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는 풀꽃을 바라보자

 

늦가을의 산길을 걷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해도 한낮이 되면 걷기 적당할 정도로 기온이 올라간다. 따스한 햇살이 점점 반갑고 고마워지는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오늘은 코로나 하루 확진자 수가 500명대로 올라갔다. 당분간은 사람 만나는 걸 더욱 조심해야겠다. 백수 신세로서 칩거하는 것 외에 세상에 도움이 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집 가까이 있는 산길을 혼자 걷는 떳떳한 명분이 다시 생겼다.

 

이 시기의 산은 졸음에 겨운 듯 나른하다. 땅에 떨어져 쌓인 나뭇잎이나, 잎을 떠나보낸 나무나 모두 편안한 자세로 서거나 누워 있다. 초봄의 산은 수런거리며 뭔가 음모를 꾸미는 듯하지만, 늦가을의 산은 버린 자의 여유와 한가함이 있다. 늦가을의 산길에서는 자꾸 걸음이 멈추어진다. 늦가을은 내 인생의 계절과 비슷하다. 앞만 보고 직진할 수 없는 것은 늦가을의 산을 닮고 싶은 바람 때문인지 모른다. 

 

 

 

 

며칠 전에 친구의 울분에 찬 전화를 받았다. 친구야, 작은 산길을 걸어보렴. 그때는 못 한 말을 오늘은 전하고 싶다. 좌파와 우파가 있는 게 아니다. 오직 제 이익이 있을 뿐이다. 인간은 내 영역을 침범하면 이빨을 드러낸다. 야생의 동물과 다를 바 없다. '강남 좌파'나 '웰빙 우파'의 말은 귀담아듣지 말 것! 차라리 저 시들어가는 풀꽃을 잠잠히 바라볼 것! 그것이 내 간직할 바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