산 입구에서부터 박새가 맞아준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겨울철과 달리 맑고 경쾌하다. 산 중턱에서는 어치 네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다가 소리를 지르며 쏜살같이 날아간다. 어치는 깃털의 고운 색깔과 달리 목소리는 억세다. 어치의 지저귐 역시 활기에 차 있다. 산의 봄은 청각과 촉각으로 온다. 살짝 맺힌 땀을 씻어주는 바람의 느낌이 부드럽다. 시나브로 다가오는 봄이 한결 가까워져 있다. 저쪽에서 연치가 높으신 분이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다. 저분에게도 겨우내 간절히 기다린 봄이었을 것이다. 산길에는 사람의 발을 닮은 나무가 있다. 나무도 걷고 싶은 걸까, 꼭 껴안아준다.

사진속일상 2022.03.09

경안천 오포 구간을 걷다

햇볕이 좋아 밖에 나왔더니 낮 기온이 겨우 0도에 걸치는 싸늘한 날씨다. 바람이 약간만 세게 불어도 한기가 느껴진다. 아내와 함께 오포대교를 중심으로 해서 상하류를 오가는 길을 걷다. 경안천 풍경. 이 구간에는 십여 마리의 고니를 언제나 볼 수 있다. 이 가족은 좋은 데 터를 잡은 것 같다. 왜가리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한데 모여서 쉬고 있다. 민물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물닭 강 모래톱 갈대밭에 고라니가 보인다. 이곳 경안천은 주택가에 둘러싸여 있어 산에서 멀다. 얘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는지 불가사의하다. 여기서 사는 걸까, 아니면 인적이 드문 한밤중을 틈타 산으로 왕래를 하는 걸까. 경안천에 나오면 다양한 생명붙이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다들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대로 조화롭게 살아간다. 종마다 자신..

사진속일상 2022.02.23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뛴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뛴다. 탈것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그중에 제일은 역시 비행기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해 보고 싶은 직업 일순위는 여객기 조종사다. 어렸을 때 고향 마을 앞을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운전석에 앉고 싶다는 꿈을 가졌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는 잠시 철도고등학교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그런데 비행기 조종에 대해서는 아예 엄두를 내지 않았다. 지금처럼 비행기가 보편화되고 다양한 조종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면 목표로 했을지 모르겠다. 영종도에 가는 길에 하늘정원에 들러서 비행기 구경을 실컷 했다. 하늘정원에서는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멀리 남쪽에서 한 점으로 나타나서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잠시 뒤면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머리 위를 스쳐 간다. 창에는 ..

사진속일상 2022.02.18

전주 가는 길

이번에 전주 가는 길은 서산과 안면도를 지나는 우회로를 택했다. 두 달 전에 개통한 보령해저터널이 궁금해서였다. 원산도와 대천항을 연결하는 보령해저터널은 길이가 6.9k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해저터널이다. 10년의 공사 기간에 5천 억이 투입되었다. 안면도 영목항과 대천항 사이에는 원산도라는 섬이 있는데, 영목항과 원산도는 교량으로, 원산도와 대천항은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서산을 지나면서 시내에 있는 서산호수공원에 들렀다. 노랑부리저어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이 호수에 찾아왔다는 보도를 봤기 때문이다. 호수공원은 과거에는 농업 용수로 이용되던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호수공원에는 철새 탐조대가 있다. 천연기념물 206-2호인 노랑부리저어새가 날아왔다는 안내..

사진속일상 2022.02.12

햇볕 쬐려 경안천에 나가다

겨울 햇볕은 보약이라 했다. 추위 누그러지고 햇볕 환한 날, 작은 배낭 하나 둘러매고 경안천에 나간다. 마침 오포에 볼 일이 있는 아내를 데려다주고 가까이 있는 오포대교로 나가서 상류 방향으로 걷는다. 집에서 좀 떨어진 관계로 이쪽 길에 온 지는 한참 되었다. 같은 경안천이지만 늘 가는 길보다 이렇듯 새로운 풍경 속을 걸을 때는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진다. 하늘이 참 좋은 날이었다. 살짝 차갑게 느껴지는 공기는 상큼하고 달았다. 경안천 위는 인천공항에서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의 항로다.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본지도 어느덧 3년째다. 들릴락 말락하는 엔진 소리를 남기고 동쪽으로 사라지는 비행기를 한참 동안 쫓다. 매산리 보에서 경안천을 건넌 뒤 되돌아오다. 보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살이 힘차다...

사진속일상 2022.01.30

경안천-칠사산을 걷다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다른 계절에 비해 걷는 운동량이 1/3은 떨어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몸은 둔해지고 바깥에 나가는 일이 귀찮아진다. 어제는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 작심하고 경안천에 나갔다. 큰 마음을 먹은 김에 칠사산까지 연계해서 걸었다. 이 코스는 강변과 산길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좋다. 응달에는 사흘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 있다. 겨울 경안천의 단골인 고니가 청둥오리와 함께 유유히 노닐고, 고독한 철학자인 해오라기는 미동도 없이, 가마우지는 따스한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붉은부리갈매기는 물고기를 사냥해서 식사에 열중인데, 고양이 한 마리가 붉은부리갈매기를 잔뜩 노려보다가 바투 다가가더니 흥미를 잃은 듯 등 돌리고 강물만 핥는, 평화로운 겨울 오후의 경안..

사진속일상 2022.01.23

2022년 첫 뒷산

새해에 든 지 벌써 반 달이나 지났다고 푸념을 하는 동기에게 나는 속으로 한 마디 한다. 넌 참 재미나게 사는가 보다. 나에게는 새해의 시작이 한참 전의 과거로 멀게 느껴진다. "아직 반 달밖에 안 지났다고",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반 달이나'와 '반 달밖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생사에는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새해가 되었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올 들어 처음 뒷산을 오르면서 탐, 진, 치(貪, 嗔, 痴)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나이를 더할수록 또렷해지는 어두운 그늘이면서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이다. 산길은 꼬불꼬불 이어진다.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나온다. 꼭대기라고 여긴 곳이 눈을 들면 작은 봉우리 중 하나일 뿐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도 끝은 아니다. "나는 과..

사진속일상 2022.01.16

묵언수행 중인 뒷산

초겨울 뒷산은 묵언수행 중인 선방처럼 고요하다. 그 적요(寂寥)를 방해할까 저어되어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처남 부부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연락이 왔다. 열이 나길래 미심쩍어 검사를 받았더니 부부가 동시에 확진이란다. 다행히 목이 간지러운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고 한다. 이웃의 한 분은 몸살기가 있어 약을 먹고 일시 괜찮아졌다가 다시 심해져서 병원에 갔는데 다음날 사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뒤에 확인이 되었는데, 원인 불명의 폐 손상에 의한 급사였다. 가까이 지냈던 한 분이 인생이 허무하다면서 엉엉 우는 걸 봤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곁에까지 다가온 느낌이다.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졸지에 위급한 환자가 되기도 한다. 백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비..

사진속일상 2021.12.17

광교산을 걷다

광교산 밑으로 이사한 둘째네 집에 간 길에 산길을 걸었다. 멋모르고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까지 욕심냈으나 오후 2시에 출발해서는 무리였다. 왕복 14km나 되어서 예닐곱 시간은 잡아야 하는 긴 길이었다. 오늘은 수지성당에서 소말구리고개까지 다녀오는 7km 정도의 길을 세 시간 정도 걷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 코스는 긴 능선길인 만큼 큰 오르내리막이 없는 최적의 길이었다. 휴일이지만 미세먼지가 자욱해서 산을 찾은 사람이 적어 길은 한적했다. 오롯이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알맞았다. 광교산에는 갈래길이 엄청 많다. 이리저리 오솔길이 무수히 나 있다. 사방이 인간의 거주구역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정상으로 가는 길이 헷갈려 마주오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리로 가면 광교산이 나오나요?" "여기가 ..

사진속일상 2021.11.21

반짝이는 가을빛에 이끌려

반짝이는 가을빛에 이끌려 점심을 먹고 뒷산에 올랐다. 그냥 집에 있기에는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였다. 오랜만에 올라본 뒷산은 이미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뒷산에는 단풍나무가 없다. 8할 이상이 참나무 종류다. 그래서 가을 단풍은 황색이 주종을 이룬다. 같은 황색 계열이더라도 나무에 따라, 단풍 드는 시기에 따라 색깔이 무척 다양하다. 일 년 중 숲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단장을 할 때다. 뒷산은 가볍게 오른다. 배낭도 없이 맨몸으로 오르니 다이어트를 한 뒤 마냥 가뿐하다. 그동안 등산으로 몸을 길들여놓은 원인도 클 것이다. 산 속은 온통 가을의 한복판이다. 이런 때 시 몇 편 꺼내 읽어보는 건 또 어떠리. 숲 속이 다, 환해졌다 죽어가는 목숨들이 밝혀놓은 등불 멀어지는 소리들의 뒤통수 내 마음..

사진속일상 2021.11.03

마름산과 국수봉 걷기

오늘은 작은 산 둘을 연계하여 걷는다. 백마산 줄기에 있는 마름산과 맞은편에 있는 국수봉을 잇는 길이다. 동네 뒷산 정도라 등산이라 할 수 없는 평이한 산길 걷기다. 어느새 산은 가을물이 들기 시작한다. 나무들 사이로 너른골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요사이 오전에는 습도가 높아 시야가 깨끗하지 않다. 일요일 아침, 아내는 성당에 가고 나는 산길을 걷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길을 걷는 것이 종교의식으로 신을 경배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신의 은총을 가리키는 표상이 아닌가. 성스런 예술품으로 둘러싸인 자연의 예배당에서 내 영혼은 맑고 순수해진다. 지저귀는 새소리, 속삭이는 바람소리는 신을 향한 찬미가다. 나는 존재의 근원과 연결된 듯한 경외감과 평온에 잠긴다..

사진속일상 2021.10.31

뒷산에서 본 가을 하늘

추석 연휴 첫날, 뒷산을 한 바퀴 돌다. 청명한 날씨에 초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 이 정도면 뉴질랜드의 하늘이 부럽지 않다. 미세먼지 걱정을 잊은 지도 한참 된 것 같다. 아직은 한낮 기온이 높다.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 탓인가 보다. 코로나가 덮친 이후로 공기가 좋아진 걸 체감한다. 코로나와 미세먼지와의 역학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조사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인간 활동이 유의미하게 감소한 때문인지, 어쨌든 코로나 이후로 미세먼지나 황사의 시달림에서 벗어난 건 사실이다. 코로나가 준 선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느긋하게 앉아 구름 구경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산모기가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산길에서도 연신 수건을 휘두른다. 그래도 팔에 앉는 놈은 어쩔 수 없이 살생을 해야 한다. 10월은 ..

사진속일상 2021.09.18

여름이 싱겁게 지나간다

한여름의 기세에 비해서는 여름이 싱겁게 지나간다. 가을한테 자리를 내어주면서 여름은 홀가분한가 보다. 아무 미련이 없는 모습이 허허롭다. 자연의 변화는 이토록 무심하다. 경안천을 걸으러 나섰다. 이번에는 하류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여기는 천의 한쪽으로만 길이 나 있어 같은 길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찾는 빈도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3년 전만 해도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가는 흙길이어서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포장이 되어서 사라져 버렸다. 서하리 천변에는 45도로 기울어진 밤나무가 있다. 이 길에서 만나는 나무 중 그나마 눈에 띄는데, 나무 무게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힘들어 보인다. 대체로 여기까지 걷고 되돌아간다. 길을 계속 가면 경안천습..

사진속일상 2021.08.31

여름 가는 경안천

기세등등하던 여름의 기운이 꺾였다. 아침저녁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냉기가 서려 있다. 한낮에 햇빛을 맞으며 걸어도 크게 더운 줄을 모르겠다. 얼굴이나 목에 맺히는 작은 땀방울을 가끔씩 닦아주면 된다. 그렇더라도 아직 여름인지라 해가 중천인 경안천 길에는 사람이 드물다. 타박타박 혼자서 걷는다. 사람이 없으면 마스크를 안 써도 되어 좋다. 아직 습관이 안 되어서 그런지 마스크를 쓰면 답답해서 자꾸 손이 가고 벗게 된다. 길에서도 사람을 만나면 넓은 길이라면 간격을 벌리고 피해 가지만, 좁은 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꺼내야 한다. 나보다도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들은 마스크를 참 잘 쓴다. 경안천처럼 사람 드문 곳에서도 꼭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야외에..

사진속일상 2021.08.21

늦여름 뒷산

입추가 지나니 햇살은 따가워도 바람은 시원하다. 가을이 다가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한여름 동안은 쉬었던 뒷산을 이제 다시 걸어본다. 산길은 새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로 가득하다. 이 역시 가을의 전령사다. 새와 달리 풀벌레는 날개를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 인간의 악기에 비유하면 현악기에 해당한다. 숲을 가득 채우는 풀벌레 소리는 제 짝을 찾으려는 간절한 아우성일 것이다. 새들은 이미 번식기를 지났고, 이제는 풀벌레들 차례다. 온갖 소리가 요란하지만 누가 내는 소리인지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바람이 땀을 식혀주지만 늦여름 산길은 덥고 빨리 지친다. 더해서 작은 날벌레와 산모기가 덤벼들어 성가시다. 내가 가는 길의 훼방꾼을 무시할 정도로 나는 관대하지 못하다. 손수건을 휘젓지만 금방 다시 앵앵..

사진속일상 2021.08.12

남한산성의 여름 하늘

입추가 지나니 공기의 느낌이 다르다. 길었던 더위도 이제 막바지다. 어제는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에 끌려 남한산성에 갔다. 탁 트인 곳에서 하늘의 구름을 맘껏 보며 걷고 싶었다. 하늘의 구름은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잠깐 한눈을 팔고 다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하늘 전망이 좋은 그늘에 앉아 구름 구경만 해도 하루 해가 짧을 것 같다. 남한산성은 여러 달 공사를 하더니 시멘트로 된 길 양 켠에 코코넛 매트를 깔아서 걷기에 훨씬 편해졌다. 북문은 완전히 헐고 새로 짓는 중이었다. 남문, 수어장대, 북문을 지나 샛길을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통행금지가 되어 있었다. 남한산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그만큼 관리 및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휴가철이라 ..

사진속일상 2021.08.10

무더위 속 경안천 걷기

땡볕 무더위가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한낮에는 밖에 나갈 엄두를 못 내겠다. 어제는 오랜만에 가끔 비가 지나면서 구름 많은 날씨였다. 기온이 30도 아래로 떨어지긴 했으나 습도가 높아서 후덥지근했다. 그래도 햇볕이 가려지니 다행이다 싶어 경안천 걷기에 나섰다. 순전히 걷기 목적으로 경안천을 찾은 것은 반년이 넘은 것 같다. 여름에는 안 그래도 더운데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너무 답답해서 사람이 많은 데는 가지 않는다. 경안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여름은 사정이 다르다. 그늘이 없는 경안천 길을 걸을 사람은 별로 없다. 예상대로 경안천에서는 아주 드문드문 사람을 만날 뿐이었다. 여름 경안천은 억새 사이에서 기생초가 많이 피어 있었다. 군데군데 꽃길로 조성해 놓았다. 진하고 화려한 화장을 한 듯해서 ..

사진속일상 2021.08.03

물빛공원으로 쫓겨나다

아침부터 30도에 육박하는 더위다. 장마 뒤끝이라 습도가 높아 체감 기온은 훨씬 더 높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베트남 사람조차 한국의 더위를 견디기 힘들다 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우리 동의 한 집이 이 여름에 수리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 동의서를 받아갔는데 간간이 들리던 공사 소음이 어제부터 심해졌다. 오늘은 일찍부터 벽을 울리는 드릴 소리 때문에 집에 있지를 못하겠다.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은 재가학습을 할 텐데 다른 집은 어떻게 견디는지 모르겠다. 할 수 없이 가까운 물빛공원으로 아내와 피난을 갔다. 여름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다. 그러나 햇살이 따가우니 공원 둘레길에서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신경이 쓰이지 않으니 좋은 점도 있다. 물빛공원의 상징물은 이 꽃돌고래다. 저수지와 돌고래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하..

사진속일상 2021.07.16

시도(矢島) 걷기

인천 영종도 서쪽에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라는 세 개의 작은 섬이 있다. 삼목항에서 배를 타고 10분 쯤 가면 신도선착장에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세 섬 사이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셋을 합쳐 '신시모'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을 걸어보기 위해서 신시모에 갔다. '삼형제섬 길'인데 세 섬을 지나는 길이가 14km 쯤 된다. 대한민국 해안누리길 53번 노선에 해당한다. 처제 부부와 함께 했다. 처제 부부는 걷기에 자신이 없다면서 차를 가지고 들어갔다. 그래서 우리도 신도 걷기는 포기하고 시도만 함께 걷기로 했다. 신시도 연도교에서 시도를 반시계방향으로 돌아 노루메기까지 걸었다. 이것만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시도를 한 바퀴 돌고 모도로 건너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소라와 ..

사진속일상 2021.07.01

내가 사랑하는 길

이웃 동네로 넘어가자면 산자락으로 난 이 길을 지나야 한다. 내가 제일 아끼며 사랑하는 길이다. 길이가 200m 남짓 정도로 짧지만 여기에 들면 아늑하고 편안해진다. 사람의 통행도 거의 없다. 돌더라도 다들 차를 이용하지 산길을 걸어서 옆 동네로 갈 사람은 없다. 어쩌다 드물게 나 같은 어슬렁족을 만나기도 한다. 곧 여기에 아파트 건설이 예정되어 있어 이 길도 상당 부분이 훼손될 것이다. 이미 길 곳곳에 포클레인이 할퀸 흔적이 보인다. 진즉에 이 길의 사계를 담아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는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 단풍나무가 많아 길 한편이 붉게 물들면 여느 이름난 단풍 명소 못지않다. 올 가을 단풍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길을 지나 이웃 동네로 넘어가서 목현천과 경안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

사진속일상 2021.06.23

뻐꾸기를 따라간 뒷산

뻐꾸기가 뒷산을 호령하는 계절이다. 이때가 되면 뻐꾸기와 검은등뻐꾸기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루 종일 집안을 채운다. 뻐꾸기는 자신이 뒷산의 주인이라는 듯 소리도 우렁차다. 오래전부터 검은등뻐꾸기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오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뒷산을 오른다. 다행히 검은등뻐꾸기는 먼 곳이 아니라 산길 주변을 맴돌며 노래한다. 내 머리 바로 위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소리만 들릴 뿐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나뭇잎이 무성해서 새와 만나는 데 방해가 된다. 새들은 은폐하기 좋겠지만 탐조가는 애간장을 태워야 한다. 들리는 소리를 짐작해 검은등뻐꾸기가 있을 나무를 지목하고 샅샅이 훑어도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중..

사진속일상 2021.06.13

억지로 뒷산

졸지에 5kg이나 늘어난 난감한 몸을 일으켜 뒷산으로 향했다. 억지로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몸이 망가질 것 같다. 지금도 거울 앞에 서면 배불뚝이 노인의 모습이 가관이다. 배낭도 카메라도 놓아둔 채 휴대폰 하나만 들고 오른다. 천천히 걸으니 호흡이 가쁘긴 하지만 그런대로 올라갈 만하다. 산은 어느새 녹색의 나뭇잎으로 풍성하다. 산바람이 시원한 걸 보니 벌써 여름이 가까워졌나 보다. 산에 드니 계절의 변화가 실감 난다. 자연에 둘러싸인 몸과 마음이 평온하다. 집에서 나오는 결단을 내리길 참 잘했다. 사람 없는 산길은 호젓하며 고요하다. 이런 길을 걸으면 잠시나마 마음도 그리 닮을 것이다. 산정 나무 의자에서 오래 쉬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한 점은 수시로 모양을 바꾸면서 남쪽으로 사라진다. 처음 들..

사진속일상 2021.05.07

진달래 활짝 핀 뒷산

뒷산에 진달래가 활짝 폈다. 봄이 찾아오는 속도도 세월이 흐르는 것만큼 빠르다. 뒷산은 꽃이 적은 편인데 그나마 봄 진달래가 제일 볼 만하다. 진달래 때문인지 평상시보다 산에 드는 사람도 많아졌다. 진달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다. 뒷산에서 제일 먼지 피는 꽃은 생강나무다. 생강나무꽃의 노란색과 진달래의 분홍색이 이맘 때면 잘 어울린다. 산자락에 있는 매화도 만개해 있고, 목련도 꽃을 열기 시작했다. 산 어귀에는 현호색도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뒷산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봄이 되니 새들의 노랫소리가 다양해지고 볼륨도 높아졌는데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멀리서 박새, 곤줄박이, 딱따구리, 직박구리를 봤는데 그중에서는 박새가 제일 많다. 산을 내려오니 역시 참새들 세상이..

사진속일상 2021.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