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천근만근 무거운 몸

샌. 2020. 12. 2. 19:17

 

연속적인 재채기와 함께 콧물이 줄줄 흘렀다. 닷새 전 아침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계속 집에 있었는데도 감기를 맞은 것이다. 이런 환절기 연례행사는 건너뛰면 좋으련만 매년 어김없이 찾아온다. 사실 올해는 감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찬 바람을 쐬거나 무리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가 잘못됐는지 불청객이 노크도 없이 침입했다. 굳이 원인을 찾자면 낮에 방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활짝 열어둔 것밖에 없었다. 싸늘한 기운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감기에 걸리는 이 유리 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다행히 열을 동반하지 않은 콧물감기였다. 약국에서 콘택을 사 먹으니 콧물은 하루 만에 그쳤다. 그러나 미지근한 두통은 계속되었다. 하필 누워 있는 와중에 고모님의 부음을 들었다. 2년 전에 뵌 뒤 요양원에 들어가신 후로는 소식만 전해 들을 뿐이었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는 제일 착한 마음씨를 가진 분이 고모였다. 마지막에는 몸이 아파 고생하셨지만 94세까지 사셨으니 장수하신 셈이다. 평생을 믿고 의지하셨던 하나님 품에서 이제는 편히 쉬시길 기도드린다.

 

증상이 가벼워서인지 닷새 만에 몸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천근만근 되는 몸을 일으켜 집 뒤의 낮은 산길을 걸었다. 작은 오르막에도 숨이 가빴다. 운동 부족이라는 몸의 SOS 신호가 다급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라는 다짐을 하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젊을 때부터 늘상 하던 넋두리가 아닌가. 이때껏 아무리 읊었어도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제 와서 돌연 부지런해질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결국 내 천성대로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또 그래야 마땅할 일이다.

 

 

산 능선의 나무들은 나란히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자란다. 마치 가위로 자른 듯 말끔하다. 누구 하나 햇빛 욕심부리며 솟아오르지 않는다. 앞서는 나무도 뒤처지는 나무도 없다. 언제 봐도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다. 인간 세상이 저 나무들 살아가는 모습의 반의반만이라도 닮을 수는 없을까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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