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낄 때를 기다려 동네 한 바퀴에 나섰다. 산이라면 몰라도 햇볕이 쨍한 날의 동네길 걷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고등학교 동기들은 요사이 하루 만 보 걷기가 유행이다. 결과를 모아 가을에 시상을 한다고 한다. 방에 들어가 보면 각자가 올린 하루에 걸은 통계가 가득하다. 많이 움직이는 사람은 하루에 3만 보 이상씩 걷고 있다. 과유불급이 아닐까, 내가 괜히 걱정된다. 나는 사흘에 한 번 정도 바깥출입을 할 뿐이니 감히 도전을 못하고 있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이웃 마을로 넘어간다.
걷는 길 주변은 텃밭과 주택이 혼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조각만한 땅이라도 알뜰살뜰 뭔가를 심는다.
어느 집 마당에서는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오수를 즐기고 있다.
장마철이지만 큰비가 아직 오시지 않아 목현천은 개울물 정도로 졸졸거리며 흐른다. 풀들 사이에서 고라니가 고개를 빠끔 내밀더니 나를 보고는 놀랐는지 후다닥 달아난다.
시내로 들어가면 시끄럽고 사람도 많다.
여름의 인기 장소는 단연 다리 밑이지만, 오늘은 날이 덥지 않아 한가하다.
이 공터는 논이었는데 아파트를 짓는다고 올해는 빈 땅으로 놀리고 있다.
두 시간여를 이곳저곳 둘러보며 걷다가 돌아왔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천차만별이지만 내용은 대개 비슷하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인생이 고달픈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금 웃는 사람과 우는 사람 사이에 무슨 커다란 차이가 있겠는가. 다들 무언가의 사연을 안고서 아프고 힘들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