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아침 사이에 수도권에는 가을비가 사납게 내렸다. 뉴스를 보니 104년 만의 가을 폭우란다. 그래도 빗소리를 들으니 싱숭생숭해져서 차를 몰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집 가까이에는 팔당호를 한 바퀴 도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퇴촌과 양평의 강하와 강상을 지나 양근대교를 건넌 뒤 6번 국도를 따라 북상해서 팔당대교를 건너 돌아오는 코스다. 집을 기점으로 할 때 약 100km가 되니 하루 드라이브 코스로 딱 알맞은 길이다.
비가 온다고 라디오에서는 달콤한 음악을 질리도록 선사해 준다. 아무래도 늦가을 비 속을 달리는 맛은 꽤나 쓸쓸하다. 이 길 위에서 만나고 떠나간 여러 인연이 떠오른다. 하지만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지상에 왔다가 물러나는 것도 차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에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부처님이 삼계개고(三界皆苦)라 하셨듯 삶의 고통과 허망함을 애절히 느껴보는 데 인생을 살아가는 의의가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감히 해 보는 것이다. 바깥은 비바람이 치는데 차 안은 따스하고 핸들은 부드럽게 돌아간다.
이런 날은 따끈한 수제비가 제격이다. 돌아오는 길가에 있는 '국수리국수집'에서 부추수제비 한 그릇과 마주했다. 이 집 수제비는 맑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마재에 들러서 다산 생가와 묘를 둘러보고 강변길을 짧게 산책했다.
그저께는 친구가 '내가 살아보니까'라는 장영희 교수의 글을 보내주었다.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는다.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란 것이다. 우리 마음은 한시도 고요하고 잔잔하지 못하고 번뇌 망상으로 물들어 있다. 늘 파도치는 물결처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린다. 물결이 출렁일 때는 모든 것이 일렁이고 왜곡되어 보이듯이, 마음이 고요하지 못할 때 우리는 세상을 왜곡하여 보게 된다. 고요히 맑고도 텅 빈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게 된다.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면 되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남의 마음 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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